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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10. 2024

여름, 산청

몸과 마음이 지친 남편은 어디론가 가서 쉬고 싶어 했다. 아무것도 안 하며, 그렇지만 뭔가 채워올 수 있는 곳이길 꿈꾸었다. 그래서 부산에서 가까우면서도 자연 속으로 침잠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떠올린 곳이 산청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 우연히 지나갔던 대원사가 떠올랐다. 절 옆으로 흐르던 맑은 계곡물, 계곡 사이의 울창한 나무들과 그 곁으로 이어진 나무 데크의 산책로가 좋았던 곳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로 선택된 곳이 대원사에서의 템플스테이, 그리고 한창 캠핑에 빠져있던 우리 부부가 우연히 발견하고 얼른 낚아챈 지리산 소막골 야영장 자리 하나, 그리고 쉼을 위한 선택으로 산청한방가족호텔에서의 휴식으로 5박 6일 산청의 여정을 잡았다.  우리의 모든 여정의 시작과 끝은 오로지 휴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산청을 선택하였으니까.


종교가 없는 우리에게 사실 종교 시설은 낯선 곳이었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절에 가는 것이 예가 아닐까 봐.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고 한 시간도 안되어 우리가 목적한 바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스님과의 차담에서였다. 스님은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우리를 비롯한 일행을 보며 ' 사람들은 템플스테이를 하고, 생각보다 좋았다, 또는 별로였다'라고 하는데 왜 생각이란 걸 하고 와서 실망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오면 좋을 일도, 나쁠 일도 없을 것인데"라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이번 산청 여행 내내 하며 보냈다. 우리 부부 중 누가 투덜거릴 때마다 서로에게 이 말을 해줬다.  예를 들면, 첫날 오면서 먹은 식당 밥이 별로라는 말을 남편이 하자,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냐, 어차피 다른 식당에서 먹었어도 일어날 일이었어." 하는 식이다.


두 번째로 방문한 소답골 야영장은 생각보다 작은 규모로 계곡을 낀 지리산 언저리의 작은 숲 속이었다. 둘이서 타프 하나를 치느라 낑낑거리고 땀을 한 바가지 쏟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계곡으로 달려가 일단 몸을 담갔다. 또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더워서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릇에 삼겹살 쌈밥을 만들어 계곡으로 갔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하나씩 집어 먹는데 꿀맛이었다. 그렇게 산청의 한여름에 하는 캠핑은 더웠지만, 그 더위 덕에 계곡의 짜릿함이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다.


4일 만에 우리는 침대와 에어컨과 tv와 와이파이가 있는 호텔에 왔다. 당연한 것이 없던 시간에서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는 곳으로의 이동에 감사하기도 전에, 나는 지리산 능선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객실 전망에 먼저 빠져들었다. 산청한방호텔은 객실 전망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자주 찾는 곳 중 하나인 산청의 매력은 여름에 더욱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이들이 모두 바다로, 해외로, 도시로 빠져나간 여름의 산청은 계곡을 찾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곳이었다.  어쩌면 그런 조용함이 여름의 산청을 자연의 고즈넉함을 고고히 지키면서도 알알이 박혀 있는 커피 맛집, 음식 맛집, 풍경 맛집을 숨겨놓을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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