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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Pierrot Nov 23. 2016

원근법 상실의 시대

원근법 상실의 시대


그림을 못 그렸다. 원근법을 무시해서 사물의 크기가 제멋대로였다. 멀리 있어야 할 건 가까이에, 가까이 있어야 할 건 멀리 있었다. 완성된 그림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현대미술처럼 기괴했다. 자화상을 그리면 피카소의 그림처럼 3차원의 얼굴을 2차원에 구겨 넣은 것 같았다. 원근법 적용이 어려웠던 건 비단 그림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실생활에서도 그랬다. 공사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뭐가 좋은지도 모르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쓸데없이 남들에게 관대했다. 실수는 눈감아주고 평가는 후하게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나의 원근법이 비정상인 것을 깨달은 건 독일에서였다. 구술시험이 끝나고 교수님께 한국에서 가져온 자그마한 책갈피를 선물로 드렸다. 사심은 없었다. 그러나 선물을 쥔 나의 손은 나와 교수님 사이에 한참을 어색하게 머물렀다. 고개를 들어 교수님 얼굴을 쳐다봤다. 그때서야 당황함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그렸던 구겨진 자화상 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집에 돌아갔다. 나는 공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교수님을 선물을 이용해 내 곁으로 가까이 끌어오려 했다. 원근법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일그러진 원근법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회엔 원근법을 무시하는 미친 예술가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시공간을 뒤섞으며 사회 질서를 유린한다. 공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채우고, 사적 친분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뉴스라는 거울을 통해서 보는 우리 사회의 얼굴은 내가 그렸던 그림들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우리는 서로 왜곡된 얼굴에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림 그리는 연습을 다시 한다. 원근법에 맞춰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소실점을 기준으로 전체 구도를 잡는다. 어긋나면 지우고 다시 그린다. 힘들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행히 원칙에 맞춰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밤이면 촛불을 들고 나와 망가진 소실점을 향해 행진한다. 파도치는 촛불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사회 실종된 원근법을 다시 찾아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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