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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n 19. 2021

3. 그리스 산토리니(3)

3-9. 달콤한 휴식

비싼 돈 들여 먼 곳까지 여행을 와서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 계획을 세우고, 교통, 숙박을 검색하고 예약하는 것이 이제는 힘겹다. 여행 초반에는 이 모든 것들이 마냥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알아봤었는데 계속 반복이 되니 좀 지치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굵직굵직한 것들만 예약해놓고, 나머지는 여행을 하면서 채워가는 방법을 택했는데 여행 기간이 긴 데다가 국가와 도시가 매번 바뀌다 보니 공부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조금씩 다음날 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검색을 해야만 했는데 이게 의무가 되다 보니 매일 하는 '일'이 되어 나를 압박했다.(최애 취미였던 여행이 일이 될 줄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오늘은 약간의 몸살 기운도 있는 데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 지치고 귀찮아져서 하루를 온전히 쉬기로 했다. 어딜 가봐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무엇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무엇을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냥 하루 종일 생각을 비우고 게으름부리고 싶었다. 몸도 아프니 좀 더 서글퍼져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도 들었다.


비상약으로 가져간 몸살약을 먹은 후 침대에서 인터넷 하며 노닥거리기, 따뜻한 차 마시기, 창밖의 햇살 즐기기 등을 하며 최선을 다해 뒹굴거리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몸살 때문에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뭐라도 먹긴 먹어야 할 것 같아 외출 준비를 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어볼까 했지만 자금 사정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숙소 안내문에 있는 뷰 맛집 레스토랑에 가보기로 했다.



오늘 하루 사진도 찍지 말고 온전한 휴식을 취해보기로 했지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풍경이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펼쳐진다. 날씨는 또 말도 안 되게 좋다. 반대편 끝에는 엊그제 일몰을 봤던 카페가 언뜻 보였다. 문득 오늘 하루를 이렇게 쉬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건강을 위해 쉼을 택한 내 선택도 나쁘지 않다며 애써 마음을 추슬러본다.



그리스 음식인 무사카를 주문했다. 고기, 야채를 넣고 만든 건데 흡사 계란찜 같은 느낌의 음식이었다. 맛은 그럭저럭 먹을만한 정도. 김치랑 먹으면 딱 일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마늘빵과 함께 나온 소스가 특이하고 맛있었다. 변 풍경을 감상하며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즐기, 후식으로 꿀요거트를 먹으며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동안의 여행 계획, 일정, 일기, 가계부 등 모든 것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꼼꼼한 내 성격이 보여 슬쩍 웃음이 났다. 이렇게 일정관리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내가 약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외국 여행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며 느슨히 지내는 것은 아직 내겐 좀 무리인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채워지는 다이어리를 보니 뿌듯했다. 앞으로 여행할 곳이 더 많이 남아있어 이곳에 적힐 이야기들이 기대되기도 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고 하니 직원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해보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서 있으니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준다.



레스토랑에서 후식지 먹고 숙소로 천천히 걸었다. 밥을 먹고 나니 몸살 기운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니 머리도 맑아졌다. 난간에 살짝 기대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빛에 비친 잔잔한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산토리니야 다음번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올게. 혼자는 너무 외롭다.'






어제 푹 쉰 덕분인지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마음도 다시 새로워졌다. 오늘부터 가게 될 이탈리아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으로 아침부터 마음이 부풀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영화로운 자태를 직접 볼 수 있다니... 게다가 로마에서는 세부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주 많았기에 유적지를 잘 이해하며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도의 투어 장소를 내가 수고롭게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도 있었다.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차량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작은 공항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인천공항정말 쾌적하고 좋은 곳이다.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먹을 공간이 없어 핫도그를 하나 사서 배를 채웠다.


공항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체크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지중해 나라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들리자 나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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