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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n 21. 2021

4. 이탈리아 로마(1)

4-1. 긴장과 감동 사이

공항에 도착해 짐을 들고 숙소가 있는 떼르미니역 도착했다. 이 곳은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터라 매우 긴장되었다. 짐을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종종 거리며 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곧 당황하기 시작했다. 숙소 위치는 이미 머릿속에 넣어놨지만 비슷한 건물이 많아 헷갈리기 시작했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을 걸으며 혹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니 이마에땀이 송골송골 맺. 좀처럼 보이지 않는 숙소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할 찰나 조그맣게 붙어있는 숙소 팻말을 겨우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수동이다. 문을 내가 열고 닫아야 했는데 터키에서 한번 해봤다고 나름 익숙하게 할 수 있었다. 컹거리며 올라가는 수동 엘리베이터가 신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만 무사히 숙소에 잘 도착했다. 이탈리아 숙소는 모두 한인민박으로 선택했다. 일단 비용면에서 여러모로 다른 숙소들보다 괜찮았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곳에서 나름의 기댈 곳이 필요했다. 또 여러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 곳 한인민박은 사장님이 계시고 그 안에서 일을 돕는 스텝이 한 명 있었다. 대학생이었는데 로마가 좋아 수개월이 넘게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체크인을 하고 로마의 볼거리, 맛집, 교통 등을 안내받은 뒤 방에 들어갔다. 1인용 베드가 6개 있었는데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침대 밑에는 수납공간도 있어 품을 정리하기에 편리했다. 다년간의 노하우 덕분인지 여행자의 필요를 잘 알고 준비해놓은 흔적이 많이 보였다.


나는 오후 느지막이 도착해 여행사에서 하는 야경투어를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도 같이 갈 사람이 몇 명 있어 더욱더 안심이 되었다. 야경투어를 기다리며 숙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주방 쪽 식탁 위에 간식이 놓여있다. 스텝이 먹어보라며 권하는 것은 막대과자와 누텔라 초코. 악마의 잼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초코잼은 한번 먹은 이상 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초콜릿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반신반의하며 막대과자에 누텔라 초코를 푹 찍어서 한입 먹어 보았다.


'앗... 이거 뭐지? 이렇게 맛있는 초코는 처음인데? 아니 초콜릿이 이렇게 맛있는 게 있었어?'


말도 안 되게 맛있는 초코에 두 눈이 번쩍 뜨인 나는 식탁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맛있는지 숟가락으로 막 퍼먹고 싶었지만 혼자 있는 게 아니었기에 나름 자제했다. 스텝은 내게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그럴 줄 알았단다. 이후 난 이탈리아에서 이것을 꽤 사 먹었다. 물론 한국에 와서도 많이 먹었다. 정말 악마의 잼이 맞다.  


식탁에서 스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더니 새로운 여행객이 한 명 도착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한 손에는 무거운 캐리어에 큰 배낭까지 메고 있었다. 그런데 온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얼굴은 울상이었다. 사장님과 스텝이 급히 나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떼르미니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단다. 그것도 캐리어 하나를 통째로 말이다. 사장님께서 침착하게 물어보셨다.


"혹시 캐리어를 손에서 놓은 적 있어요?"

"네... 길을 찾느라 양손에 있는 캐리어를 놓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캐리어 하나를 낚아채 도망갔어요. 나머지 캐리어 하나는 제가 급히 잡았는데 그래서 못 가져간 것 같아요."


사장님은 이런 일이 종종 있다며 일단 다독여 주신 다음 경찰서나 여행자 보험 등 다음 대응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그렇게 잃어버린 캐리어는 못 찾을 확률이 훨씬 단다. 그래서 휴대폰이나 여권, 현금 등 중요한 것들을 함부로 가방에서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안 그래도 긴장됐던 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내내 긴장하며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인민박에서는 안 그랬지만 호스텔에서 묵는 날에는 샤워실에 들어갈 때 여권, 현금, 휴대폰을 가지고 갔다. 호스텔에서도 종종 사고가 난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매치기의 위험 때문에 여행 내내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피곤했다. 둘이 왔으면 서로의 짐도 지켜주고 좋았을 텐데... 혼자 오니 이런 것들이 꽤 불편했다.


이런 일이 있으니 사장님께서는 야경투어를 하러 나가는 나를 포함한 몇몇에 특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하셨다. 떼르미니역까지 꼭 같이 나가고 돌아올 때도 함께 오라고 하셨다. 이런 위험 속에서도 야경투어가 진행되는 걸 보니 로마 야경이 꽤 볼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대되었다.


우리는 떼르미니역에 도착해 수신기를 받고 가이드분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이드 분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첫 번째 투어 장소 콜로세움으로 출발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책에서 봤던 그 콜로세움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조금 전의 불안함을 싹 잊게 해 주었다.



'아...!'


콜로세움을 마주한 나는 감탄사가 나올 새도 없이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렸다.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으로 쓰인 이곳은 크기가 어마어마했는데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역사의 깊이가 오롯이 느껴졌다. 게다가 붉은색의 은은한 조명은 콜로세움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가이드님은 콜로세움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셨는데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봤다면 훨씬 더 친숙할 건물이라 하셨다. 검투사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한 영화인데 나는 그것을 정말 인상 깊게 봤던 터라 콜로세움이 왠지 반가웠다.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 로마에 와서 본 첫 건물. 그게 콜로세움이라 임팩트가 무척 컸고, 밤에 봤기에 더 아름다워 로마에서의 여행이 더욱더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이곳에 있다.


두 번 장소인 베네치아 광장과 세 번째 장소인 천사의 성서도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는 패턴으로 투어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로마를 구경하느라 혼자서 분주했기 때문이다. 로마 시내는 이전의 여행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고대 로마 제국 안에 들어와 있는데 이 곳에 자동차, 지하철 등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왕과 귀족들이 어디선가 우아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조명이 은은히 켜진 로마의 많은 건물들은 로마라는 도시가 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지 보여주었다. 소매치기가 많아도 여전히 관광객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짜릿하고 따뜻한 거리를 거닐었던 로마의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소매치기의 위험이 아니었다면 밤도록 그 도시를 서성이며 걷 싶었다.


무사히 야경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오늘의 모든 긴장이 비로소 풀린다. 잠을 청하려는데 아까 봤던 콜로세움이 눈앞에 다시 보이는 것만 같다. 너무 좋아 침대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은 이른 오전부터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얼른 자야 한다는 부담감과 오늘의 감동을 잊지 않고 계속 되뇌고픈 마음이 교차되어 고민만 잔뜩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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