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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l 02. 2021

4. 이탈리아 로마(4)

4-4. 로마에서 로마를 누리다.

오늘은 가이드 투어 없이 혼자서 자유롭게 다니는 날이라 최대한 늦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조식 시간이 7시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고, 오늘 보기로 한 콜로세움 내부는 늦으면 늦을수록 티켓 줄이 길어진다 해서 게으름을 부릴 수 없었다. 로마까지 왔는데 늦잠 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래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지난 이틀의 투어가 힘들긴 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씻고 조식을 먹으니 또 힘이 난다. 한낮의 더위를 대비하기 위해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모자와 물도 챙겼다. 5월의 이탈리아 날씨는 한여름이다. 나름 더위에 강한 나도 너무 지쳐 한낮에는 쉬고만 싶더랬다. 그래도 그늘 아래에 가면 시원해지기 때문에 그럭저럭 다닐만하다.


콜로세움은 오늘로써 세 번째 보는 거라 가는 길이 매우 익숙하다. 도착해서 티켓을 구입하려고 보니 예상했던 대로 줄이 길다. 1시간을 기다려 겨우 표를 사고 내부로 들어갔다.


콜로세움 내부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잘 정돈된 모습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더 좋았다. 


'둥근 바닥 아래에서 검투사들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아마 맹수들도 있었을 거야. 어떤 마음이었을까? 너무 두려웠을 것 같은데...'


한참을 서서 앞을 바라보니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는 그위에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당시 지배층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일종의 놀이였던 검투사들의 경기가 이곳에서 벌어졌다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잔인한 경기지만 당시에는 노예였던 검투사들의 인권 따위는 없었기에 그저 보고 즐기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귀족 부인들이 마음에 드는 검투사들의 땀을 향수병에 모아 지니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어제 가이드님한테 들었었는데 그만큼 이곳에서 열렸던 경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 얻으며 치러졌던 것이다.


포로로마노


콜로세움을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포로 로마노 내부로 들어갔다. 그늘 하나 없는 이곳을 돌아보는 게 약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호기심 하나로 용감하게 들어갔다. 이곳에 오니 역시나 감정이입이 되어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했다. 옛 로마인의 생활터전이 이렇게 대규모로 남아있다니 그저 신기했다. 빛바랜 붉은 벽돌들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그 자체로도 참 좋았다. 이곳을 보고 나와서 이 주변 길 양옆으로 옛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는 가장 로마스러운 거리에서 로마의 옛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무척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다 돌아보기로 했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너무 더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잠깐 앉아서 쉬어갈 곳이 없었다. 다 보고 쉬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한참을 둘러보았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끝까지 설레고 벅찼다. 오후 2시가 넘어가니 어느 정도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볼 수 있었고 동시에 서서히 배가 고파왔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맛있어 보이는 파스타 집을 찾았다. 실내는 자리가 없어 실외에 자리를 잡았다. 무난한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오 마이 갓! 소스와 면의 조화가 찰떡이다. 정말 맛있었다. 배도 채우고 시원한 음료까지 먹고 나니 오후의 나른함이 찾아왔다. 누워있을 수는 없어 약간 비스듬히 앉아 지친 다리를 쫙 펴고 멍하니 주변을 감상했다. 이국적인 풍경이 내 앞에 있는 것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온통 외국인인데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이곳 로마에서 여행 한번 해보겠다고 한 내가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혼자만의 장기 여행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제대로 된 커피를 먹어보고 싶어 카페에 들어갔다. 어제 가이드님께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라고 한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은 아메리카노는 미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다. 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았던 나는 가이드님 말이 생각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진하게 내려진 따뜻한 에스프레소를 한잔 주문했다. 한입 크게 먹으면 다 없어질만한 양이었다. 한껏 기를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다. 예상대로 너무 쓰다. 이래서 내가 에스프레소를 안 먹었던 건데...라는 생각이 든 순간 한입 또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끝 맛이 고소하고 풍미가 짙어 중독성이 있었다. 이래서 이탈리아 커피가 유명한가 싶었다. 하지만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금방 없어져 카페에 진득이 앉아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 쉬웠다.


오후는 좀 쉬고 싶어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해서 체력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가 한참 지났는데도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5월이 이 정돈데 7,8월은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너무 더워 숙소 근처에 있는 젤라또 집에 갔다. 통에 한가득 여러 가지 맛을 담았다. 에어컨 밑에서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으니 살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젤라또가 엄청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워 내일 일정도 챙기고 앞으로 할 여행 계획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른 저녁 이런 한가로운 편안한 쉼이 참 좋다. 내일은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짐을 챙겨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한 뒤, 사장님의 추천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유명하다는 성당을 찾았다. 말로만 듣던 대형 오르간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더 놀라운 건 소리였다. 시간대가 맞아 운 좋게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데 그냥 감동 그 자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성당을 꽉 채우는 풍성한 소리.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그런 소리였다. 연주하시는 분과 파이프 오르간이 하나의 움직이는 그림이 되어 성당 안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집중했던 것 같다.



점심으로는 또 피자에 도전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비주얼도 맛없어 보였는데 먹어보니 더 맛이 없다.(메뉴판에 사진이 없었다.) 앞으로 이탈리아 피자는 검증된 곳에서만 먹는 걸로 자체 합의를 했다.


오늘 저녁엔 폴란드 크라쿠프로 3박 4일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속의 여행이랄까. 사실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꼭 가보고 싶어서 폴란드와 함께 동유럽을 돌아보고자 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루트를 일정과 함께 고민한 결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선택하면서 동유럽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폴란드는 무척이나 가고 싶었기에 이리저리 동선을 고려해 결국 로마에서 잠시 여행 삼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무거운 캐리어는 민박집에 맡겨두고, (사장님!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3박 4 일용 배낭만 꾸려 공항으로 향했다.



배낭 하나만 메고 공항버스를 타니 그렇게 맘이 가벼울 수가 없다. 진정한 배낭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마음이 즐거우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카페에서 즐기는 나만의 티타임. 진한 에스프레소를 시켜본다. 어제 먹던 것보단 맛이 없지만 그래도 기본 이상이다.


내일이면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역사의 아픔이 남아있는 그곳에 간다는 생각에 잠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지, 실제 그곳에 가면 또 어떨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폴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폴란드야 기다려! 드디어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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