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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l 21. 2021

5. 폴란드 크라쿠프(1)

5-1. 아픈 역사, 아우슈비츠 수용소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하니 춥다. 밤이라 더 그런가. 이탈리아보다 북쪽에 있어 아직 여름이 안 온 듯하다. 이럴 것 같아 얇은 패딩 하나를 챙겨 와 참 다행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내려 곧장 외워둔 길로 빠르게 걸었다. 밤에 도착할 것 같아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과 교통편을 열심히 공부하고 머릿속에 넣어놨었다.


숙소는 나름 평이 괜찮은 호스텔. 공항에서 오가기도 편하고, 바벨 성과 가까우며(크라쿠프는 폴란드의 옛 수도다.) 호스텔이 전반적으로 쾌적하고 친절하다해서 예약했다. 밤 11시가 넘어 도착했는데 주인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 환한 웃음으로 응대해준다.  먼저 체크아웃 시간, 조식 시간, 샤워실과 식당 등 호스텔의 전반적인 것들을 안내 후, 지도를 주며 주변 관광지, 맛집, 교통편 등을 세심하게 말해주었다. 시종일관 밝은 톤으로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투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소금광산 2개를 안내해줬는데, 호스텔에서 픽업해주고 투어 진행 후 다시 데려다준다 해서 얼른 신청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크라쿠프 근교에 있어 가는 게 좀 번거롭다 생각했는데 투어 프로그램이 있을 줄이야. 내가 직접 가는 길을 검색하고 숙지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우슈비츠 투어는 호스텔에서 오전 11시 40분 픽업이라 그전에 구도심을 한번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바람이 불어와 꽤 춥다. 어제까지만 해도 로마의  더위를 온몸으로 느꼈었는데 하루 만에 긴팔 옷이라니. 이게 공간을 옮겨가는 여행이 주는 묘미 아닐까.



구도심에 도착하니 동유럽 풍의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간 보지 못했던 독특한 건축물들이 계속 이어졌다. 광장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들도 있었다. 성당 건물 안에도 들어가 보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크라쿠프의 구도심을 걸어 다니는데 계속해서 드는 생각 하나.


'거리가 정말 깨끗하고 깔끔하다'


대표적인 관광지라 국가에서 어느 정도 관리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국민들도 은 노력을 했겠구나 싶었다. 덕분에 폴란드의 전체적인 인상이 깨끗하고 쾌적해서 이곳에 있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우리나라에 여행 오는 외국인들도 이렇게 느꼈으면 했다.)


11시 40분에 숙소로 투어버스가 도착했다. 다른 숙소들을 돌며 투어 신청자들을 태운 다음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했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1시간 조금 넘게 달렸는데 오늘 가는 장소가 수용소라 그런지 마음이 잡했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투어팀들이 도착해있다. 우리는 수신기를 받고 이어폰을 낀 다음 가이드님을 따라 입구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슬픈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가이드님의 표정은 슬픔, 아픔,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노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책에서만 봤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의 글귀가 오늘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안으로 들어가니 큰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압 전기 철조망들이 눈에 띈다.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저 철책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을 느꼈을까.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완전히 꺾어버린 인권유린의 현장에 오니 마음이 납덩이처럼 점점 더 무거워졌다.



수용소 내부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여러 가지가 잘 전시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설명과 각종 사진들은 물론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이 쓰던 가방, 신발, 식기류 그리고 그들의 머리카락까지. 그 당시의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도 있었다.


가이드님의 슬픔이 묻어나는 설명과 함께 내부를 돌아보고 있는데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한쪽 벽면. 바로 수용자들의 사진이었다. 그들이 눈이 너무 두렵고 슬퍼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슬프고 또 슬펐다.



건물 안 투어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찍은 복도 창문. 그 당시 사람들은 이 창문 밖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이걸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추모의 장소에서 그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잠시 기도한 후 그곳을 나왔다.


제 1수용소 투어를 마치고, 제 2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향했다. 이곳은 대형 수용소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량 학살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마음이 팠다.



비르케나우 수용소 정문. 안쪽까지 쭉 이어져 있는 기찻길이 슬프고 무서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찻길을 따라 저 안으로 들어갔을까. 안으로 들어가니 수용소 건물과 여러 겹의 전기 철조망다. 도망갈 곳이라곤 전혀 없는 황량함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수용소 사람들의 숙소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다. 한층에 8명이 잤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정말 열악했다. 야외의 한쪽에 있는 시체 소각장 건물은 그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많이 무너진 형태였지만 그때의 잔인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을 샤워실로 데리고 가서 가스를 주입하여 죽이고 시체를 소각했다 설명을 들으며 이것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오는 길에 정문 감시탑에 올라가 보았다. 드넓은 평지 위에 있는 수십 개의 수용소 건물과 철책들이 한눈에 보였다. 수감자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게 임무였던 사람들이 이 전경을 보고 있었겠지. 그들 중엔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감시자로서 느끼는 내적인 갈등이 엄청났을 텐데... 전쟁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오늘 가이드님께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죽이다''가스실'이었다. 대량학살의 현장에서 듣는 저 단어들은 한낮의 태양도 얼려버릴 것 같이 섬뜩하게 들렸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벌어지는 전쟁. 다른 사을 죽이고 또 죽이고서야 승패가 갈리는 쟁의 잔인함을 또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로 인한 희생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그렇게 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 본 수용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도 관련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내용들을 비교적 잘 알고 있어서 수용소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렇게 슬프고 무거운 투어는 처음이라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참 힘들었다. 투어 가이드님의 진심이 묻어나는 슬픈 표정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오늘의 투어는 매우 가치 있었다. 슬픈 역사,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는 이곳에 무리를 해서라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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