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일찍 일어나 조식을 서둘러 먹었다. 오늘은 오전에 바벨성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소금광산 투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유럽식 조식이 매번 그저 그렇다. 그래도 튼튼한 체력을 위해 열심히 먹었다.(따끈한 김치찌개가 오늘따라 그립다.)
구시가지를 지나 바벨성 입구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갔더니 입구가 그리 붐비지 않는다. 금방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유럽 특유의 건물들이 또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바벨성은 동화나라 같았다. 성당, 예쁜 정원과 함께 자리 잡고있었는데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의 이곳은 산책하며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먼저 박물관과 성당을 둘러본 후,나는 종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그문트 종'이었는데 소리가 아름다워 이곳에서 꽤나 유명했다. 얼마나 대단한 건지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탑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전경이 참 아름다웠다. 동유럽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책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좁디좁은 탑을 부지런히 올라 비로소 볼 수 있었던지그문트 종. 이미 그곳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와~ 크다.'
종은 내 생각보다 많이 컸다.
'이렇게 커서 소리가 좀 더 예쁘게 나는 건가?'
이곳에서 좀 쉬며 종을 천천히 감상하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나는 또 다른 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냥 높은 곳에 올라가 성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등산에 버금가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만난 바벨성의 모습!
'우와아~!'
너무 멋지고 좋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여러 건물들이 푸른 하늘, 초록 정원과 함께 조화롭게 빛났다. 사람들이 작디작게 보이는 걸 보니 높이 올라오긴 했나 보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한참을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사진은 오랫동안 내 휴대폰 배경화면을 차지할 정도로 참 좋았다.
탑에서 내려와 강을 바라보고 벤치에 앉아 봄날의 바벨성을 맘껏 즐겼다. 잔디밭에 누워 마냥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자고 싶을 정도로 날씨도 적당했다. 바벨성에서는 역사와 관련된 내용보다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감상했다.
뿌듯한 마음을 가득 안고, 오후에 있을 소금광산 투어를 위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호스텔에서 맛집으로 알려 준 빵집에 들렀다. 맛있어 보이는 빵을 하나 사서 입에 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어제 늦은 저녁으로 먹었던 호스텔 추천 식당에서의 피에로기도 극찬할 만큼 맛있었는데(만두처럼 생긴 폴란드 음식) 이쯤 되니 점점 더 이 호스텔이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주변에 강력 추천해 줄만큼 호스텔이 좋았다.)
오후에 가는 곳은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다. 크라쿠프에서 이미 유명한 투어인 듯했다. 우리나라의 석탄광산만 알고 있는 내게 소금광산은 또 다른 호기심 대상이라 가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호스텔에서 차량 픽업 후 소금광산으로 향했다.크라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유명 관광지라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꽤 많은 듯했는데 줄이 금방 없어지는 걸 보니 내부가 꽤 넓은 듯 보였다.
가이드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무척 어두웠지만 박물관처럼 여러 가지가 잘 전시되어 있었다. 벽에는 소금이 붙어 있었고 소금으로 만든 각종 장식품들도 꽤 볼만했다. 우리나라의 석탄 박물관처럼 걸으면서 전시물과 광산 구조물을 보는 것으로 투어가 진행되었는데 내가 유추한 데로 내부는 정말 넓었다. 한참을 돌아본 후,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평가받는 성당으로 꾸며놓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천장에 걸린 조명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보이게 했다. 각종 조각들과 장식품들이 은은하게 빛날 수 있도록 하여 아름다운 공간이 된 듯했다.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품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예로부터 소금은 매우 중요한 물품이었기에 이곳 소금광산의 가치 또한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도 관광지로 꽤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투어가 끝난 후 숙소로 와서 저녁 먹을 곳을 생각하다 호스텔에서 추천해 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왕이면 폴란드 음식을 먹고 싶어 레스토랑으로 가서 골론카를 시켰다. 고기를 다져 야채와 소스랑 함께 먹는 음식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고기는 입안에서 살살 녹고 야채와 소스는 고기와 찰떡궁합의 조화를 자랑했다. 호스텔에서 진짜 맛집을 선정해서 소개해 준 게 틀림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프런트에서 반갑게 맞아준다. 소개해 준 식당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인사를 하니 뿌듯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파티가 있는데 생각 있으세요?"
"아... 네? 파티요?"
"다과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춤도 추고 하는 거예요. 재밌는 시간이 될 거예요."
"네... 알겠어요."
알고 보니 이호스텔에는 매주 작은 파티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호스텔에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노는 거였는데 나는 그게 어떤 건지 매우 궁금해졌다. 하지만 파티 문화가 익숙지 않은 데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아 고민만 열두 번 하다 결국 안 가기로 했다. 영어만 잘했어도 경험해보는 건데 매우 아쉬웠다. 샤워하러 가는 길에 흘끗 식당 쪽을 보니 한눈에 보기에도 사람들이 참 즐거워 보였다.
나는 내일 다시 로마로 가야 했기에 짐을 정리해두고, 이후의 일정에 대해 검색한 다음 숙박, 기차 등을 예약해 두었다. 이제는 이런 여행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미리 무언가를 계획해놓지 않으면 소중한 시간이 그냥 버려질까 봐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이런 마음의 걱정들이 내 여행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계획들이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여행 자체가 귀찮아 마냥 쉬고만 싶을 때는(나는 꽤 게으른 편이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지만 자주 올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 최대한 버티기로 해본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오후 늦은 비행기라 늦잠을 실컷 자고 조식도 천천히 먹었다. 같은 방에 외국인들은 어제 파티를 늦게까지 즐겼는지 오전 10시가 돼도 일어날 생각이 없다. 유럽여행을 다니며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부지런한 것 같았다. 유럽인들은 그냥 옆 나라 여행하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지구 반대편에서 왔으니 시간을 그만큼 아껴 쓰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나의 경우는 그랬다.)
친절한 프런트에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인사를 한 후, 공항버스에 탑승했다. 폴란드는 크라쿠프만 방문했지만 이미지가 너무 좋아 폴란드 전역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만큼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