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해야 할 것.
진행하던 독서모임에서 흥미로운 질문으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질문은 단순 명료했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요?"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많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임엔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다른 이들도 행복과 부자란 말을 비슷한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닐까. 어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50억 이상이거나 총자산이 100억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자타공인 부자라 할 수 있다는 조사가 있었다. 50억을 은행에 넣고 3퍼센트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50억은 이자과세 15.4% 떼고도 매년 1억 2천만 원이 넘는 이자가 들어오는 금액이다. 월급으로 따지면 1천만 원이다.
최근 연봉 1억 이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지만 1억이면 여전히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금액임은 분명하다. 매년 1억이 타박타박 들어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동안 못 먹을 떡이라며 인터넷 화면을 마우스 커서로 열심히 찔러만 보던 000 자동차며 풀인테리어와 지상에 자동차가 없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신규아파트며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도 생각난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돈은 다다익선이다. 아~ 생각만으로 행복하다.
독서모임에서 나온 질문은 이런 부자의 기준을 물어본 것이 아니다. 맥락상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상적이고 최대치의 행복이 아닌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래도 월 300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월 500은 있어야 괜찮을 것 같아요"
"음 전 1000만 원을 불러 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현실적인 질문이었기에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고려한 답변이었다. 아직 혼자인 20대 회원, 두 자녀를 둔 부모,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 환경의 차이만큼 행복을 위한 금액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평소와 다르게 활발한 대화가 오고 갔다. 한참 후 질문은 좀 더 좁혀졌다.
"그럼 혼자 산다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요?"
부양가족 없이 어떠한 대출금도 없이 자기 명의로 된 집도 있는 상태. 게다가 축복받은 유전자라 건강에도 문제가 없는 상태.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조건을 맞춰 생각도 맞춰보려는 의도였다. 금액 차이는 처음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흔히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 순간이자 경우에 따라선 파이어족이라 부르는 삶과도 닮아있는 조건이었다.
월 30~300만 원. 이번엔 회원들이 떠올린 나이에 따라 금액이 나누어졌다. 젊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기를 선택한 이들은 여행과 여가에 비중을 두었고 중년 또는 노년이란 단어를 떠올린 이들은 안정과 혼자만의 시간에 비중을 두었다.
난 후자에 가까웠다. 내가 떠 오렸던 모습은 60대 초반의 모습이었다. 두 딸아이는 성년이 되어 자신만의 길을 분주하게 살아가고 아내는 도시에서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있으며 난 도심과 멀지 않은 한적한 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는 모습.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일까? 평소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의외로 답은 쉽게 얻었다. 독서, 음악, 글쓰기, 어느 정도 육체적 노동. 이 기준을 토대도 구체적인 돈을 계산해 봤다. 그러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어라~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 없네.' 란 답.
내가 그린 행복한 모습엔 더 이상 지식습득을 위한 책은 필요 없어 보였다. 설사 지금처럼 평균이상의 책을 읽는다 처도 '00의 서재'라는 서비스로 월 1만 원 미만이면 웬만한 책을 다 볼 수 있을 테니 큰돈이 필요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음악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으면 되고 심심할 땐 유튜브 강의를 보며 통기타를 띵띵 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글쓰기는 또 어떤가. 지금처럼 컴퓨터만 켜면 된다. 건강을 위한 육체적 노동도 작은 텃밭을 가꾸며 때때로 찾아올 손님들을 대비해 땅을 일구며 잡초를 뽑으면 될 테니 그 또한 돈이 들지 않는다.
월 30만 원 많게는 5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난 많은 돈이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가성비가 심하게 높은 취미를 가진 덕분이다. 물가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넉넉히 년간 600만 원이면 꽤 많은 부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웃음이 났다. 매일 아침 회사 가는 것만으로도 신경성 대장증후군의 버금가는 증상을 겪고 늦은 밤마다 어김없이 올 아침을 미루기 위해 애써 눈을 감지 않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치곤 너무 보잘것없고 적은 금액이었기 웃음이 난 것이다.
물론 전제가 틀렸다. 난 지금 혼자가 아니다. 곰에 가까운 여우 같은 아내가 있고 토끼 같은 어린 두 딸이 있다. 그리고 50억이라는 돈도 없다. 그러니 신경성 대장 증후군이 뭐 대수겠냐. 나의 장의 불편함과 맞바꿔 세명의 여인의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수지맞는 장사 아니겠냐는 생각에 또 한 번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실제로 희로애락이 교대로 일어나니 서운할 것도 없다. 다만 웃음의 맛이 조금 쓸 뿐이다.
아~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지금처럼 재미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월급이 기반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월급이라는 고정수입이 없다면 가장이라는 의무감에 짓눌려 바둥거리기만 하고 있을 테니 뭐 이 정도 스트레스는 양호한 것일 수도 있겠네.'라는 자기 위로적인 생각.
...
이런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상상만으로 행복했던 시간이 끝났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며 느꼈던 미래의 맛보기 행복감을 생각한다면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미래를 그려보며 현재 해야 할 일도 찾은 보너스도 받은 기분이다.
현재로 돌아왔으니 지금 할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싶다. 사람은 꿈만 먹고는 못 사니까. 무엇을 할까? 답은 고리타분할 정도로 식상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쓸모없는 물건을 사들이고 그 물건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란 타미 스트로벨의 말을 기억하며 지킬 것. 두 번째는 다른 대안이 없을 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견디고 가능하다면 즐길 것. 마지막은 꾸준히 탐색하고 '할 수 있겠다. 해보고 싶다.'란 싶은 게 생긴다면 그 마음을 따를 것. 단 감당가능한 리스크 수준에서.
맞다. '현재에 충실하자.'란 말이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미래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겹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 알뜰살뜰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자. 행복이라는 삶을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