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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비소리 Apr 01. 2023

'그리움'이란 유산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일레인 카스켓

* 이 글은 일레인 카스켓의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를 바탕으로 한 픽션 글입니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정적을 깨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마트폰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근무시간에는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인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엄마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했어?"

"..."


침묵이 흘렀다.


"여보세요. 엄마 내 목소리 안 들려?"


몇 초간 침묵 후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놀라지 마.... 아빠가..."


그렇게 이별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남겨진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아빠를 배웅하는 장례식장은 검은 옷차림으로 가득했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사고사. 어떤 예고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죽음. 그렇게 우리들은 선택권이 없는 슬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너희들이 너희 아빠가 그렇게 자랑하던 딸 들이는구나?"

"..."


우리에겐 낯선 얼굴들.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을 알고 있었다. 예의적인 대화가 오간 후 그분들 중 한 명이 말을 건넨다.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너희 아버지가 남긴 글들을 찾아보렴."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 아버지가 너희 둘 자랑을 엄청 하셨어. 그런 딸바보가 없었지... 언젠가 너희에게 줄 거라며 옛날부터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하셨단다.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말이야."


아주 오래전 아빠가 당신의 무릎에 우리를 앉힌 체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여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유품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문득 아빠 친구분의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 아빠의 책장을 둘러봤다. 책장 한편엔 우리들의 어린 모습이 담긴 30여 권의 앨범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앨범이었다. 앨범엔 10대 시절 이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 당시 너무 바쁘기도 하고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어 앨범 만들기를 멈췄다고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머지 책장칸엔 아빠가 읽었던 책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책들은 많은 줄과 메모들이 있었다. 어떤 건 몇 개의 키워드만 있었고 어떤 것은 느낌표와 물음표 있었다. 때론 장문의 글들도 보였다. 아빠의 지인분들이 말한 글이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언니 아빠가 어디에 기록이 남겼을까?"

"아빠라면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남겨두지 않았을까? 아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셨잖아."

"응. 아빠 성격이라면 그렇겠지"


다행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기록하셨을 테니 어림잡아도 15년 전에도 있었을 서비스여야 한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서비스 업체는 현재 2개밖에 되질 않았다. 한참을 로그인 창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로그인을 위한 아이디와 패스워드 생체 보안등 개인 인증을 위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언니 어떡하지? 로그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네?"

"우선 그 회사에 문의해 보자"


고객센터를 통해 아빠가 돌아가셨고, 난 딸이며, 아빠가 남긴 자료를 보길 원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요청받은 아빠의 사망 진단서와 가족관계 증명서 등을 보냈다. 얼마 후 서비스 업체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000 서비스 담당자입니다."


낯선 목소리는 건조하고 익숙한 인사를 건네어왔다.


"도움이 필요해요. 메일로 보내드렸듯이 저희 아빠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아빠의 블로그의 계정이 필요해요. 저는 큰딸이에요"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해요."

"고객님 개인 정보보호 차원에서 개인 개정은 본인에게만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돌아가셨잖아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용 약관'상 개인 정보는 본인에게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침묵) 그래도 이건 다른 문제잖아요. 이젠 아빠는...... 없고... 저는 가족이에요. 아빠가 남긴 거니 저희 가족이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 회사 '서비스 이용 약관'상 개인 정보는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고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족도 타인인가요?"

"죄송합니다. 본인을 제외한 분들은 타인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서비스를 폐쇄(삭제) 하는 것과 '추모 상태'로 변경해 드리는 것입니다."

"폐쇄는 원하지 않아요."

"그럼 고객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검토 후 '추모 상태'로 변경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희망을 무너트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아빠의 SNS는 그들이 말한 '추모 상태'로 변경되어 있었다.


'추모 상태'로 변경된 아빠의 SNS서비스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설정한 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자신만이 볼 수 있도록 쓴 글은 본인의 계정으로 로그인을 해야만 볼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공개로 설정된 '하루의 기록'이라는 카테고리 옆엔 많은 숫자가 있었다. 그 숫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마도 아빠의 친구분이 말한 그 기록일 것이다. 


'아빠는 왜 비공개로 기록을 남겼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아빠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춘기 시절 나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 아빠에게 불만을 토로한 일이었다. 그 당시 난 예민했고 준비되어 있지 않은(화장이나 옷차림 등)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나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당시 아빠는 "우리 딸은 화장을 안 해도 운동복을 입어도 대충 찍어도 늘 이뻐"라며 웃으며 대답했지만 난 그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후부터 비공개로 변경했을 것이다. 딸이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님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비공개가 지금 이런 문제를 발생시킬 거라곤 나도 아빠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남겨 놓은 기록을 찾고 싶었다.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일레인 카스켓의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란 책을 보게 되었다. 책에는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딸아이를 살해한 전 남자친구의 사진이 걸린 SNS대문 사진을 삭제를 하지 못하는 엄마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미칠 듯 밀려드는 그리움에 찾아간 딸의 디지털 세상에서 살인자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는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에는 동성애자인 아들이 그들이 인정하는 모습(자신이 믿는 종교적인 가치관)으로 남길 바랬기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그들도 사정이야 다르지만 고인이 된 사랑하는 이들과의 유대를 끊을 수 없었기에 폐쇄는 원하지 않았다. 책에 나온 그들도 나도 이유는 다르지만 고인이 남긴 유산에 접속하고 통제권을 가지기 원한다는 것은 동일했다.


그 후 같은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과 많은 정보를 공유했고 함께 디지털자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의구심을 품었던 '왜 고인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권리가 가족에게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인의 이메일은, 비록 종이로 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종이 편지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닐까요? 유서가 없을 경우 고인의 계정에 있는 내용들을 자연스레 가족에게 양도되는 전통적 자산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 법원 판단은 옳은 것이 아닌가요? 만일 가족들이 고인이 남긴 종이로 된 편지나 재정 관련 정보들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다면(많은 가족이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디지털 형식의 자료에 대해서 그렇게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는 거죠?"


전문가는 잠깐의 침묵 후 입을 열었다.


"확고히 확립된 '법 원칙'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건 자산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료는 실재성이라는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요. 편지에는 분명 쓴 사람의 인격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종이로 된 편지에는 정보도 덜 담겨 있고, 문제도 훨씬 덜 복잡하지요. 거기에는 기업이 소유한 계정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한 장의 종이, 편지라는 물질적 소유물일 뿐이지요. 당사자가 그걸 소유하는 거예요. 따라서 오프라인에서는 문제가 좀 더 간단합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서비스 제공자와 다수의 개인, 정보, 서버 같은 것들이 편지와 연관되지요. 하나의 계정은 수많은 다른 요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춘 뒤 이어서 말했다.


"법원은 그 기능을 인정하지도 않을 겁니다. 유서에는 형식이 있지요. 유서는 디지털이 아닙니다. 현재로서는요. 그건 전자 문서여서는 안 돼요. 유서는 서명을 갖추어야 하고, 법원에 위탁되어야 하며, 법적 절차대로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저자 형식으로 된 유서나 유언장은 현재는 많은 나라의 법원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어요."


"그나마 기념 계정 관리자(자신이 죽은 뒤 계정을 관리해 줄 사람을 지정)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많은 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고인이 선택했던 친구들을 삭제할 수는 없지만, 기존 친구 목록에 없던 사람들, 예컨대 죽은 이의 유산에 접속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처음 찾은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 같은 사람들을 추가할 수는 있어요. 또한 기념 계정 관리자가 고인과 미리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한 경우, 데이터 기록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유족들에게 고통을 주는 특정 자료의 삭제 등은 아직은 논의가 더 필요해요. 더 큰 문제라면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기에 이런 기능들에 대한 인식도 실행도 부족하다는 것이죠." 


전통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죽은 사람에게는 프라이버시를 누릴 권리가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선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사회에서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답은 수많은 서비스 업체들에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그와의 대화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빠가 남긴 디지털 유산이 아빠에게만 국한되어 있을 거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디지털 유산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죽은 사람의 민감한 정보나 개인 식별 정보와 연관된 정보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프라이버시 개념에는 죽은 개인과 온라인상으로 의사소통을 나눈 모든 사람의 정보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삶의 발자취(훗날 디지털 유산이 될)를 남기도록 서비스하는 많이 업체들이 가족에게도 쉽게 그 정보의 권한을 줄 수 없는 이유 또한 그 계정에 있는 내용의 많은 부분(댓글이나 메일 등)이 아빠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아빠가 만나보지도 못한 다수의 개인들과 연관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의 이메일이 그의 가족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들 중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디지털로 주고받은 내용은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까지도 포함하는 극도로 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메일에 문제가 생길 경우 청중의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곁에 아빠와는 이별은 했지만 디지털 세상의 아빠는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가 남긴 디지털 유산을 찾기 위한 여정 중 삶의 발자취를 남기는 대표 서비스인 페이북에 대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이 계속해서 매년 13퍼센트씩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모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죽은 사용자의 프로필을 계속 보유한다면, 이번 세기가 저물 때까지 36억 8천에 달하는 프로필이 추모 상태로 전환될 전망된다'


현재 세계 인구가 78억이니 36억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고인이 남긴 디지털 유산으로 겪게 될 그리움, 고통, 아쉬움, 분노 등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많은 나라에서 이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고 과거 실제로 디지털 유산의 소유권에 대한 의미 있는 판결도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다른 나라이기는 했지만....


'2018년 7월, 마침내 독일의 연방 법원에서 내려진 중요한 판결을 통해 한 판사가 가족의 요청을 동의했다. 주심 판사인 울리히 헤르만은 페이스북에 있는 디지털 자료를 물리적 자료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하면서, 죽은 10대의 부모에게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라고 페이스북 측에 명령을 내렸다'


아빠의 디지털 유산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지 긴 시간이 흘렀다. 전혀 몰랐던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지금은 나와 비슷한 그리움과 고통을 가진 이들을 돕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아빠처럼 두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소망했던 아빠의 디지털 유산이 우리 가족들의 품으로 오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찾은 열쇠로 '하루의 기록'이라는 비밀의 상자를 열었다. 


내가 첫 바다를 본 날, 내가 첫걸음을 뗀 순간, 내가 유치원에서 첫 무대공연의 한 모습,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의 기장된 모습,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모습, 나와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동생의 수많은 모습도 담겨있었다.  


그곳엔 나와 동생이 기억하지 못하던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아빠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이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을까?'

'아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질문에 답을 찾는 건 우리들 몫이었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스피커에선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온다.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는 그 노래가 왜 좋아?"

"음... 할아버지는 좋아했던 노래란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린 딸아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해왔다. 아빠는 그때 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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