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그녀는 버튼을 조심스레 눌렀다.
나이터울이 있는 누나는 노래를 좋아했다. 즐겨 듣던 라디오방송이 시작될 때면 늘 카세트에 공테이프를 넣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곡이 소개될 때면 녹음 버튼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올렸다.
버튼을 누른 후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갈까 우려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어린 동생에게 말했다.
"누나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야. 들어봐"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 울부짖는 듯한 기타. 쿵쿵 거리는 드럼 비트. 감정 가득한 목소리. 누나의 표정. 9살 남짓의 어린아이에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라디오에선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그날 누나의 애청곡은 나의 애청곡이 되었다.
우리 식구들은 음주도 춤도 못하지만 노래를 곧잘 한다. 누난 부산 남포동 거리에서 노래자랑으로 상품을 받기도 했다. 형은 서툰 통기타와 노래로 몇몇 누나들을 설레게 했다. 아버지도 만만치 않았다. 술이 잔뜩 취할 때면 멀리서도 들려오는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르며 당신만의 공연을 했다. 난 그렇지 못했다. 부끄럼 많고 소심했기에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장기자랑이었다. 노래가 싫은 게 아니라 못 부르는 내가 싫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생이 되었다. 한 친구를 만났다. 락과 메탈에 빠져있던 친구. 누나에게 받은 <Hotel California>란 오랜 씨앗은 친구로 인해 락스프릿이란 이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수많은 곡을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면 함께 열심히도 불렀다. 학창 시절이 끝나고 나서도...
스틸하트의 <She's Gone>
B612 <나만의 그대 모습>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
크라잉넛 <말 달리자>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
야다 <이미 슬픈 사랑>
첫 고음이 끝 고음인 고음불가. 소리소리 질렀다. 2~3곡이면 목소리는 걸걸해졌다. 혼자서 완창이 불가능했던 난 클라이맥스를 만날 때면 친구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자~여기서부턴 너의 무대야' 그렇게 마냥 즐겼다. 그게 락스프릿이니까.(이 녀석은 이후 대학 락밴드 보컬리스트로 잠깐 활동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라디오에서 처음 듣는 노래가 나왔다. 몇 번이고 다시 들었다. 다음날 처음으로 혼자 노래방을 갔다. 한 시간 동안 같은 노래를 불렀다.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던 노래. 다음날도 갔다. 그렇게 또 1시간 그 노래만 불렀다. 그리고 한동안 이 행동은 반복되었다. 어느샌가 나에게도 완창이 가능한 18번이 생겼다.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완창의 기쁨은 선사해 준 곡이다.
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새로 사귄 지인들과 처음 노래방을 갔다. 락스피릿에 빠져 신나게 물장구를 치던 내게 동생이 갑자기 마이크를 건내며 말했다.
"형님! 이 노래 한번 불러보세요."
화면엔 1080번이라는 숫자와 영어로 된 제목이 쓰여있었다.
Frank Sinatra의 <My Way>. 유명한 노래지만 처음 불러본 노래. 어렵지 않은 가사. 느린 템포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고음이 없는 노래. 영알못이자 고음불가인 내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노래. 노래가 끝나고 동생 녀석이 말했다.
"역시! 형님껜 이 곡이 딱이네요!"
류지광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렀다. 함께한 관중들이 갈채 보내왔다. 난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녔다. 평균이상의 깊은 동굴도 있다. 음량도 크다. 마이크 없이도 옆방에서 들린다. 내가 오랜 시간 부러워하며 갈망했던 건 미친듯한 고음이었지만 정작 내가 잘하는 건 다른 색이었다.
요즘 나의 플레이 리스트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곡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유해준 <나에게 그대만이>
김동률 <귀향>
곽진언 <고스란히>
존박 <시든 꽃에 물을 주듯>
사이토 히토리는 <철들지 않은 인생이 즐겁다>에서 행복을 위한 한 가지 조언을 들려준다.
모든 사람은 배우는 것이 다릅니다.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만들려고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피망. 당신은 고추. 피망도 좋지만 고추도 빨개서 좋군요."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중략)
빨간 꽃을 노랗게 만들려 하면 당하는 쪽도 괴롭지만 만들려는 쪽도 어지간히 고생스럽습니다.
어쩌면 난 스스로를 빨갛게 물들이려 노력을 했을 수도 있겠다. 오랜 시간 '고추는 매워야 해!'란 생각을 지닌 체. 물론 '소리 질러~~'라며 미친 듯이 목이 쉬어가며 부르던 그때도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은 지금도 좋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고추라고 믿던 한 남자는 40년이 지난 어느 날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다.
'이런... 난 매운맛의 고추가 아니라 은근함의 피망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