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어떤 역할이었나?

관계패턴이 보인다

by 햇살나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아빠, 엄마 모두 첫째였고 내가 첫 손주였기 때문이다. 세 살 때 돌아가셨지만 어렴풋이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른다. 세 명의 삼촌은 항상 나를 어깨에 태우고 놀아주셨다. 지금도 양가 친척들을 만나면 나를 보는 눈빛이 사랑스럽다. 조그맣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이제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단다.


양쪽 집안에서 첫 손주로 태어나 저절로 주어진 장녀의 역할로 인해 동생들보다 적극성이 부족할 때가 많다. 내 생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이나 실패에 대해 매우 집착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하기도 하고 불안감과 상처를 자주 느낀다. 종종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친구나 직장 동료와 같은 타인과의 교류에서도 어려움을 느낀다. 역할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이다.


부모님은 녹록하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지만 열심히 사셨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 후 고생을 많이 하셨다. 당신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는 시아버지와 아직 한참을 자식처럼 키워야 하는 세 명의 시동생이 있었으니 스트레스가 아주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상하시고 배려심이 많으셨다.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을 아시니 어렵고 불편한 일은 도맡아 하셨다. 퇴근하시면 항상 설거지와 청소를 도맡아 하셨다.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는 많이 힘드셨다. 시아버지의 신경질과 독단적인 요구사항도 다 들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며느리였다. 거기에 시동생들을 키우며 독립시키고 네 명의 자녀들까지 건사해야 하니 그 심정이 어땠을까?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제일 듣기 싫었던 말, 네가 언니잖아!


강원도에서 경기도 구리로 이사하는 데도 항상 할아버지가 동행했다. 일을 하지 않아 벌이가 없으셨던 할아버지와 어린 삼촌들은 항상 아빠와 엄마의 몫이었다. 나는 어린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부모님의 두 어깨가 무겁다는 것, 그리고 고생하신다는 것을 느꼈던 걸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할망정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린 시절 나는 가족의 눈치를 보는 아이였고.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는 모범생으로 살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말이 없었고, 책임감이 강하고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적이었고 엄마가 습관처럼 내뱉는 한숨이 정말 싫었지만 참았다. 어느 누구도 엄마의 힘겨움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가 언니잖아


정말 듣기 싫었던 말이다. 나는 동생이고 싶었다. 뭘 해도 첫 째 언니인 내가 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칭찬 한 번 받지 못했다.


언니인 이유로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생 때 마른 인형이 갖고 싶었다. 예쁜 옷도 입고 싶었고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동생들의 손에는 마른 인형이 쥐어져 있었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앞 동 1층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베란다 너머로 부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입학 원서를 써야 하는 시점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의 화학과를 가고 싶었다. 엄마의 잔소리에서도 벗어나고 싶었고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입학원서를 썼던 대학은 사립학교였다. 나는 장녀이고 동생이 셋이 있다. 부모님께서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만, 문틈사이로 등록금과 기숙사비 걱정을 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다 쓴 입학원서를 찢을 수밖에 없었다. 내 욕심대로 그냥 모른 척할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누가 강요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포기했을 뿐이다.

끝나지 않는 역할 관계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서 나는 책임감이 강한 장녀였다.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혼자 걱정하고 결정하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부모로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 스스로 아빠역할에 끼어들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저 책임감이 강한 아내다. 남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항상 무언가를 하게 된다.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엄마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나에게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런 점이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나도 엄마와 비슷한 이유로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잔소리를 할 때가 많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자녀역할 이상을 바라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보니 남편과의 관계가 보이고 자녀와의 관계도 보인다. 건강한 가족은 부모는 부모역할, 자녀는 자녀역할,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부모 역할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주는 거다. 그래야 자녀에게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엄마가 엄마역할을 하지 못할 때 자녀가 대신하기도 하고 아빠가 역할을 못했을 때 가족 중 누군가 또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역기능적 구조로 가족이 서로 엉키게 되면 관계의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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