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하는 인생, 이제 그만!

내면아이와 대화하기

by 햇살나무

대인관계에 민감한 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힘들어하실까 봐 지나치게 눈치를 살폈고 장녀로서 동생들한테 뒤쳐질까 걱정이 많았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냈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욕구가 계속해서 남아있는 것이다.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완벽해지려고 하는 성향과 연결이 되어있다. 어릴 적 지나치게 높이 부여된 나만의 기준과 그로 인해 견고해진 초자아가 원인일 수 있다.


원가족과의 역동에 따른 과한 죄책감과 열등감도 지나치게 나를 애쓰게 만들었다. 지금도 ‘다 괜찮아!’라고 하지만, 화가 날 때를 가만히 살펴보니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고 삐거덕거릴 때다. 완벽하게 했는데 다른 이들로 인해 만들어진 불편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계가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소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남을 탓하는 것이었다.


남편 탓, 아이들 탓


어릴 적, 집을 나가고 싶어 했던 때가 있다. 모든 게 엄마 탓이라고 했다. 엄마 때문에 힘들고 너무 우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나를 좀 가만히 놔두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4학년 때 결혼을 했다. 군대 간 남편을 면회하고 시댁에 가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점점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 속에서 숨이 막혔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결혼환경과 새로운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탓하고 살았다.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대학 졸업 후, 계속해서 하고 싶은 공부도 있었고 목표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새로운 가족 속으로 들어가며 더 나를 잃어버렸다.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하고 말대꾸를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은 나의 존재를 더 흐리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을 탓하고 살았다. 쉼 없이 달려온 나였지만 스물세 살 이후 나는 ‘나’로 산적이 없었다. 내 안의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았고 한 번도 달래준 적이 없다. 그 아이는 50년 동안 내 안에서 그렇게 혼자 울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묻는다.


"너 그때 얼마나 힘들었니?"

"지금은 괜찮아?"

"이제라도 말해줄 수 있니?"


나에게 가장 미안했던 일은 엄마가 나한테 감정을 쏟아낼 때, 나를 보호하지 못했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방치했고 구석에 숨어서 우는 것이 유일하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결혼 후 시댁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에 단 한 번도 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네’라고만 대답했던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 지금이라면 ‘NO’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 생긴 마음의 상처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치유의 시작, 내면아이와 대화하기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거를 어떻게 내가 재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양육방식이 맘에 들지 않고 상처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엄마의 사정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재해석을 하게 된다. 힘든 삶을 견디고 살아오신 엄마가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존경한다.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도 괜찮은 게 아니었다.


시댁이라는 곳은 영원히 낯선 공간이다. 그곳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날 잘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위해 더 낫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때 난 어른들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저 괜찮지 않아요. 힘들어요. 그냥 좀 내버려 두세요. 명령하지 마세요. 저를 존중해 주세요’ 정도였을 것이다.


불안정애착으로 생겨난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를 위로하고 달래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았을 뿐이다. 눈물이 흐르고 켜켜이 마음속 깊이 쌓여있던 오래 묵은 감정들이 눈 녹듯 사르르 흘러내렸다.


그렇다. 어떤 말로 인정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치유는 가슴으로 하는 포옹에서 시작된다. 진정으로 나를 안아주었을 때 부모 또는 상대는 나의 안전기지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타인을 탓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 그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를 입은 경험으로 인해 불안정하고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안락한 장소를 선택하고, 적절한 시간과 분위기를 조성해 보자. 내면아이가 슬픔, 분노, 불안 등의 감정을 표현하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


말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어떤 감정인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 등을 이해하고 치유해 나가야 한다. 느끼는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일기를 쓰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대화하는 것은 참 어렵고 민감한 일이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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