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셔서 다행이다.
10년 전, 엄마가 뇌암 판정을 받으셨다. 전두엽 부분에 크게 혹이 있단다. 우리 가족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모두 정신은 혼미해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르는 눈물을 주최할 수 없고 의사 선생님께 무엇을 물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혹을 떼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위험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불가능하단다. 그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관리를 잘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혹 때문에 시력에도 영향이 있었는데 챙기지 못하셨다. 그저 나이가 들어 눈이 나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관리를 하며 더 이상 커지지는 않고 있다. 우리 가족은 혹이 생긴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활하실 수 있게 조심했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시게 했다. 할아버지께도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고 사시라고도 했다.
이제는 뇌에 자리한 혹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쯤 또 하나가 터졌다. 위암이시란다. 정말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전화기 너머로 소식을 전하는 동생의 숨죽임이 어찌나 길던지. 그것도 위의 윗부분에 암이 있어서 전체를 다 드러내야 한단다. 평소에도 소화가 잘 안 돼서 소화제를 달고 사셨던 엄마다. 말 못 하고 가슴에 묻어두고 사셨으니 속으로 병이 든 거다.
어릴 적 나에게 했던 잔소리나 쏟았던 감정들도 모두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모르셨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기만 하셨다. 엄마는 약간 통통한 얼굴과 똥배가 나오고 둥글둥글한 예쁜 몸매였다. 지금은 볼 살이 쪽 빠지고 몸도 많이 야위셨다. 우스개 소리로 당신이 언제 44 반을 입어보겠냐고 말씀하신다. 엄마는 7년째 입이 위 역할을 하며 살고 계신다. 암과 함께 하는 인생이다. 그래도 축복이다. 치료해서 나빠지지 않으니 다행이고 암을 친구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니 말이다.
이제야 네가 보이는구나!
엄마를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더 이해하게 되었을 즘, 나에게 했던 한 마디는 먼지처럼 뿌옇게 쌓여있던 엄마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너도 참 잘하는 게 많은 아이였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다 보니 너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 집에 네가 바느질해서 만든 치마가 있는데 어쩜 그리 잘 만들었는지. 이제야 네가 보이는구나.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와! 진짜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다. 도저히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마음속 상처들이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왜 엄마는 나에게 고맙다. 수고했어!’라는 한마디를 해주지 않았을까? 원망만 했다. 왜,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고맙다고 하지 못했을까? 엄마도 마음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었을 거다. 고통의 진짜 이유는 힘겨움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엄마는 절대적인 외로움을 느끼셨던 것이다. 사람 좋기만 한 아버지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움에 첫 째 딸인 나에게 밖에 감정을 표현할 데가 없었던 것이다. 난 그제 서야 엄마를 용서했다.
엄마가 나를 인정하는 한마디에 나도 엄마의 고통이 공감이 되니 마음에는 어느새 평화와 기쁨, 감사와 희망이 찾아왔다. ‘네가 보이는구나!’ 란 한마디에 치유가 일어났다. 부모는 나의 뿌리다. 부모와의 관계가 엉켜있는 상태에서는 부부관계나 자녀관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를 용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장애물은 바로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하나만이 아니다. 여러 명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기억해 내고 드러내는 연습을 통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찾아야 한다. 나의 또 다른 내면아이는 수치심에 억울하게 울고 있다. 한 순간이었지만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나는 그녀를 용서하고 싶다. 내가 변함에 따라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용서하는 것만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야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심했다. 절대로 속으로 쌓아두지 않고 살아야지. 나도 엄마를 보고 자라왔고 닮았기 때문이다. 신경 쓸 일이 있으면 소화가 안 된다. 머리도 자주 아프다. 전형적으로 엄마와 닮은 나다. 엄마처럼 병들지 않으려면 과거를 대하는 나의 사고와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마음의 오래된 빗장을 활짝 열고 ‘oo야, 내가 너를 용서할게!’라고 외쳐보자. 그리고 과거 속에 갇혀있는 나를 꺼내 훨훨 날아올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