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이미지는 거짓이었다.

나의 페르소나

by 햇살나무

요즘 부케가 유행이다.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내 속에 있는 모습과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연결해 부케를 만들어낸다. 상품화하기 위해서다.『놀면 뭐 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유산슬, 린다 G는 부캐 열풍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나까 상이 대세다. 심지어는 ‘부캐 유니버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니, 부캐는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행복한 교육』(2021.7월호)에서 김종엽 교수는 사람들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부캐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래의 캐릭터(본캐)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나 노력, 성공 등의 이미지를 잠시 내려놓고 바쁜 현대생활에서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니 사람들의 호응이 좋은 거란다.


페르소나로 지친 나


부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캐릭터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을 페르소나라고 표현하는데 캐릭터 자체가 그 사람이 쓰고 있는 일종의 가면이다. 그중 어떤 캐릭터를 평소의 나의 이미지로 부각하느냐에 따라 본캐와 부캐가 나뉘는 것 같다. 나는 부캐로 인해 나를 잊고 살아왔다. 나의 본래 모습은 어떤 사람이지? 갑자기 헷갈린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배려심이 많고 성격 좋은 사람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비친다. 이런 내가 정말 본래의 나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뭘 좋아하지? 기쁠 때는 언제지? 슬플 때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지? 잘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나에 대해 만족하는지도 말이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다.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외식도 하고 데이트를 하자는 거다. 한참을 망설이다 따라나섰다. 남편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고 답했다. 그래서 간 곳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었고 우리는 저녁을 먹고 영화『고질라』를 봤다.


이 날은 내가 기억하는 끔찍한 날 중 하루다. 음식부터 영화까지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임신 중이어서 약간의 입덧이 있던 나는 고기보다는 과일이 좋았다. 괴물이 나와 싸우는 영화보다는 잔잔한 영화가 좋았던 거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배려라고 착각했고, 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가면을 쓴 거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이미지는 내가 바라는 페르소나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도 잘 모른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어쩌면 페르소나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덮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가진 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으로 말이다.


페르소나는 내면에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완벽주의적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나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2016년 2학기 가족상담치료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상담실습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나를 드러내야 하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꼭꼭 숨겨둔 채 열지 못하니 아무런 배움도 없이 한 학기가 통째로 날아갔다.


나다움에 정답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일까? 지금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 살고자 하지만 무엇인가 보장된 것이 없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가톨릭 신비주의자 토머스 머튼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인지하고 있는 자아는 가짜 자아라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제일 기쁘게 해 줄 것 같은 사람, 공동체 내에서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 특정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인 경우 가짜 자아가 진짜라고 착각하고 산다”며, 가짜 자아에 옷을 입혀 진짜 자아처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짜 자아는 머튼에게는 신이 내려준 소명에서 벗어나 자아이다.


SNS를 보면 가짜 자아들이 많다. 얼마 전 넷플렉스에 올라온 『셀러브리티』에는 가짜 자아로 덮인 SNS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쳐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 이상으로 유명해진 일부 셀럽들은 허물을 벗으면 그 속은 텅 비어 있다. 허구로 세워진 가짜 자아는 금방 허물어진다. 헛되고 의미 없는 가짜 자아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 나는 오십이다. 스스로 가짜 자아에서 벗어날 용기와 여유만 있으면 된다. 지금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의견과 욕심을 존중하며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스스로 성숙함과 자기 신뢰를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짜 자아를 찾아 나답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할 게 많다.


나다움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 정해놓은 답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십이 된 지금, 꼭 고민해봐야 한다. 내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를 생각해 보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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