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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만 파라? 그야말로 옛말!

#국영수과 vs 예체능 #폴리매스 #제너럴리스트 #통합 #통섭

국영수과 vs. 예체능

                                                  


민 군은 집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요. 1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4년 정도 됐네요. 원래는 피아노를 먼저 시작했는데 바이올린에 집중하면서 피아노는 그만뒀습니다.

 

꼭 ‘음악을 전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아주 대단한 재능을 보인다거나 하는 정도의 대단한 실력도 아닌 것 같고요. ^^;

 

그저 음악을 통해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커서도 이따금씩 악기를 꺼내 연주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는 만들어 주고 싶은 거죠.

 

그래도, 악보를 읽는 실력이나 가끔 제 손으로 ‘작곡’을 했다며 들고 오는 오선지 위 음표들을 보면서 기특해 할 때도 있어요!



여덟 살 때 바이올린 연주 발표회에 참가한 민 군.


그런데 바이올린을 배우는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아요.


선생님과 함께 교습을 할 때는 열심히, 즐겁게 하는데 집에서 연습하는 게 잘 안 되는 거에요.

 

‘많이도 말고 매일 10분 정도 씩이라도 꾸준히 연습하자’ 엄마는 성화인데, 아이는 다른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 연습을 ‘했니’, ‘안 했니’ 매일같이 실랑이입니다.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건지, 부모의 욕심일 뿐인 건지…’

 

보다 못한 저까지 나서서 버럭 화를 내고 마는 경우도 더러 있었어요.

 

“민,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만두자!”

 

그러다가도 또 활대를 쥐고, 다시 시작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네요.

 

 

런던부터 바르셀로나, 로마 그리고 파리까지,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 지하철 통로 등 곳곳에서 기타며 아코디언, 바이올린, 플루트 등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민 군도 그런 풍경을 보며 문화의 향취를 느끼는지 ‘거리의 악사’를 마주칠 때면 이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곤 했어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음악, 미술 등 예술을 교수법 전반에 통합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꼭 예체능의 길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쪽으로도 예체능이 학습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돕거나 새로운 패턴으로 사고할 계기를 주는 식으로 도움을 준다는 건데요.

 

뇌과학자,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예술 기반 학습법’으로 창의성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예술 활동에 더 많이 참가한 아이들에게서 비판적인 사고 습관이 더 잘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고요. 또, 연주회, 전시회, 연극 등에 노출되는 경험이 많을수록 다른 학습에 필요한 인지 능력도 향상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국어, 영어, 수학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강해요. 요즘에는 과학까지 더해 ‘국영수과’라고 하더군요. 저만 해도 학창시절 ‘국영수’에만 매몰돼 ‘예체능’에는 영 신통치 않았어요.

 

 


오늘날 교과목의 위계는 19세기 산업혁명, 자본주의와 함께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해 결국 사회에 나왔을 때 체제에 순응해 열심히 주어진 일을 잘 해 낼 자질이 있는가를 걸러내는 데 유용한 과목일수록 상위에 놓여지는 식이죠.

 

물론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서구 다른 많은 나라의 교육 시스템도 수학이나 언어, 과학이 미술, 음악보다 서열이 높게 취급되는 걸 볼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이 좀 더 유별나긴 합니다.



남프랑스의 마지막 행선지 니스를 향해 렌트카로 운전해 가던 중 만난 니스와 깐느 이정표






흔히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소통할 때 창의력이 꽃핀다’고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국영수과’와 ‘예체능’의 조화, 어색함 없는 어우러짐을 위해서는 다른 영역에 들어가 뛰노는 것이 거리낌 없을 정도의 최소한의 경험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 떠나서, 좋은 음악,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같이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문화적 향취’를 즐기는 것이 ‘행복한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지 않나요?

 

아바ABBA도 노래했듯,

우리는 태어나서 걷기도 전부터 춤을 추고, 말하기도 전에 노래부터 부르는 존재쟎아요!


 

“음악이나 춤이 없다면, 우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요?” Without a song or dance, what are we?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for giving it to me.


- ABBA 곡 Thank You for the Music 중

 


 

“국영수만이 답이 아니다”, “예체능을 무시하지 말라” 단순히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아이가 다양한 곳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보게끔 돕고, 그 중 정말 좋아하는 것,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민 군도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신의 전문적인 분야를 갖되 다른 여러 관심사, 그 중에서도 특히 문화적, 예술적 향취가 가득한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프랑스 남부 해양 도시 니스의 <샤갈 미술관> 강당에 놓인 피아노. 샤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류민의 글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유롭고 다른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다.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고 사람들에게도 배려를 하며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를 원한다. 왜냐하면 풍부한 지식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렉산드로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말했다. 또, “색다른 것이 위대함을 만든다”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난 행복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음악이나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다양한 비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많은 비법 중에서도 음악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도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음악 중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거나  바이올린을 키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각 중…)

음… 독서와 어려울 때는 음악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즉 아인슈타인이랑 비슷하다. 또 신중의 왕 제우스 같이 자유롭고 또… 알라딘에 나오는 자유로운 알라딘처럼 그런 이들과 같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하고 자유롭다.

여기까지가… (짧은가?!) (어쨌든.) 나의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고 원하는 것을 다 하는 행복한 사람이다.


2019년 9월 류민의 글




니스의 샤갈 미술관 Musée Marc Chagall과 마티스 미술관Musée Matisse에서





 

‘여러 우물’을 파야 하는 이유

 


니스 앞바다를 바라보는 민 군.


 분야만 정해 죽어라 파는 것과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고 두루 파는 , 어느 쪽이 나을까요?

 

예전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죠.

 

‘한 우물을 파라!’

 


그런데 더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만 뛰어난 걸로는 최고가 되기도 힘들 뿐더러 창의성, 창의력과 관련해서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관심을 두고 ‘여러 우물을 파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Jack of all trades (www.pinterest.co.kr/erikclabbers)


영어 표현에 ‘Jack of all trades’라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말로 하자면 ‘팔방미인’, ‘만물박사’ 쯤 될까요?

 

‘뭐든 다 잘 하는 사람’이라는 극찬의 표현 같은데, 알고 보면 꼭 그렇게 좋은 뉘앙스만은 아니에요. 뒤에 생략된 말이 있거든요.

 


“Jack of all trades - master of none.”


 

이것저것 웬만큼 잘 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어느 하나라도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다는 부정적인 느낌도 담고 있는 거죠.

 




그런가 하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냐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냐 하는 논쟁에서 우물 하나를 제대로 파려면 “일단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며 한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우물만 집중해 파라는 건가, 여러 우물을 동시에 파라는 건가!

 

대체 어쩌란 걸까요???

 

  




지나간 19세기, 20세기는 ‘전문가의 시대’였다고 할만 합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국부론』(1776년)에서 분업, 즉 전문화를 주창한 이래 지난 200년 넘게 힘을 얻어 왔죠.

 

한국에서도 ‘한 우물을 파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전후 고도 성장을 구가하던 반세기 동안 흔들림 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일생을 바칠 정도로 한 분야에 오래도록 집중함으로써 개인적 성공을 이루고, 그 힘으로 국가, 사회도 발전할 수 있었죠.

 

자녀 교육에서의 ‘조기 전문화’ 전략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타났습니다.

 

재능의 싹을 보이는 분야를 최대한 빨리 발견해 ‘올인’하는 것. 몇몇 성공한 스포츠 스타들, 콩쿠르 우승자들이 살아있는 증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의 조기 전문화 신화도 다시 생각해 볼 때입니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팠는데 끝내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어제까지 맞던 게 오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정도로 시시각각 바뀌는 변화의 시대에 어느 한 분야에서 아주 깊은 전문성을 얻는다 해도 21세기의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의 전문성으로 해결해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를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 명소 #I Love NICE

                                                  






바야흐로 ‘폴리매스polymath’의 시대.

 

폴리매스는 박식가博識家, 즉 ‘지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뜻합니다. 나아가 다재다능한 사람, 팔방미인을 의미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tvN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출연진을 생각해 보세요.

 

저마다 문학, 역사, 과학, 음식, 건축 등 특정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서서 ‘뭘 그런 것까지~’ 싶은 TMI too much information로 쉴새 없이 수다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박학다식하다’는 한 마디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최근 기업이 찾는 인재상도 그래서 어느 특정한 한 분야에만 전문성만 가진 사람보다는 본인의 기본적인 직무 역량에 더해 업무와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갖고, 이색적인 취미와 취향을 가진 이들을 인재로 맞아들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추리 소설의 대명사 <셜록 홈즈> 시리즈를 남긴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 1859~1930)은 본업이 ‘의사’였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도 의과대학으로 유명했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죠.

 

하지만 주기적으로 단편 소설을 써서 잡지에 기고하거나 이혼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혼법 개정 협회의 장을 맡기도 했고 포경선에 올라 선원으로 일하는 등 본업과는 크게 관련 없는 경험을 많이 했죠. 심지어 직접 ‘사설 탐정’으로 나서기도 했다네요.

 

다독가이기도 했던 그는 단편 소설에서부터 나폴레옹 회고록 등 역사서, 과학에서 남극 탐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책을 섭렵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코난 도일 말고도 이런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도 자신의 화풍을 완성하기 전까지교사, 서점 점원, 전도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고 하죠.






‘성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릅니다.

 


꼭 경쟁에 이겨 1등이 되는 것이 성공은 아닙니다만, 많은 이들이 그게 성공의 척도인 양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야에서 ‘최상위’ 다시 말해, 상위 1%, 상위 0.1%에 드는 것이 과연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어려서부터 어떤 분야에 그렇게 천재적인 소질, 영재같은 자질을 보이는 아이가 많지도 않거니와 아무리 축구를 잘 하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메시나 호날두, 박지성, 손흥민처럼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최고의 코치, 스스로의 피나는 연습, 부모의 뒷바라지, 모든 조건이 충족돼도 누구나 타이거 우즈나 김연아가 될 순 없지요.

 

재능과 노력에 더해 ‘운’도 따라줘야 하는 거고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앞서 살펴본 제너럴리스트폴리매스에 힌트가 있습니다.


 

우선은, 인생 초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관심을 폭넓게 살펴 봐야 합니다.

 

그러다 때가 오면 한 분야를 전공 분야로 삼고 거기서 본인이 닿을 수 있는 최대한 높은 수준의 ‘탁월함’을 추구합니다.

 

꼭 ‘세계 최고’, ‘상위 1%’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대신, 자신의 주력 분야에 더해 한두 개 정도의 추가적인 영역에서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쌓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을 연결하고 통합합니다.

 

이것이 ‘21세기형 폴리매스’의 조건입니다.

 


2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하는 것보다 이 전략이 나은 이유는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연결 짓고, 종합하고, 통합하는 가운데 전에는 없던 새로운 영역, 나만의 영역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신경정신과 의사가 됐는데, 동시에 인류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 나가다 보면 ‘신경인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신경의학 분야로만 치면 상위 1%에 들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자기가 새로 개척한 이 분야에서만큼은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를 조합해 새로운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실력 있는 요리사이면서 드론을 잘 알고, 잘 조종하는 사람,

IT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인물 크로키를 그리는 사람,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자인데 구연 동화에도 소질이 있는 사람,

패션 전문가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섭렵하고 있는 사람…

 

 

더 많은 가짓수를 연결할수록, 더 관계가 먼 것들을 섞을수록 탄생하는 새로운 영역은 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되죠. 즉,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롭게 창조된 분야에서는 그걸 만든 사람이 1등입니다. 그 분야가 유망하다고 여겨지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오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 분야에서 본인만이 ‘유일’한 존재일 테니까요.

 

물론, 그게 꼭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돈이 되려면 시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별개의 문제겠죠.

 

하지만, 여러 영역에서 기반을 닦아 둔 사람일수록, 원한다면 ‘돈이 되는’ 조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긴 할 겁니다.




민 군이 여행 중 유럽을 테마로 작곡한 악보. ^^;




 

모바일 앱 개발자, 사용자 경험 관리자,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가, 빅 데이터 분석가, 드론 전문가, 자율주행차 엔지니어, 소셜 미디어 컨설턴트,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 직업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불과 10년 전, 15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에 없던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직업의 관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 자동화 등 기술 발전으로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 될 거에요.

 

위에 예를 든 직업들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어요.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나겠지요.

 

미래 어떤 직업의 전망이 밝을지 미리 알고 모든 것을 거기 맞춰 ‘한 우물을 파는’ 식으로 준비하는 전략은 아마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겁니다.

 

하나의 전문 분야만 파기보다,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쌓고, 더 많은 데 관심을 갖고, 또, 더 빠르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능력을 키운 사람에게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겁니다.





 


 

지식은 물론 감정까지 통합!

 

니스의 길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과학자, 예술가, 혁신가들은 다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경험을 섭렵하고 이를 자신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어다 붙인 성공 사례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오로지 한 분야만 파고 들어가는 대신 최소 두 개 이상의 영역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이를 간단히, 혹은 기발한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자기만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젖힌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개미 연구 등 생물학자로 출발한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E.O. Wilson, 1929~)은 1975년 『사회생물학』이라는 제목의 책과 함께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그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사회학’과 ‘생물학’은 단지 각각의 독립적인 연구 영역으로 나뉘어서만 존재했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이전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모두 제각각 다른 영역으로만 분리되어 취급되던 시대에 누구보다 한 발 앞서 이 모두를 통합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맥, 아이폰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미래는 통합하는 자에게 있다.” The future belongs to the integrators.

 

뉴욕주립대학 총장을 지낸 미국의 교육자이자 교육학자 어니스트 보이어(Ernest L. Boyer, 1928~)가 말했듯 21세기 ‘지식 경제knowledge economy 시대에는 특정한 어느 한 분야에만 매몰되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통합’할 줄 아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다양한 영역에서 갈고 닦은 능력을 연결하고, 종합하고, 통합해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창조해 내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죠.

 

‘통합統合’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요소들이 조직돼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통합’ 하면, 흔히 ‘학제 간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통섭通涉, interdiscipline’과 혼용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학문 분과, 즉 지식 영역의 통합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니스 해변. 저 아래로 내려가 잠시 파도에 발을 담갔다.

 


니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그런데, 꼭 물리학, 수학, 인문학 등 학문 분과나 뇌로 하는 인지적인 활동, 지식의 영역에서만 경계를 허물어 통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시각, 청각 등 오감을 포함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감각과 감정도 통합의 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경계를 너머 종합된 감각과 느낌, 감정은 또 앞서 언급한 학문적 영역의 지식에 통합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어떤 이는 맛에서 기하학 도형의 모양을 느끼고, 어떤 이는 방정식에서 색깔을 떠올릴 수 있는 거죠.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시각과 청각에 후각, 미각, 촉각까지 넘나들며 연결하는 다중감각multiple-sensing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0세기가 전문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다. 이제 어느 것 하나만 잘하는 것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앞으로 지식사회를 선도해갈 인재들은 전문가들이 간과한 지식 대통합을 통해 분야를 넘나드는 창조적 사고를 해야 한다.”


-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책 『생각의 탄생』추천사에서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냄새를 ‘기억’의 문제와 연관 지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를 맡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되지요.

 

냄새가 기억을 자극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저 역시 매년 5월의 부드러운 미풍이 코끝을 스칠 때면 그 독특한 냄새와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촉감에 장미꽃 흐드러진 길을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어린 시절 어느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냄새를 통해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어느 한 감각 영역의 자극이 다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연상적 공감각共感覺, associational synesthesia’이라고 하는데요.

 

어린이의 경우 약 50퍼센트, 즉 절반 정도에서 가능하지만 어른 중에는 단 15퍼센트에서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래 갖고 있던 이 능력을 잃어간다고 봐야 하겠죠? 마치 상상력이 메말라 가듯이…





니스 숙소에서 비빔면에 스테이크를 곁들여 한끼 식사.


아이가 커서 뛰어난 연결, 통합 능력을 꽃피울  있게 하려면 어려서 어떻게 도와야 할까.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고, 직접 만져보고 또, 느끼고, 경험해 보게 하는 활동을 가능한 한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특별히 더 관심을 보이고, 즐기는 것들은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그러다 보면, 그렇게 뿌려진 수많은 ‘씨앗’들이 아이가 커 가면서 결국 두서너 개로 압축될 거에요.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

 

그것이 그림 그리기일 수도 있고, 역사나 문학일 수도 있고, 수학일 수도, 코딩일 수도, 또는 축구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잡스가 말한 것처럼 아이의 인생에 있어 미래에 이어지게 될 점들dots이 이미 찍히기 시작했는지 몰라요.

 

물론 그 점들을 잘 연결하는 것은 아이가 커서 스스로 해 나가야 할 일이겠지만…

 

오늘,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 그 경험이 먼 훗날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류민 군, 바이올린 배운지 1년 정도 됐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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