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사색 #멍때림 #잡담 vs 침묵 #유럽 여행 마무리
프랑스 파리, 도심을 가르는 센느 강.
총 5주, 35일 일정의 유럽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에 도착했습니다.
8월을 지나 9월도 중순. 한창 여름날, 조금 덥다 싶을 때도 있지만,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여행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평일 낮에도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파리 사람들을 보니 잠시 일을 떠나 온 가족이 여행을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 아래로 강변에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 와인을 즐기는 연인들, 왁자지껄 수다에, 몸 장난을 하는 젊은 친구들…
한국 사람들은 장시간 열심히 일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책상머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게 곧 ‘근면 성실’의 증거요,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하는 게 미덕으로 받아들여져 온 나라. 그 속에서 놀이와 휴식, 편안함과 여유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죠.
하지만 이런 문화에도 이제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워라밸work-and-life balance’이 화두로 떠오르고,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제도적 변화도 찾아왔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 여가와 취미, 가족과의 시간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생산성에 대한 숭배와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죽도록 일하기’를 장려하던 나라에 찾아든 최근의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단지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는 것으로 무한정 성과를 높일 수 있을까요?
‘20세기에는 통했을 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농업 위주의 과거나, 공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서는 노동 시간을 늘릴수록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육체가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나마도 상한선을 둘 수밖에 없었겠지만…
하지만 21세기 지식 기반의 경제에서는 더 이상 일한 시간만큼 비례해서 꼭 생산성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혁신적,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무조건 업무에만 메어 있기보다 오히려 일 할 때는 일 하고, 또 쉴 때는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재미 교포 2세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해 온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Kim Pang 박사도 그 중 한 분입니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크탱크의 컨설턴트이자 스탠포드 대학 객원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인 저술가입니다.
방 박사님은 앞선 책 『일만 하지 않습니다』(한경BP, 2018)의 후속으로 덜 일하면서도 더 잘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을 연구하고 계셨는데요. (2020년 8월에 『쇼터: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시대가 온다』라는 제목으로 한글본이 출간됐습니다.)
‘주 4.5일 근무제’ 등 한국에서 근무 시간 단축을 선도해 온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에 대해 알고 싶다고 연락해 오셔서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집중적으로 일하고, 또 완벽하게 쉬는 사람이 되려면 산책을 즐긴 다윈이나 낮잠을 좋아했던 처칠 등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작가, 과학자, 사상가들이 그랬듯 ‘의도적인 멈춤’을 위한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알렉스 방 박사님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결국 일하는 시간의 총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집중도 있게 일하고, 또 잘 쉬는가가 중요하다는 거죠.
나아가, 너무 업무에만 너무 매몰되기보다 오히려 적절히 여가를 즐기며, 잠시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밀린 잠을 자며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떠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어떤 이에게는 혼자만의 사색이나 공상, 또는 명상에 드는 것, 어떤 이에게는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음, ‘멍때림’일 수도 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꼭 시간을 낭비해 버린 건 아닙니다.
창의성과 관련해 연구자들은 바쁜 일상 중에 잠시 멈춰, 스스로를 챙길 ‘혼자만의 시간’을 눈 여겨 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그가 고독한 ‘외톨이’였다는 점을 꼽는다면 쉽게 수긍이 되시나요?
그런데 실제 아인슈타인은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 골똘히 생각에 빠지거나, 공상을 즐기며 조용히 홀로 노는 아이였다고 해요.
벤자민 프랭클린, 마리 퀴리, 토마스 에디슨, 그리고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기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면모가 성인이 됐다고 크게 변하진 않았겠죠?
멜리사 실링Melissa Schilling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책 『괴짜들의 비밀』(새로운현재, 2018)에서 뛰어난 혁신가의 독특한 공통점 하나로 바로 이 같은 사회적 ‘단절separatedness’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바깥 세계와의 강한 단절을 경험했다는 겁니다.
그런 단절감 덕분에 사회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는 끝 모를 자신감을 얻었으며, 때로 실패하더라도 열정적으로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다는 거죠.
- 앨버트 아인슈타인
고독함이나 외톨이 같은 삶이 더 바람직한 거라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이들과 어우러지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존재로 사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다만, 일상의 중간중간 아주 잠깐씩이라도 혼자만의 사색을 위한 시간, 상상과 공상의 시간,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갖는 것이 창의성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깊이 새겨 둘만 합니다.
- 빌 게이츠
동양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최근 서양에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이 바로 ‘명상meditation’과 ‘마음 챙김mindfulness’입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글로벌 IT 기업의 CEO들에게 명상은 스트레스를 줄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은 물론, 잠재된 창의력과 집중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가 한 때 ‘미신에 가깝다’고까지 했던 명상에 대해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 된 배경에는 비교적 최근에야 활발해진 과학적 연구 성과가 있습니다.
명상이 집중력, 기억력을 향상시킬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고 통증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지요.
명상의 주된 목적이 꼭 창의성인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명상으로 창의성에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이 적지 않죠.
고도의 집중력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명상의 와중에도 끊임 없이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는 너무나도 부지런한 우리 뇌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명상에는 수많은 다른 종류의 방법이 있는데요, 그 중에도 대중적인 것이 호흡, 즉 숨의 들고 남에 집중하면서 내 몸과 마음 상태를 챙기도록 하는 ‘호흡 명상’입니다.
이 명상법에서는 때때로 딴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굳이 죄책감을 갖거나, 떨쳐버리려 억지로 힘을 들이기보다 그저 ‘아… 생각이 내게 왔구나’ 하고는 다시 호흡에 집중하며 그 생각이 지나가도록 두라 하거든요.
잡생각 없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면 좋겠지만 명상이 오히려 끊임 없이 ‘방황하는 마음’을 확인시켜 준달까요? 명상의 초심자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알 거에요. ㅎㅎ
결과적으로, 명상은 고수에게든 초심자에게든 집중력이나 각성된 정신 이후 더욱 또렷해지는 아이디어로 혹은 마음의 방황에 따른 곁가지 생각으로 창의성이 활성화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외부 세계와 단절돼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방법에는 깊은 사색이나 공상에 빠지는 것도 있지만 멍때림도 있습니다. 언뜻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멍때리기가 창의성의 비결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황보현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광고회사 HS애드에서 대한항공, 배달의민족, 쓱 - SSG닷컴 등 화제가 된 광고를 여럿 만든 장본인입니다.
황보현 CCO는 ‘논리와 창의 사이’라는 제목의 세바시 강의에서 창의성의 2가지 비밀로 ‘궁리’와 ‘멍때림’을 꼽았습니다.
창의성에 도달할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은 다할 궁窮, 이치 리理, ‘궁리’ 즉, 논리적인 생각을 끝까지 밀어 부쳐 보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다윈, 뉴턴 등 창의적인 발견을 한 이들이 하나같이 ‘불현듯’,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는데, 이런 ‘번쩍’ 하고 떠오르는 깨달음의 순간 ‘유레카 모먼트Eureka moment’가 그냥 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창의적 발견이 하늘에서 절로 툭 떨어지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관찰하고, 되짚어보고, 처음으로 돌아가보고, 곱씹어보고, ‘만약 이렇게 한다면?’, ‘왜 이건 안 되지?’ 삐딱하게 생각해 보고, 이런 치열한 논리적 과정이 그 이면에 숨어 있다는 거죠.
치열하게 고민해 보는 거야 뭐 그렇다 치고, 재미있는 건 두 번째 비결, 멍때림입니다.
‘유레카’라는 말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잘 아시지요?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알아차린 아르키메데스의 일화.
히에로 2세라는 왕이 장인에게 순금으로 된 관을 만들게 했는데, 완성된 왕관이 정말 순금으로 만든 것인지 의심을 품은 왕이 아르키메데스를 불러 진위 여부를 알아내도록 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아르키메데스는 엄청난 마음의 부담을 느끼며 이틀 밤, 사흘 밤을 고민, 또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도저히 모르겠다’는 괴로운 심정으로 목욕을 하게 됐죠.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다 깜빡 졸았는데, 그 순간 번쩍 떠오른 겁니다.
‘알았다!’
여기서 중요한 게 ‘깜빡 졸았다’는 부분입니다.
물론, 그에 앞서 사흘 밤, 낮을 고민했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지요.
‘발명왕’ 에디슨은 의도적으로 이런 발상법을 이용했다고 해요.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를 때면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가 손에 쇠구슬을 들고 잠에 들기 좋은 편한 자세로 앉는 거죠. 그러다 살짝 선잠에 들고 더 깊은 잠에 빠지려는 순간, 손의 힘이 스르르 풀리면서 구슬을 대야에 떨어트리게 됩니다.
‘쨍그랑~’
이 소리를 들을 때면 거의 99% 아이디어가 나왔답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살짝 선잠에 들거나, 샤워를 하거나, 천천히 산보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또는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보거나 하는 멍때림의 순간에 유레카 모먼트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 황보현 솔트룩스 CCO, 세바시 강연 중
그렇다고 허구한 날 멍때리기만 해선 곤란하겠지만요. ^^;
- 김영훈 교수,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민아, 우리 이 기차 우리 내릴 역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 게임 할까?”
유럽 여행 중 이동하는 기차에서 민 군에게 제안했습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저희 민 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 종일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 친구에요.
혼잣말을 하는 한이 있어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한이 있어도, 결코 한시도 조용히 있지를 않죠. ㅎㅎ
아이 성격으로 치자면야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너무 내성적이고 말을 안하는 편보다는 끊임없이 재잘대는 편이 낫죠.
제가 그랬거든요.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 형과 저, 이렇게 두 아들을 뒀지만, 저를 두고 주변에서도 종종 ‘딸 같다’고 했대요.
학교든 어디를 나갔다 와서는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 일을 시시콜콜 다 이야기하는 ‘수다쟁이’였던 거죠.
여기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도 엇갈리는 듯 보입니다.
한쪽이 내 안의 뭔가를 바깥으로 표출하는 거라면, 다른 하나는 바깥의 것을 안으로 받아들여 숙성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만의 생각을 할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죠.
“매일같이 같은 친구들과 나누는 잡담은 당신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노트를 들고 홀로 산책을 가라. 천천히 걸으면 한결 맑아진 머리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어느 외국 잡지에서 접한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언뜻 그럴 듯한 말로 들립니다.
민 군에게 침묵 게임을 제안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거든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한 시간 정도라도 민 군이 창 밖을 보며 ‘사색’에 잠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너무 쉴 새 없이 떠드니까. ㅋㅋㅋ
우리의 뇌는 외부로부터 오감으로 받아들인 각종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고, 또 바깥으로 내보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쉴 새 없이 되풀이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이 바깥에서 들어온 정보를 나만의 지식, 나만의 감정, 경험, 기억으로 바꿔내는 부분입니다.
그저 건성으로 흘려 보내 잊어버리거나forget 입력input되기가 무섭게 바로 출력output되도록 하면 정작 안에서 찬찬히 숙성될 시간이 없어요.
마치 소가 먹은 음식을 되새김질하듯이 어느 정도라도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언제나 조용히 속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정답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충분히 숙성되기 전이라도 내뱉고, 나누고 하는 과정이 반대로 숙성을 돕기도 하거든요.
사전적 정의는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 잡담을 서로 간에 ‘신뢰를 만들어가는 원료’로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들 사이의 잡담은 업무와 무관한 사사로운 대화라고 하더라도 참여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서로의 유대감을 높여 주지요.
창의적 아이디어의 발굴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잡담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벽이 낮아지면 일견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도 좀 더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그래서 여러 기업들에서도 무조건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하고, 단 한 순간도 ‘딴짓’은 못하게 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많이 줄고 있어요.
오히려 업무와 무관한 잡담도 하고, 잠깐이나마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경우가 늘고 있죠.
그 바탕에는 ‘문제’가 됐든, ‘임무’가 됐든 너무 거기에만 파묻혀 골몰하기보다 때로는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게 하고, 일부러 분위기를 조금 흐트려서라도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하게 도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뇌신경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나 레러(Jonah Lehrer, 1981~)는 자신의 책 『이매진』(21세기북스, 2013)에서 창의성이 발현되고 심화되는 과정과 원리에 대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그러니까 기업이나 도시 차원에서도 상상력을 통찰과 혁신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 방법들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사랑 받는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는 1986년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천만 달러에 사들인 후 이제는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회사인데요.
이런 픽사의 성공 신화의 바탕에는, 애플처럼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 등 여러 구성원들이 끊임 없이 서로 소통하도록 돕고자 사무실을 설계하고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돕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은 보통 건물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픽사 사옥을 가 보면 회의실은 물론, 커피숍, 화장실까지 모두 건물 중앙의 커다란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요. 오며 가며 마주치고,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라는 거죠.
이런 환경 설정 역시도, 빈번하게 잡담을 주고 받는 것이 ‘집단적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잡스의 철학에 따른 거라고 합니다.
- 강성모 전 카이스트KAIST 총장, 2017년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 연구자들은 ‘잡담’을 많이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부서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청소부와도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밀집된 대덕특구도 독서실 같은 칸막이를 허물고 수시로 모여 잡담해야 합니다.”
<알쓸신잡>에 출연해 많은 이들에게 친숙해진 건축가 유현준 님이 한 특강에서 한 말입니다.
독서실 칸막이 구조로 집중력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 성과는 “담장을 허물고, 모여서 잡담을 시작할 때” 가능해 진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학생들의 공부 공간뿐만 아니라 기업, 일터에서도 칸막이를 없애거나 낮추는 추세입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런 풍경일지도 몰라요. 칸막이 독서실이 아니라 카페 같은 열린 공간에서 공부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일터도 마치 카페처럼 열린 공간이 그리 어색함이 없는 거죠.
‘침묵’, ‘근엄함’, ‘엄숙주의’만 추구하는 것은 창의성에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숨막힐 듯 한 위계 속에서 창의성은 질식 당하고 말죠.
물론, 혼자만의 사색이라는 것이 꼭 군대식 위계 문화나 엄숙주의를 뜻하는 건 아니겠지요.
결국,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침묵과 잡담, 모두가 다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겠죠.
너무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쪽으로 쏠려 있다면 그것에 균열을 내는 낄낄거림이 필요할 수 있고요. 반대로 너무 가볍고, 쉴 새 없이 떠드는 쪽이라면 조금은 더 사색과 집중, 몰입이 필요하겠습니다.
5주에 걸친 유럽 가족 여행이 어느덧 막바지입니다.
민 군과 거쳐온 여행지를 되돌아보고 싶어졌어요. 나라마다, 도시마다 상징물에 대해 얘기해 보곤 했지만 이번에는 질문을 좀 달리 해 봤습니다.
“민아, 우리가 창의성을 찾아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쟎아~ 이제 파리를 마지막으로 곧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야. 민이가 생각할 때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도시는 어디였어?”
“음… 체코 프라하? 프라하 성이랑 동물원, 마리오네트랑… 그리고 그, 막 벽화랑 낙서 있는 벽!”
“존 레논 벽?”
“응! 그거!”
“그렇구나~ 민이는 프라하가 가장 창의적으로 느껴졌구나~”
유명한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피렌체, 파리도 아니고, 멋진 건축물들로 가득한 바르셀로나, 로테르담도 아니고, 의외로 프라하였네요, 민 군에게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런던.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현대식 고층 빌딩, 여왕의 궁전과 근위병,세계적 뮤지컬 공연이 공존하는 곳.
정열적인 태양과 생기 넘치는 사람들, 음악과 춤, 음식… 그리고 가우디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바르셀로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프랑스 남부 아비뇽, 아를, 엑상프로방스, 니스.
고대 제국의 꿈을 간직한 로마, 중세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 피사, 그리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음악 천재, 미술 천재들로 가득한 잘츠부르크와 빈.
보헤미안의 정서와 자유의 갈망이 깃든 ‘동유럽의 꽃’ 프라하.
자유분방한 문화, 혁신적인 건축물들, 치즈와 나막신, 풍차를 지키고 있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대문호와 화가들이 사랑한 아름다운 광장 그랑플라스, 초콜릿, 와플, 만화 박물관… ‘작지만 큰 유럽’ 브뤼셀.
에펠탑과 개선문,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까지. 여유와 낭만, 음식과 노래, 패션, 책… 문화의 정취로 가득한 도시, 파리.
‘음, 그래~ 이제 집으로 향할 시간이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