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창의성 찾기 #불가능을 상상하라 #리추얼 #창의성 스위치 달기
늘 하던 대로의 편한 길이 아니라 조금은 낯설고 어려워도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 없이 시도하게끔 하기. 내 앞의 경계를 허물고 가능성을 넓혀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모험하도록 하기. 그리고, 처음 가는 길에서 실패나 실수는 당연한 과정일 뿐 그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임을 알게 하기. 어쩌면 이런 정도가 우리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자라나기 위해 배워야 할 전부인지도 모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5주 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추석 연휴 내내 시차에 여독으로 힘겨워 한 엄마, 아빠와는 달리, ‘뭐, 딱히 적응이랄 게 있냐’는 듯 쌩쌩하던 민 군은 학교에 나가 반가운 선생님, 친구들과 만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주말이 돼서야 깊은 잠을 몰아 잤습니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빠져들던 어느 주말, 여행 중에 끄적여 둔 메모와 수백 장의 사진을 더 늦기 전에 정리해 두자고 다시 꺼내 들었어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시 그려지다가도 ‘내가 정말 아이, 아내와 함께 여길 갔던가…?’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 한 켠에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무언가가 남지 않았을까…?’
빨간 이층버스와 지하철로, 또 걸어서 누비던 런던의 거리 거리들, 바르셀로나의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봤던 강렬한 플라멩코 공연. 아비뇽행 기차를 잘못 내려 우버 택시로 밤 고속도로를 달렸던 일.
끝 없이 펼쳐진 보랏빛 라벤더 밭 너머로 뉘엿뉘엿 지던 붉은 해와 세잔의 아틀리에에 들어설 때 콧잔등을 간지럽히던 부드러운 바람. 베르동 계곡의 작은 마을, 칠흑 같은 밤하늘에 빛나던 예쁜 별들, 그리고 니스의 따사로운 햇볕과 조약돌,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파도.
피렌체 두오모 아래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기타, 바이올린 선율… 덜컹덜컹 잘츠부르크행 밤 기차 좁은 침대에서 힘겹게 청했던 쪽잠. 프라하 성 밑 스타벅스, 화장실로 끝없이 이어졌던 나선형 계단.
난생 처음 용기를 내서 참가했던 암스테르담 광장의 거리 공연, 킨데르데이크 풍차 마을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렸던 자전거 길. 빅토르 위고, 르네 마그리트도 거닐었을 브뤼셀의 광장과 골목들. 여행 마지막 날 밤, 유람선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파리의 야경.
그리고 그 기억의 사이 사이로 낯선 곳에서 난생 처음 새로운 뭔가를 만났던 흥분감, 지금껏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했던 설렘과 두려움, 역사와 문화의 향취로 더해졌을 풍부한 감성, 타인에 대한 관심, 배려와 연민, 사랑의 마음, 그렇게 먼 훗날 언젠가 문득 문득 꺼내 쓸 수 있는 작은 ‘창의성의 씨앗들’도 심어지지 않았을까…
가을이 지나 겨울,
다시 봄, 여름, 가을…
이따금씩 TV 화면으로 유럽 소식이 들려왔어요.
안타깝게도 안 좋은 뉴스도 많았습니다.
베네치아는 폭우로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바닷물이 차 올랐고, 프랑스, 스페인은 폭설로 국도와 산간 지방이 고립됐다고 하고, 곳곳에서 이상 기후로 피해가 속출했다는 걱정스런 뉴스들. 급기야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타는 안타까운 영상까지…
그래도 자기가 직접 여행했던 곳이라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민 군도 쫑긋 귀를 기울이고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대한민국 서울, 학년이 올라가면서 따라잡아야 할 공부 와중에 우리의 ‘창의성을 좇는 여정’도일상에서 이어 나가야 할 터였습니다.
편히 가 보겠다는 속셈이었죠. ^^;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면, 체계적이진 않을지라도 그래도 꽤 많은 결과물들이 나타납니다.
평소 같으면 좀처럼 하지 않았을 일을 해 보라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떨어져 보라
즐겨 듣는 장르가 아닌 생소한 음악을 들어 보라
매번 방문하던 곳도 다른 동선을 택해 가 보라
뜬금없이 사전을 가져와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라…
대체로 이런 것들…
- 어니 젤린스키 Ernie J. Zelinski, 심리학자, 저술가
아이의 창의성에만 국한된 건 아니지만, ‘창의적으로 되기 위한 29가지 방법’ 같은 것도 많아요.
그 중 몇 가지.
7. 샤워하면서 노래를 불러 보세요.
16. 스스로의 실수에 관대해 지세요.
17. 가 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방문해 보세요.
20. 때로는 위험하다고 여기는 일을 해 보세요.21. 규칙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보세요.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창의적 인성 검사’에 나타나는 단초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어떤 사물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 비록 실패가 예상될지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면 하는 편이다.
- 춤이나 노래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 ‘그것은 왜 그럴까?’하는 질문을 많이 한다.
- ‘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답을 보지 않고 끝까지 풀려고 노력한다.
- 잘 모르는 것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를 좋아한다.
-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기 전부터, 여행 중 늘 생각했던 것들 창의성과 관련한 수많은 책과 연구 결과물, 주로 강조하고 있는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부터 하나씩 시작해 봐야겠습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년~1989)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1865)에 나오는 대화 중 일부입니다.
팀 버튼 감독이 영화화한 같은 이름의 2010년 작품으로 접한 분들이 더 많을 것 같네요.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들 중에는 불가능에 도전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려면 우선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겠죠? 예를 들어, 날개도 없는 인간이지만 ‘새처럼 날고 싶다’고 꿈꾼 것처럼요.
‘엉뚱하다’, ‘어처구니 없다’ 비웃음을 사면서도 누군가는 그런 불가능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도전합니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펼쳐나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괴물 재버워키를 물리칠 수 있는 힘, 그 원천은 바로 정해진 틀이나 타인의 말에 갇히지 않고 불가능을 상상해 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작가 캐럴은 이런 상상력이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을 생각해 내고자 ‘하루 30분씩 매일같이’ 노력하듯 꾸준한 연습practice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려 한 건 아닐까…
수학자, 사진사로도 활동했던 캐럴 자신부터도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absurdity’을 많이 사랑했다고 해요.
이를테면 회중시계를 꺼내보며 말을 하는 토끼, 마시면 몸이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하는 물약,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사형’ 명령을 내려버리는 괴팍한 여왕 같은 것들 말이죠.
그리고 이런 상상들이 모여 19세기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라는 앨리스 시리즈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매일 ‘여섯 가지 불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연습’을 하듯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의 리스트를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동네 도서관에 가서 자원봉사 사서 선생님을 불렀더니
돌아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인슈타인 박사였다든지,
서울 집에서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섰는데
뉴욕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서고 있더라든지…
실제 이런 방식은 소설가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욤 뮈소(Guillaume Musso, 1974년~)의 소설 『센트럴파크』(밝은세상, 2014)는
연쇄 살인마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파리의 형사 알리스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활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가브리엘,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보니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함께 수갑에 채워진 채 눈을 뜨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역시 3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가는 편지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기묘하면서도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거나 ‘만일 ~라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가정에 기초한 시뮬레이션과 ‘가상/가정 놀이’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에 대해서는 미래를 예견하는 힘을 주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결국 현실에 적용 가능한 대안을 찾게 하는 힘을 줍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민 군을 보니 그림 노트를 펴 두고 한창 공상에 빠져 있습니다.
민 군이 요즘 샤워에 맛을 들였습니다. 말 그대로, 한 번 들어가면 함흥차사. 나오질 않는 거죠. ㅡ,ㅡ;
결국 엄마가 한 마디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듯한 물에 오래도록 샤워를 하는 것, 사실은 제가 오래 전부터 좋아해 온 습관 같은 일이에요.
뜨끈한 물을 맞으며 빗으로 두피를 시원하게 자극해 줄 때면 언제부턴가 ‘번쩍’하고 아이디어 조각들이 튀어 오르는 거에요.
따듯한 물로 하는 샤워 자체가 행복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평소에 생각치 못하던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금새 잊혀져 버릴까, 젖은 손만 간단히 닦고 욕실 밖에 둔 메모장을 얼른 펴 키워드라도 적어 두는 것이 하나의 버릇처럼 됐어요.
저에게는 매일 아침 따듯한 물로 하는 샤워의 시간이 마치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다 주는 ‘스위치’ 같은 거죠.
비슷하게, 풀 향기, 나무 향기 가득한 숲을 천천히 걸어 산책하는 것도 제게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주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리추얼ritual’ - 종교 의식의 절차, 의례와 비슷하게 일상 속에서 항상 규칙적, 반복적으로 행하는 일을 뜻합니다.
메이슨 커리Mason Currey의 『리추얼』(책읽는수요일, 2014) 이라는 책은 지난 400년 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로 꼽히는 161명의 인물들이 ‘완벽한 하루’를 위해 가졌던 각자의 리추얼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문학 작가, 화가, 철학자, 영화감독, 과학자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지키고, 창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보여주는 거지요.
리추얼은 칸트가 매일 같은 시간 산책을 나섰던 것처럼 하루 중 어떤 한 가지 의식one ritual과도 같은 일일 수도 있고, 그런 패턴이 모인 하루의 일정 전체daily routines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내리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한 후,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든다죠?
저자 메이슨 커리는 이런 리추얼을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이자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라고 합니다.
물론, 리추얼이라는 것에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어떤 천편일률적인 법칙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엄격한 규칙을 집요하게 반복한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이는 규칙적인 삶이 오히려 창작에 방해가 된다며 즉흥적이고 규칙 없는 삶, 심지어 게으름이 주는 기쁨으로부터 자기만의 리추얼을 찾은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저마다 가장 좋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거죠. 모든 사람이 다 ‘아침형 인간’일 수가 없는 일인데 하나같이 일찍 일어나려고 고생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스스로를 가만 관찰해 보면 유독 참신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환경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한적한 공원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입에 머금고 먼산 바라보듯 멍때릴 때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죠.
그 사람에게는 바로 그게 리추얼이 될 수 있어요.
다시 샤워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따듯한 물 아래 서서 생각을 흐르게 하니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더라’는 경험은 사실 적지 않은 이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영화 감독 우디 앨런Heywood ‘Woody’ Allen도 샤워를 하면서 작품에 가져다 쓸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했죠.
어려서 ‘학습장애아’ 취급을 받았지만 교육 분야 최고의 인지심리학자가 된 스콧 배리 카우프만Scott Barry Kaufman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불안을 없앤 ‘정신적 이완 상태’가 창의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샤워를 할 때의 고독하고, 편안하며, 선입견이 없는 환경이 생각의 흐름을 자유롭게 해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는 건데요.
그는 약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10명 중 7명 이상이 샤워 중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며 “아침 샤워의 격리 효과는 훌륭한 아이디어 인큐베이터”라고 말했습니다.
리추얼이 유용한 것은 정해진 때마다 반복되는 시간성에 더해 장소, 즉 공간적 측면에서도 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창의력 명당’이라는 게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중국 송宋 나라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는 생각이 잘 떠오르는 곳으로 ‘마상’말 위, ‘측상’화장실, ‘침상’잠자리 이렇게 세 곳을 꼽았다고 합니다.
책 읽기만 해도 조용한 독서실, 소음이 있는 카페, 덜컹이는 지하철, 이렇게 사람마다 왠지 더 잘 읽히는 장소가 있듯 생각의 나래를 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데도 각자 ‘제격’인 장소가 따로 있을 수 있다는 말이죠.
- 놀란 부쉬넬(Nolan Bushnell, 1943년~), 유윙크uWINK CEO,미국 비디오 게임 업체 아타리 공동 창업자
중요한 건 리추얼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의 활용입니다. 어떤 이는 어렵사리 떠올린 좋은 아이디어를 그냥 지나쳐 보냅니다. 반면 누군가는 그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고, 현실에 적용하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해도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또는 가치를 알아봤다 하더라도 그저 아이디어에서 멈춘다면 그걸로 끝이 되는 셈이니까요.
매일 아침 적어도 10분 책을 읽는다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명상을 한다거나, 하다 못해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키고, 때때로 정성스레 연필을 깎는 일처럼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일상의 습관들도 어엿한 ‘나만의 리추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눈 뜨자마자 하는 첫 번째 일, 첫 번째 행위가 중요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보통 스마트폰부터 집어 들죠. ^^;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책을 읽으라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