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논리력 #영어 조기 교육 #외국어 교육 #바이링궐 #차원적 사고
‘코딩 열풍’, 아니 어느 기사 헤드라인처럼 가히 ‘코딩 광풍’이라 할만 합니다.
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이 펼친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로 코딩은 단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대치동 학원을 넘어, 크고 작은 기업들까지 관련 시장에 뛰어들어 마케팅으로 열을 올리고, 일부 언론에서 이를 부추기면서 마치 ‘코딩’ 하면 절로 창의성이 생길 것처럼, 코딩 교육을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될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죠.
너도 나도 코딩을 외치니 ‘내 아이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안 드는 게 아닙니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이나 언론 보도를 보면 코딩을 곧바로 창의성에 연결 짓는 경향이 큽니다.
그런데, 코딩은 창의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코딩을 하면 정말 창의적이 될까요? 관계가 있긴 한 걸까요?
‘코딩coding’은 C언어,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용 언어를 통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코드 등을 명령 처리 순서에 맞게 도식화한 ‘알고리즘algorithm’이나 코딩을 포함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래밍programming’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이 명령이 수행되는 방식을 지칭하는 쪽에 가깝다면 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로 옮기는 일을 코딩, 코딩을 포함해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일을 프로그래밍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상세한 구분이야 어찌 됐건, 흔히 ‘코딩’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래밍 ‘기술’ 정도로 좁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학원 같은 데 가서 그 ‘기술technique, skill’을 익히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배운다고 해서 곧바로 ‘창의적’인 인간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함정입니다.
‘대세 마케팅’, ‘공포 마케팅’에 뿌리를 둔 코딩 열풍에 휩싸여 ‘코딩과 창의성을 곧바로 연결시키는 일은 경계’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사실 코딩과 창의성은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도 둘을 연계시킨 이 판매 전략이 먹히고 이렇게 열풍으로까지 번지게 된 건 대체 어떤 이유였을까요?
그 하나는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같은 IT, 소프트웨어 업계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의 ‘후광 효과’입니다.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단한 IT 기업을 창업하고, 이끌어온 영향력 있는 인물들, 달리 말해, ‘내 아이의 롤 모델’로 삼을만 해 보이는 사람들이 코딩을 잘 해서, 혹은 잘 활용해서 성공했다고 믿는 거죠.
스티브 잡스는 “코딩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고, 빌 게이츠 역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며 코딩의 유용성을 강조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코딩이 창의성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하기보다는, 논리적 정교함에 관련된 것에 가깝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즉, 코딩이 창의성보다는 논리적 사고 능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거죠.
몇 년 전 코딩의 핵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큰 화제가 됐는데요.
조시 다닛Josh Darnit이라는 이름의 한 미국인 아빠가 아이들에게 ‘땅콩 버터와 젤리 샌드위치PB&J sandwich’ 만드는 법을 설명서로 적어보라고 합니다.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모르는 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한 단계, 한 단계 나누어 설명해 보라는 거였죠.
얼마 안 돼 어린 남동생이 다 했다며 먼저 가져 옵니다.
- 식빵 두 개를 준비한다.
- 땅콩버터를 바를 칼과 땅콩버터를 준비한다
- 칼로 식빵 하나를 골고루 펴 바른다…
아빠가 설명서를 보면서 따라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초반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맨 식빵에다 칼을 대고서는 테이블에 문지른 거에요.
“아니, 아빠~ 칼에다 땅콩버터를 묻혀서 빵에 문지르라고!”
당황한 아이가 소리쳐 보지만, 아빠는 태연하고도 의뭉스럽게
“왜~ 네가 적어준 대로 하는 것 뿐인데?”
아빠가 의도한 건 사실, 어떤 일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세분화해서 정확하게 설명하는 훈련, 즉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컴퓨터 언어를 가르치지 않고도 ‘코딩의 핵심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고자 한 겁니다.
코딩 교육을 통해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논리적인 사고 능력’과 이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의사 소통 능력’ 같은 것들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블록 놀이 형식의 초보적인 코딩 교육도 바로 그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논리력과 창의력이 그대로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코딩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코딩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는 ‘무엇을 문제라고 인식’할 것이며, 어떻게 해결 방법을 찾아 이를 ‘논리적인 언어 구조로 구성해 소통’할까 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어떻게 상상력을 동원’할 건인가 하는 창의적 능력은 별개의 사안입니다.
코딩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기존의 ‘학습지 문제 풀듯’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최근 코딩 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친 또 다른 배경으로는 미래 나와 내 아이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는 우려의 마음도 한몫 했을 겁니다.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져버릴 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의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빅데이터 분석가, AI 전문가 등 IT를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에 특화된 직업 분야가 더욱 더 각광받게 될 거라는 예측이 커져 왔으니까요.
그런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고, 또 코딩을 잘 한다고 모두 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죠.
게다가, 코딩마저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면 어떡할 건가요? 이미 기초적인 코딩 작업을 대신해 주는 AI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AI까지 가지 않더라도, 기존의 어려운 코딩 언어 대신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코딩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더 손쉽고 간편한 도구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딩 교육은 단지 기술로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익힐 기회로서 이뤄져야 합니다.
영어 단어 암기하듯 명령어를 짜는 기술적 측면에 갇혀 좁은 틀로만 접근한다면 정작 중요한 핵심은 놓치면서 공연히 시간과 돈, 노력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코딩에 대한 많은 이들의 지대한 관심에 대해 ‘시큰둥’하며 ‘그딴 거 필요 없으니 시키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왜 지금 코딩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가자는 거죠.
‘바이링구얼bilingual’, 모국어mother tongue에 더해 다른 하나의 외국어까지 익혀 두 개의 언어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중언어사용자’를 말합니다. 3개국어 이상에 능통한 ‘다중언어사용자multilingual’도 있죠. 보통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말 하나도 제대로 쓸까 말까 하는 ‘단일언어사용자monolingual’ 수준에 그칠 뿐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에게 한국어 외에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 하나쯤은 꼭 가르쳐야겠다고 일찍부터 조기 교육에 매달립니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최적의 시기는 언제일까’ 하는 다소 논쟁적인 주제는 제쳐 놓더라도, 두 개 이상, 여러 언어를 동시에 익히고 쓰는 것이과연 우리의 뇌에, 창의성에도 좋은 영향을 줄까요?
미아 나카물리Mia Nacamulli 등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에 따르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여러 모로 우리 뇌에 이롭다고 합니다.
우선, 모국어 외에 제2언어로서 외국어를 사용하면 뉴런과 시냅스를 포함하고 있는 회백질의 밀도와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을 높여 줍니다.
이 때문에 평생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균형 있게 사용하며 뇌를 발달시켜 온 사람은 알츠하이머나 치매를 5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이중언어, 다중언어 사용의 인지적 이점이 최근에는 꽤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됐지만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사실, 1960년데 이전까지만 해도 어려서부터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게 하는 것은 인지적 발달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아이들이 언어를 구분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오히려 인지 발달을 막는다고 본 거지요.
하지만 최근 연구들을 보면 여러 언어를 익혀 사용할 경우 실행 기능, 문제 해결, 여러 작업 사이의 빠른 전환과 같은 뇌의 중요한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불필요한 것들을 배제하고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에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중 언어 사용자, 다중 언어 사용자 중에 빠른 ‘관점 전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그런 효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언어를 익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를 갖는 것이다.” Learning a language is having a whole new world.
언어는 사고 체계와 연관될 뿐 아니라, 그 언어권의 문화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바꿔 쓸 수 있다면 사용 언어에 따라 사고 방식, 사고 체계까지도 쉽게 전환할 수 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선은 모국어를 익히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되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외국어 공부를 굳이 늦출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좌뇌가 논리적 사고를 주관하고 담당하며, 우뇌는 정서적, 사회적 부분을 관장한다고 하죠.
어떤 ‘절대적 구분’도 아니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뇌 기능의 이런 좌우 분화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어집니다.
언어를 배우고, 익혀 구사하는 일은 논리적, 사회적 기능 둘 다와 연관된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언어는 논리적 영역에 가깝다고 해서 좌뇌의 활동에만 국한된 것으로 치부하는 건 잘못된 이해입니다.
언어 학습 시기와 관련해 참고할만한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 하나.
어려서 언어를 배우면 좌뇌와 우뇌를 두루 사용하기 때문에 그 언어의 사회적, 문화적, 감성적 부분까지 이해하는 반면, 나이가 들어 외국어를 공부하면 주로 좌뇌만 사용해 그 언어에 대해 훨씬 더 이성적 차원으로 접근하게 된다 합니다.
외국어 공부에 어떤 ‘결정적 시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려서 시작하면 훨씬 더 쉽게 습득할 가능성이 높지만, 반면 아직 모국어가 확실히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가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걱정도 여전하니까요.
‘언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면 좋을지’와는 무관하게 아무튼, 동시에 여러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역시 시도해 볼 만한 도전임에는 틀림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 대체로 거쳐가는 관심사 경로가 있다고 하죠?
남자 아이들의 경우 공룡, 자동차, 로보트… 이런 것들인데,
민이의 경우도 한 때 공룡에 ‘미쳐’ 지내다가 결국은 다른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가더라구요.
그런데 유럽을 여행하면서는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공룡과 관련된 코너에서 특히 시간을 많이 보내네요.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그랬지만 여기 브뤼셀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특히 공룡 전시로 특화된 곳이라 그런지 오래도록 화석을 들여다 보고 하고 직접 뼈를 발굴하는 체험도 하고, 또 실감나는 디지털 홀로그램 앞에서도 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화석化石, fossil이란 먼 옛날 퇴적물과 함께 묻혀 단단하게 굳은 동식물의 유해나 흔적을 말합니다.
공룡 화석만 해도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간직한 뼈에서 발자국이나 배설물처럼 흔적으로 남은 경우까지 다양하죠.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그런 2차원적인 평면에 간직된 화석을 발굴해 순서대로 뼈를 재구성해 배열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입체적으로 재현해 놓은 걸 볼 수 있어요.
‘차원적 사고dimensional thinking’를 통한 평면의 입체화로 수억 년 전 과거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거죠.
유용한 창의적 생각 도구 중 하나인 차원적 사고는 이렇듯 2차원을 3차원으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변형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같은 차원에서도 일정한 비율로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 또 위치를 변경하는 것으로도 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새겨진 동물의 발자국2차원 평면을 보고 그것의 주인, 즉 토끼나 까치 같은 동물의 모습3차원 입체을 상상할 수 있다든지, 우주 정거장이나 대규모 신도시 주거 단지 등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대상을 형태는 같으면서도 크기를 줄여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든지 하는 것도 다 ‘차원적 사고’ 덕에 가능한 것입니다.
같은 크기의 대상도 거리에 따라 달리 그리는 원근법도 평면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입체의 숨결을 불어 넣고자 하는 차원적 사고의 결과지요.
의사들이 엑스선이나 CT 단층 촬영한 평면 사진을 통해 몸통 속 갈비뼈가 감싸고 있는 장기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적 차원에 시간이 더해지면 우리가 흔히 ‘4차원’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건 아인슈타인이 보여줬듯 어떤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관찰자와 대상의 움직임에 따른 ‘상대적’인 것이죠.
예를 들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에서처럼 누군가 어떤 행성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단 몇 시간 여행하고 와도 지구에 있던 그의 가족들은 수십 년은 늙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루한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불평하지만 신나게 즐길 때는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시간이 날아가 버린다time flies’고 불평하기도 하쟎아요?
차원적 사고는 때때로 크기scale를 늘이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빅 히스토리에서 소개했듯이 137억 년이나 되는 우주의 역사를 길어야 100년이 될까 말까 한 인간의 생애 정도로 압축하면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할 거라고 한 작가의 통찰이 그렇습니다.
3D 프린팅과 같은 획기적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제 단 하루면 뚝딱, 집까지 ‘인쇄’해 내는 시대입니다.
물론 3D 프린터로 뭔가를 만들어 내자면 누군가 이미 준비해 둔 설계도 파일을 다운로드 받거나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단지 실행 버튼만 누르기만 해도 되겠죠.
하지만 나만의 필요에 따라 직접 뭔가를 만들려면 그게 완성됐을 때 어떤 입체적인 모습을 띄고 있을지 스스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마치 전통적인 방법으로 건축물을 지어 올리기 위해 2차원의 설계 도면과 함께 3차원의 조감도鳥瞰圖도 필요한 것처럼.
- 브라이언 헤이즈(Brian Hayes), 미국 과학자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8)에서 재인용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많이들 하고 있는 걸요.
아주 어려서는 팝업 북pop-up book이나 크리스마스 입체 카드 같은 것을 접하게 해 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입체적인 모양의 물체를 평면의 벽에 옮겨 놓는 ‘그림자 놀이’나 평면의 동물 발자국을 보고 주인의 입체적 모습을 그려보는 것, 또, 책에 제시된 기하학적인 모형을 실제 세계에서 찾아보거나 반대로 일상의 물체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대치해 보는 것도 좋아요. 락앤락LocknLock 반찬 용기에서 직육면체 떠올리는 것처럼요.
레고Lego, 젠가Zenga 같은 블록 놀이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죠.
바닷가에서 모래성이나 두꺼비집을 짓도록 두는 것도, 집이나 학교 등 건물 모형을 찰흙으로 만들어보는 정통 미술 활동도 공간 감각을 키우기에 딱입니다.
아, 그리고, 종이접기가 있네요!
종이접기는 특히 평면의 색종이를 입체의 공간을 차지할 모형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라 더욱 적극적인 차원적 사고를 요구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목표일수록 더 큰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그럴수록 도전하는 끈기를 가르치기에도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