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창의성 #상상력 #공감 능력 #추상화 #종이책 vs 전자책
- 김영하(1968~), 소설가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와중에도 민 군이 매일같이 빠트리지 않은 게 있어요.
바로 책 읽기 - 독서입니다.
독서의 유용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마 크게 반대 의견이 없을 거에요.
하지만, 좋다는 건 다 알면서도 말처럼 잘 안 되는 게 독서죠.
그런데, 독서가 창의성에도 좋을까요? ‘책 읽기’가 창의성을 높여 줄 수 있을까요?
독서의 유용성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바로 책 읽기가 최고의 ‘간접 경험’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며 상상력을 확장할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죠.
다른 대륙, 낯선 나라의 좁은 골목을 거닐고, 온화한 지중해 바다나 아프리카의 모래 사막을 체험하는 것이 내면 세계를 확장하고 상상력을 키울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직접 경험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한계를 넘어 거의 무한대로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을 통한 간접 경험입니다.
-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근대 철학의 아버지
독서는 또, 단순 지식의 축적뿐 아니라 ‘생각 머리’를 더 잘 돌아가게, 똑똑하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 ‘자기만의’ 생각, 입장, 관점을 갖게 해 줍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것과는 달리, 책 읽기에는 더 많은 ‘집중’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죠.
하얀 종이 위 글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또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헤아리려면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책의 내용을 형상화하는 능력, 내 생각을 구축하는 능력까지 얻게 됩니다.
제시된 정보를 처리하고, 개념을 이해하고, 작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중에 비판적 사고와 논리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죠.
독서를 통해 더 집중된 정신, 나아가 명료한 사고를 갖게 됩니다. 집중력, 논리력, 사고력에 더해 어휘력, 표현력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을 넓히는 것뿐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 특히 비판적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바로 이런 독서의 힘 때문에 예로부터 독재자나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하거나 아예 불살라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BC 213~206?처럼 말이죠. 지난 세기 전쟁의 광풍 속에서 히틀러도 많은 책을 불태웠습니다.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가 쓴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속 연쇄 살인 사건의 동기도 결국 어떤 비밀스런 책에 숨겨진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와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한 수도사의 음모에서 비롯되었죠.
누군가에게 책은 너무나 매력적인 친구지만, 어떤 이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더 많은 이들에게는별 관심의 대상도 못 되기도 하고요.
- 앨버트 아인슈타인
많은 연구자들은 단호히 ‘그렇다’고 말합니다. 독서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해리 포터 이야기도 책으로 접하면 수백만 명이 각기 다른 모습을 떠올립니다. 영화로 보는 순간 이미지는 단 하나로 굳어져 버려요.
지식의 확장보다 중요한 독서의 가치는 바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입니다. 상상력이 자란다는 건 곧 문제해결 능력이 커진다는 의미죠.
미국의 명문 사립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ersity 뇌과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도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매일 같은 일상을 잠시 잊고 현실 세계를 벗어나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점을 연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특히, 탄탄한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가진 소설을 읽으면 이후 며칠 동안이나 그 이야기가 머리 속에 머물면서 뇌 안의 네트워크를 재구성한다는 거에요.
어린 시절 책을 읽는 것이 인지 발달과 상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연구였습니다.
- 닐 게이먼(Neil Gaiman, 1960년~), 영국의 유명 공상과학 소설 작가
예를 들어, 소설 속에는 우리와 같은 등장 인물들이 어떤 극적인 상황에 처하고, 또 그에 대처하고자 애쓰죠.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나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연스레 생각해 보면서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요.
신화나 전설 이야기는 오래된 보물 창고와도 같지요.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현대의 베스트셀러도 다 이런 바탕 위에서 재창조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읽을만한 동화나 판타지 소설, 공상과학SF 소설, 추리 소설도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마음 속에 더 많은 세계를 담고, 꿈꿀 수 있도록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히면 좋을까요?
전문가들의 조언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어려서는 소설 위주로, 기왕이면 종이책으로 읽게 하는 편이 좋다는 게 정론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다트머스University of Massachusetts Dartmouth의 영문학 교수 로버트 P. 왁슬러는 『위험한 책읽기』(문학사상, 2019)에서 ‘깊고, 꼼꼼한 읽기deep and close reading’를 강조했는데요.
그건 바로 문학, 특히 강한 내러티브가 있는 소설을 ‘깊이’ 그리고 ‘꼼꼼하게’ 읽는 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더 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소설을 멀리하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합니다.
“‘깊이 읽기’를 통해 스스로를 향한 여정에 더 깊이 천착하면 할수록 자신이 누구이며 이 복잡한 세상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로버트 왁슬러 교수의 말입니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는 측면에서도 논픽션보다 소설이 낫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왜 종이책인가?
전자 책이 아니라 종이책인 이유도 바로 ‘깊고, 꼼꼼한 읽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 메릴랜드대University of Maryland 연구진은 책을 읽으며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의 수준이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실험을 했는데요, 종이책을 읽을 때, 스마트폰 등 전자책ebook으로 읽는 것보다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표면적 감각, 스펙타클, 재미만 좇는 영상이 대세가 된 세상. ‘읽는 뇌’, 즉 깊이 읽고, 사고하는 뇌가 우둔하고 무비판적인 ‘디지털 뇌’로 퇴보하고 있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런 와중에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면 종이책을 통해 상상력,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움으로써 아날로그적인 ‘읽는 뇌’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영상물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쓰고’, ‘읽어야’ 합니다.
-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4)
최근 기술의 발전과 콘텐츠의 진화에 따라 동영상 등 책보다 훨씬 쉽게 다가오는 경쟁물이 많죠.
책과 독서 안에서만 보더라도 전자책의 출현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도전적 변화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2010년대 초 아마존을 필두로 한 전자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몇 년 안에 종이책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가 ‘저자와의 대화’, 책과의 상호 작용이라고 할 때 깊고, 꼼꼼한 읽기를 통해 내용을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기만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려면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습니다.
- 빌 게이츠
독서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나 동영상을 통해서도 간접 경험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상물은 보는 우리의 뇌를 수동적으로 만들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장면을 애써 잠깐 멈추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을 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집니다.
책, 특히 종이책은 다릅니다. 종이책 읽기는 일부러 ‘느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 줄, 한 단락을 읽는 사이 사이에도 우리의 뇌와 마음은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모험을 펼칠 수 있습니다.
부모 세대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각종 스마트 기기와 함께 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입니다.
스마트 기기의 사용법이나 동영상 찾는 법은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읽는 뇌’를 갖는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흔히 일생의 독서량을 이야기할 때 역설적이게도 초등학생 때 가장 많이 읽고, 나이가 들어 가면서는 점점 안 읽게 된다고들 하죠.
독서를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책 읽기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숙제’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독서가 ‘즐거움’을 줘야 오랜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책을 찾도록 기다려 주고,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공상하고, 상상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좋은 책을 찾아 주고, 점차 수준을 높여 조금씩 더 도전적인 단계로 끌어올려 줍니다.
매일 15분, 30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에게만 ‘책 읽으라’ 시킬 게 아니라, 부모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점점 더 ‘읽는 뇌’가 발달하고, ‘마음의 근육’, ‘생각의 근육’이 붙습니다.읽기가 더 수월해 지고, 더 재미있어 집니다.
코로나19로 민 군이 4학년이 되고도 한참을 등교하지 못하던 몇 개월 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아침 9시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책을 읽는 ‘독서 타임’을 갖기로 했어요.
처음엔 30분으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타이머가 울리고 나서도 아이가 “여기까지만 더~!” 하며 읽던 부분을 마무리하고 싶어 해서 40분, 50분으로 늘어났어요.
이젠 더 오래도록 ‘가족 습관’으로 계속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랄 때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 하지만 책을 읽건 안 읽건, 단지 집에 책이 많기만 해도 학업 성과가 좋다.”
최근 호주 국립대와 미국 리노 네바다대의 공동 연구 결과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단지 주변의 많은 책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똑똑해지고 학업 성과가 향상된다는 겁니다.
흔히 부모의 부와 교육 수준이 아이에게 되물림되는 불평등 문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부모의 부와 교육 수준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책을 많이 접하게 해 주는 것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계속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시간과 공간은 나날이 줄어들 거에요.
입시 공부, 직장 생활로 읽을 겨를이 없다 할 테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화려한 미디어, 더 손쉬운 콘텐츠가 우리를 유혹하고 주의를 빼앗아 가겠죠.
하지만 그럴수록 독서의 가치는 커져 갈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보상도 더 커질 겁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차별한 것은 무모한 짓이야. 백인, 흑인처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나빠. 안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기를 쓰고 아픔을 극복을 하다니 대단해. 안네 누나가 좀만 더 살아있었어도 광복을 볼 수 있었는데… 독일은 이제 사과하고 많이 미안하다고 하고 있어… 누나 부디 편안하고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영어가 아니어서 미안.)
2019년 3월 류민의 독서 후 글쓰기 중
앞서 책 읽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독서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알게 되고, 이해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직접 표현해 보는 거지요.
말하기, 글쓰기 외에도 그림이든 춤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사실 이건 꼭 독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학습, 공부,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두루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미국 소설가
우리 몸은 음식을 소화시켜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이를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로 바꿔 활용합니다. 불필요한 찌꺼기는 밖으로 배출하고요.
뇌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정보가 들어오면 꼭 필요한 것을 흡수해 지식으로 삼고 이를 다양한 정신적 활동에 활용하는 거지요.
그런데, 몸의 대사 작용에도 소화 과정이 있듯이 학습도 단지 정보를 머리에 구겨 넣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다시 되씹고, 소화시켜 내 지식으로 삼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독서의 첫 단계는 활자화 된 내용을 인식, 인지해 정보를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의도를 헤아리려 노력하고 깨닫는 것, 즉 이해의 단계입니다.
보통 여기까지를 ‘낮은 수준의 독서’라고 할 수 있겠는데, 더 적극적으로 읽는 독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에 견주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기존의 지식과 연결하고, 또 일부 수정하고, 변화시키면서 나의 ‘앎’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가야 진정한 의미의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다음이 또 있습니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배움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걸 다시 자신의 언어로 풀어서 직접 설명할 수 없다면 결코 제대로 익힌 것이 아니지요.
책 읽기를 마쳤다면 이제 갓 ‘입력input’이 끝난 겁니다. 입력된 것을 소화한 다음 ‘출력output’하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입력에만 그치지 않고 소화, 재가공, 출력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을 독서의 온전한 한 과정으로 완성할 때 지식은 물론, 창의성, 사리 분별력, 주의 집중력, 자기 통제력 등 독서의 효용성을 두루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당장 ‘기억력’만 해도 그래요.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방금 읽은 책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우리 어른들도 많이 해 봤쟎아요? ㅎㅎ
읽은 것을 직접 요약, 설명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는 등의 다양한 독후 활동은 읽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오래도록 장기 기억으로 간직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몇 년 전 EBS <다큐프라임>에 ‘학습 효율성 피라미드Learning Pyramid’라는 게 소개된 적이 있어요.
미국 행동과학연구소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 NTL의 연구 결과인데, 토론하고, 직접 실행해 보고, 남에게 가르쳐보는 적극적 학습을 하면 단지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수동적 학습을 했을 때에 비해 학습의 효율성을 훨씬 더 높일 수 있다는 거죠.
문답식, 토론식으로 유명한 유대인의 교육법 ‘하브루타Havruta’의 원 뜻이 ‘동료’, ‘우정’을 뜻한다는 거 아시나요? 친구끼리 서로 짝을 이뤄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는 게 기본이 되는 공부법인 거죠.
행동과학연구소의 학습 효율성 이론과 관련해서는 세세하게 들어가면 학계에 일부 반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저 보고, 듣기만 하는 수동적 학습에 비해 직접 해 보고, 가르쳐도 보는 적극적, 능동적 학습이 더 많이 남을 거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꼭 ‘어떤 내용이었어?’ 묻고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책 내용을 자기만의 언어로 요약, 설명하게끔 유도해 봅니다.
그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등장 인물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여겼는지’ ‘네가 주인공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는지’ 아이의 의견을 유도해 보기도 하고, 거꾸로 아이가 갖게 된 궁금증이나 문제 의식을 들어주기도 하고…
거기에 대해 서로 대화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정갈한 글로 정리해 써 보게끔 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함께 ‘역할 놀이’를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독서의 긍정적인 결과 중 하나는 어휘력이 는다는 거지요. 책 읽기를 통해 발달한 어휘력은 아직은 반쪽짜리입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글로 직접 활용하고 표현해 볼 때 그 어휘력은 비로소 완전히 자기 것이 됩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한 역량 중 하나죠. 독서와 독후 활동에서 얻어진 어휘력, 표현력은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는 비옥한 땅이 될 겁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어휘가 많아진다는 건 말이 유창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머릿속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생각과 아이디어에 대한 자기 확신도 커집니다. 그 바탕에서 상상의 나래를 더욱 활짝 펼 수 있습니다.
독서가 탄탄한 생각 근육과 풍부한 어휘력으로, 그것이 자신이 상상한 것에 대한 자기 확신으로 다시,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멋진 선순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인물의 등 뒤 단상에 올라 서 있어야 할 인물은 아래로 내려와 책을 펼쳐 들고 앉았고, 늘씬한 개 한 마리가 그의 소매를 물어 당기는 생동감 있는 표현에서 벨기에 인들의 위트가 느껴진다. 불스 전 시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랑플라스를 원래 모습으로 보전, 복구해 지금까지 그 모습이 남겨지게 한 장본인. 그의 덕에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광장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불스 전 시장은 영어, 불어, 독일어, 라틴어 등 무려 7개국어를 구사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미술 교육을 받기도 한 르네상스 맨이기도 했다.
내가 갈매기의 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가 깃들어 있고 제한 없이 자유로운 존재같기 때문이다.
조나단은 책 속의 주인공이다. 내 생각엔 조나단은 귀납법을 믿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주 높이 날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고 확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와 다르게 갈매기는 나는 것이 꼭 먹을 것을 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다른 갈매기들은 연역법을 믿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갈매기의 법칙’만 확신하고 자율적이지 않고 따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자, 그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르,ㄹ 사람 입장으로 바꿔 본다면 어떨까? 내 생각에는 나는 자유를 좋아하니까 “가장 자율적인 사람이 가장 자유롭다” 이런 식으로 바꿀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일 것 같다. 왜냐하면 조나단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나는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2020년 2월 류민의 글짓기 학교 숙제
민이가 다섯 살 쯤이었던 때로 기억해요. 손바닥만한 작은 카드에 ‘아빠 얼굴’이라고 그려 놨네요. 길쭉한 얼굴형에 안경을 쓰고,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생후 처음 아이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왔을 때 만큼의 큰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라고 그려준 게 너무 좋아서 지금도 차 운전석 가까이 두고 가끔씩 들여다 본답니다.
남들 보기엔 뭐 그리 대단치 않은 수준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제겐 아빠의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창의성을 위한 여러 생각 도구 중에 ‘추상화抽象化, abstracting’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운 한자어지만, 쉽게 풀어 말하자면 대상의 중요한 특징을 찾아내 간단하게 표현하는 거지요.
그림 ‘화畵’ 자를 쓰는 미술 용어 ‘추상화抽象畵, abstract painting’는 형상을 그대로 재현해 내던 기존의 회화 방식을 벗어나 점, 선, 면,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표현한 그림을 말합니다.
브뤼셀에서 만난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작품과 작업들도 생각 도구로서의 추상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창조적 사고 과정으로서 추상화는 관찰하고 생각한 대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버리거나, 과감히 생략해 대상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현상의 뒤에 감춰진 본질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중요한 기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상화란 곧 ‘단순화’이기도 합니다.
화가뿐만 아니라 문학 작가, 철학자, 과학자도 복잡해 보이는 현상에서 하나의 핵심 요소에 집중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추상화-단순화’를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고 애씁니다.
이 작품보다도 훨씬 널리 알려진 그 유명한 <이미지의 반역, 1929>(The Treason of Images,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원작은 뻔히 파이프를 그려 놓고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구를 써 넣은 도발적인 ‘모순’을 통해 오래도록 서양 미술이 목표로 해 온 사실주의가 사실은 한낱 눈속임에 불과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브뤼셀의 마그리트 뮤지엄에서 만난 1952년작 <이미지의 배반>에는 ‘이것은 계속해서 파이프가 아니다Ceci continue de ne pas etre une pipe’라는 재치 있는 글귀가 적혀 있다.
추상화 과정의 정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피카소의 <황소> 연작입니다.
처음에는 황소의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사실적으로 묘사했죠. 하지만, 이후로는 몸의 굴곡을 중심으로 점점 단순화해 나갑니다.
마지막에는 ‘뿔’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몇 개의 외곽선만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렸죠. 튼실한 몸의 근육 등 사실적인 묘사는 없지만 단 몇 개의 선으로도 황소를 표현함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피카소는 아마도 황소의 본질적 특징, 즉 ‘황소다움’을 크고 우락부락한 얼굴이나 탄탄한 몸의 근육, 휘어진 꼬리보다는 머리 위로 솟은 뾰족한 뿔에서 찾은 게 아니었을까…
-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애플Apple 창업자 겸 CEO
‘단순함simplicity’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잡스의 애정은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로 창의성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조직 유전자DNA로 새겨져 애플을 상징하는 기업 문화가 됐습니다.
2014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임직원을 위한 사내 연수 과정인 ‘애플 대학’에서 피카소의 황소 같은 작품을 활용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맥, 아이폰, 아이패드 등 단지 제품의 디자인뿐 아니라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등 업무 처리 방식에까지 단순미單純美를 추구하려는 철학을 두루 적용한 거죠.
-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5~1347), 영국 수도사, 철학자
불필요한 가정은 면도날로 잘라내라는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거지요.
자연 과학, 인문 과학 등 이론에 있어서 경제성economy의 원칙, 절약성parsimony의 원칙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자연 법칙과 같은 과학적 발견에서도 복잡다단한 현상 아래 숨겨진 본질을 단 하나의 명제, 단 한 줄의 수식으로 설명해 낼 수 있을 정도의 단순명쾌함이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진리는 복잡성이나 혼란이 아니라 항상 단순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고, 리처드 파인먼도 “현상은 복잡하고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말했습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더 좋은 훈련으로 이어갈 수도 있죠.
다른 많은 생각의 도구와 같이, 추상화 작업도 시각적인 영역에서 가장 쉽게 시도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꼭 시각적 영역에만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노래를 흥얼거릴 때 우리는 곡의 일부를 발췌하는 식으로 전체 곡을 추상화합니다. 책을 읽고 요약해서 말할 때 역시 추상화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이미 요약된, 단순화된 무언가를 통해 전체를 짐작해보는 역逆추상화도 가능한데요, 어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볼지 말지 선택하기 전에 간단한 예고편 영상, 소개 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죠.
언론 보도의 표제headline만 보고도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추상화-역추상화 능력 덕분에 가능합니다.
우선 추상화의 기본 방법부터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죠. 추상화는 화가뿐 아니라 작가, 과학자, 음악가도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모든 것은 관찰로부터 시작됩니다.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다양한 특성, 특징을 살펴보는 것. 그리고는 본인에게 가장 본질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찾습니다.
그렇게 ‘꽂힌’ 부분이 있다면 거기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거지요.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이 추상화를 더 멀리 밀고 나갔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마음 속으로 상상해 보고, 그것을 말로,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춤으로, 과학 실험으로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딱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해 말하도록 해 보세요.
한자 공부를 하고, 한자로 이뤄진 고사성어를 익히는 것도 추상화 훈련에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자 자체가 글자마다 압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사자성어는 길이가 있는 이야기를 단 네 글자로 표현하는 요약의 정수이기 때문이죠.
엄마, 아빠가 아이와 함께 어떤 하나의 대상을 관찰해 보고 각자가 가장 도드라지게 느낀 특징을 부각해 그림을 그린 후 서로 비교해가며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또,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는 건 물론, 추상하고, 단순화함으로써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