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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폭탄, 기억하세요?

못쓰면 억울했던 그 폭탄 말입니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2학년 시절 (크흑) , 어머니께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셨던 오락실을 처음 가 보았습니다. 

34년 전 일인데도 그날의 감동(?)이 생생합니다. 쇳소리가 나는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곳에서 동네 백수들과 급식ㅊ.. 아니, 그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으니 급식이 없었네요. 방과 후 초중고생들이 한데 어울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열악하고 지저분한 환경이었습니다만 제게는 당시의 최신 디지털(!)을 접하는 창구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애플스토어나 삼성 디지털플라자에 갔다고 할까요 (과거는 이렇게 미화돼 추억이 됩니다)


엄마 몰래 100원, 200원을 들고 오락실에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격투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하고 싶었지만 고인 물 동네 형들에게 쉽사리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소중한 100원입니다. 이걸로 긴 시간 버텨야 하는데 저 형들과의 승부에 돈을 쓰자니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격투 게임은 뒤에서 구경만 하고 오래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서 했죠. 보글보글 같은 거요.


그런 게임 중엔 이른바 비행기 게임도 있었습니다. 요즘 분들에게 비행기 게임이라고 하면 아마도 MS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걸 떠올리시겠습니다만, 당시의 비행기 게임이라 하면 라이덴 같은 슈팅게임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텐가이(Tengai)나 1942 같은 게임들이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동전을 넣고 몇 개의 선택지 중에 전투기를 고른 후 적 비행기와 싸우는 게임입니다.


요즘의 비행기 게임. MS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게임 화면. 사진아님 주의 (출처: 홈페이지)


1942 게임. 제가 처음 접했던 '비행기 게임' 이었습니다. (출처:미상)



이런 게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조작방법이 똑같았습니다. 왼손으로는 레버를 움직여 전투기를 조종하고 오른손으로 A 버튼을 연타합니다. 그러면 기관총(?)을 마구 쏘는데요. 총알이 무제한으로 나갑니다만 그렇게 강력한 공격은 아닙니다. 반면 B 버튼은 엄청난 폭탄을 쓰는 버튼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비행기 한대마다 폭탄 2개가 주어졌습니다. 폭탄을 쓰면 제 비행기는 잠시 무적이 되며 주변에 강력한 공격을 합니다. 



B폭탄을 쓰자 화면 위로 솟아올라 무적이 되며 거대한 레이저를 쏘는 모습  (출처: 스트라이커 1945 캡처)



잘하는 사람들은 A 버튼의 기관총으로 게임을 하다가 보스전에서 B 버튼을 잘 써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습니다. 폭탄은 가끔 적들이 아이템으로 떨궈주기에 다 써도 나중에 보충이 되곤 했죠. 

폭탄을 표시하는 마크는 약속이나 한 듯 B 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당연히 Bomb의 약자인데, 국민학생이 뭘 알겠습니까(저희 때는 중1부터 영어를 배웠...) 그래서 친구들끼리는 B폭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역전앞' 같은 표현인 거죠.


왼쪽 아래가 B폭탄 아이콘입니다. 출처 : 라이덴 게임 화면



오락실마다 주인아저씨가 오락기의 난이도를 조정해 둔다는 거 아셨나요? 게임이 너무 어려우면 안 하게 되니 적당히 어렵게 조절해 둡니다. 비행기 게임을 잘하고 싶었던 저는 동네 고인 물 형들이 하는 걸 보면서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쉽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슈팅게임은 동체시력이 좋아야 잘할 수 있었거든요. 저는 금방 죽어버리니 주로 잘하는 형들을 어깨 너머로 구경했습니다.


와.. 적의 총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제가 다 움찔움찔합니다. 화면 가득한 적의 공격 사이를 어찌 저리 잘 빠져나갈까요. 더 놀라운 건 굉장히 무심한 얼굴로 세상 쿨한 척은 다 하며 게임을 하는 겁니다. 당시는 오락실 안에서 한창 흡연하던 때라 오락기 구석에 담배를 걸쳐두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흥분해서 흔들면 담배가 떨어지니 그랬는진 모르겠습니다만, 감정 변화 없이 건조하게 게임을 해 나가는 모습은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다 동네 백수형들 같은데) 어린 제 눈에는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구경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잘하는 형들이나 못하는 저나 공통점이 하나 있더라고요. 죽었을 때의 리액션입니다.

폭탄을 다 쓰고 죽었을 때와 폭탄 2개를 고스란히 들고 죽었을 때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폭탄을 못쓰고 죽었을 때는 그 쿨한 형들도 얼굴이 일그러지며 억울해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탄만 썼으면 살았을텐데.. 괜히 아끼고 아끼다가 소중한 100원이 없어지다니. 어린 제게는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없었습니다.


그 형들이나 저나 억울한 점은 '괜히 아끼다 폭탄 2개나 들고서 못쓰고 비행기가 죽어버리는' 거였는데요.

그때의 억울한 감정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쯤 되면 이 브런치에서 왜 저 이야기를 하나 싶으실 텐데요,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나라는 비행기에도 뭔가 잘하는 것, 재능이 있는 것 (B폭탄)이 있을 텐데 

한 개도 못쓰고 회사 다니다 게임이 끝나면 그때처럼 억울하지 않을까?


저나 여러분이나 다 다른 비행기지만 어쨌건 뭔가 남들보다 나은 뭔가를 들고 있을 텐데

세상에 꺼내놓지도 못하고 적의 총탄에... 아니 총 맞을 일은 없을 테니, 그냥 늙어서 세상을 떠나면 그때가선 좀 억울하지 않을까?

라는 국딩스러운 생각이 나이 40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 마구 들기 시작했습니다.


30대에는 20대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만, 40을 넘으면 30대와 컨디션이 달라집니다. 어르신들이 흔히 말씀하시던 '몸이 예전 같지 않다'가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중인데요. 그래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뭐라도 더 해야 늙어서 덜 억울하지 않을까?라고요.

'폭탄을 쓰고 죽어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와 같은 논리인 거죠. 우리는 아직 젊기에, B폭탄은 나중에 쓰면 된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시간이 무한히 있으니까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 나중 하다가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제야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점점 깨닫는 중입니다. 


문제는, 제가 B폭탄을 몇 개를 들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른다는 건데요. 게임처럼 명확하게 화면에 표시되면 좋겠지만 우리 삶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필요한 순간마다 자꾸 눌러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시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이라도 시도하세요. 자꾸 누르다 보면 뭐라도 터지지 않을까요? 폭탄이 없으면 좀 아쉽지만, 안눌러보고 게임 끝내는 것보다는 나은 듯 합니다.


노력해서 다들 엔딩까지 원코인 클리어 (100원으로 끝까지) 하시길 바랍니다. 오락실에서야 100원짜리를 계속 투입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비행기 딱 한대 들고 게임을 하고 있으니, A버튼, B버튼 연타하며 가야죠. 


열심히 플레이중인 모두를 응원합니다. Game Over 의 그날까지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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