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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들을 추억하며

오늘 하루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했던 많은 이야기 중 오늘 주제는 아마도 가장 무거운 주제가 되지 싶네요.


어릴 때 전 공부가 참 싫었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집중은 안되고 오락실 가서 게임이나 하고 싶고.. 그래서 도망갔다가 붙잡혀 와서는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꾸중 듣기 일쑤였죠. 공부하다가 늘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요. 그때마다 어김없이 '공부하다 죽은 사람 못 봤다 열심히 해라'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라고 합니다.... (출처: 시사투나잇)


학생 때에는 애초에 '죽음'의 의미가 와 닫지 않았기에, 이런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속담 같이 느껴졌달까요. 늘 흘려듣기 일쑤였죠.

성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고,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난 어제랑 비슷한 오늘을 살고 있는데 나이 드신 친척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기도 하고, 친구 부모님들도 하나둘씩 소식이 들려옵니다.

장례식장을 처음 갔을 때는 어쩔 줄을 몰라서 당황했지만 이 또한 반복하면서 익숙해지더군요. 익숙해지고 싶지 않지만 익숙해지는 것. 이 또한 사회생활이려니.. 했습니다. 익숙해지면서 동시에 점점 무감각해집니다. 안타까움도 잠시, 내가 바쁘니 신경 쓰지 않으려 하게 되죠.


바쁜 것도 있지만, 저는 죽음에 대해 일부러 무감각하게 느끼고 싶었습니다. '일부러'인데요.

겪어보니 죽음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제를 마주하면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된다는 거'였거든요. 

모든 문장의 끝에 '어차피 이러다 갈 텐데'를 붙이기 시작하면 다 별일 아니게 느껴지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려 해도 어렵게 만들죠. 다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부러 안 보려 했다는 말이 맞겠습니다.


지인 주변인의 부고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었는데, 저도 나이를 먹어가며 '본인상'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관계로 뵙던 분들의 죽음을 접하니 저도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가 없더군요. 꽤 가까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은요.


얼마 전 일입니다. 사내 게시판에서 모 팀장님의 본인상 부고를 접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시절 과장으로 계시며 이것저것 챙겨주셨던 저보다 10살 많은 팀장님의 본인상이었습니다.

신입사원 때 알던 분들 연락이 쉽지 않아서 수소문 끝에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54세, 요즘 기준으로는 한창때이신데요. 평소와 다름없이 귀가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셨고 그대로 황망하게 가셨다고 합니다. 

한 2년 전일까요. 제게 연락 주셔서 술 한잔 한 기억이 있기에 제가 느끼는 충격은 더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던 한 후배가 야근 후 귀가해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가서 스타트업을 하던 회사 선배는 너무 의욕적으로 일하다가 과로사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사채 빚을 감당하지 못해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찍었던 노을사진. 우리도 언젠가 저물어갈겁니다. 


모두 제 구글 포토 한편에 있는 분들입니다. 지금 당장 만나도 이상할 게 없을 분들이고요.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분들인데 그분들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고, 어느덧 저는 그분들보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친한 50대 후반 형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그 형님 또한 본인상을 하나둘씩 접하다가 20명 넘어가면서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매일매일 소중함을 느끼려고 노력한다고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참 아쉬웠을 오늘 하루라고요. 

인터넷 명언집에서 많이 본 말이지만, 저 또한 피부로 느낍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취직이 안돼서 등등 많은 '불행의 이유'를 찾습니다.

죽겠어, 죽겠어를 입에 달고 다니죠. 제가 특히 그랬는데요.

일단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성공한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순식간에 갈 수도 있는 게 삶이라면, 

매일매일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 두어야 죽는 그 순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제 글 특유의 유머와 위트는 없는 다소 무거운 글이 되었습니다만 

그냥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다 싶어 써 봅니다.

여러분 모두 오래오래 제 브런치에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 브런치 100주년 기념식에 모두 초대할테니 다들 거기서 뵈었으면 좋겠네요. (브런치가 망하면..? ㅠ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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