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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개서를 만드는 가장 괜찮은 방법'을 읽고

동아전과 같은 책입니다.

브런치를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은 자주 있습니다)

첫 화면에서 이런 글, 저런 글 타고 넘어가다가 만나는 엄청난 필력의 작가님들. 글을 읽다 보면 한숨과 탄식이 나옵니다. 아 난 언제쯤 이런 센스로 글을 써볼까 싶은.. 그런 좌절을 느끼게 하는 분들입니다. 솔직히 좀 화도 납니다 (아니 왜 이렇게 재밌는 거야 버럭) 그런데 그러려니 하면서 버팁니다. 여러분들 덕에 저도 구독자수가 그래도 좀 되니까요. 으쓱하는 일종의 자존감이랄까요.

그런데 보다 보면 또 4차원의 벽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슈퍼 구독자수를 보유한 작가님들을 볼 때입니다. 구독자가 5천 명, 10,000명 막 이런 분들. 보고 있으면 아니 대체 이 분들은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싶죠. 예전에 전현무 씨가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글 몇 개 안 쓰고도 며칠 만에 구독자가 4천 명을 돌파하는 것을 보며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무엇인지 절감했습니다. 뭐 그래도 전현무는 전현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진짜 슈퍼 작가님들을 만나면 현타가 세게 오죠.


브런치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 아니 국내 시구나 멀티버스에서 오신 분.


그런 작가 중에 한 분이 바로 박창선 님입니다. 무려 구독자수가 2.2만 명 (...) 두배 세배 차이 나면 질투라도 하겠는데 10배가 차이 나면 뭐랄까 현실감이 사라집니다. 아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멀티버스인가.. 같은 차원 사람이 맞나, 나는 어느 차원에 가야 하나 이런 생각만 들죠.

창선님은 예전부터 책도 많이 쓰시고, 워낙 다수의 히트 글들을 만들어내신 터라 부러워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새로운 책을 내셨다고 제게도 보내주셨습니다. (아직 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못 뵈었다는 건 함정) 잘 읽었습니다 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워서 나름의 독후감을 남기려 합니다.


시커먼 표지에 큰 흰 글자. 뭐죠 이 강려크한 자신감은...


책 제목은 '회사소개서를 만드는 가장 괜찮은 방법'입니다. 저는 이분이 전업작가 신줄 알았는데 디자인 전문가... 셨네요. 책 표지와 글자체가 남다릅니다. 제목도 남다릅니다. 오오 기대하며 책을 폈는데요. 2시간도 안 걸려 다 읽었습니다. 제가 딱히 속독법을 배운 게 아니라, 책 구성이 그렇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 찾아보기 쉬운 구성을 목표로 하신 게 느껴졌습니다. 일종의 가이드북이기 때문에 술술 읽힙니다. 


책은 제목만 봐선 '회사소개서를 만드는 사람'만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줍니다. 저도 직장생활 오래 하고 있지만 회사소개서는 누가 만들어놓은걸 가져다 쓰면 썼지 제가 써 본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면 책을 집었다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홍보실 직원 아니면 안 보는 책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는데, 읽어보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회사' 대신 다른 걸 소개할 일은 우리 삶에 많으니까요.


당장 본인을 소개할 일도 많고 (자소서)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할 일도 많고 (회사 안의 무수한 보고서) 하여간 뭐든 소개할 일은 삶에 넘칩니다. 작가님이 너무 솔직하셨지 않나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타깃 고객을 넓혀도 좋을 책이거든요. 제목을 '뭐든 소개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으로 했다면 고객층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도 회사에서 이런저런 보고서를 만들며 생각했던 것들이 이 책에 꽤 자세히 녹아 있습니다. 보고를 받는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가질까? 시선은 어디서 어디로 갈까, 어떤 레이아웃을 적용할까, 색감과 폰트는? 등등입니다. 책에서는 각 항목에 대해 예시를 들어 보여줍니다. 


저런 내용들이 사실 깨알 팁이에요.



저는 통신사와 카드사의 신사업부서에 있다 보니 외부 경쟁입찰 때문에 밤을 새운 경험이 많습니다. 서울시 관광앱 입찰, 아이행복/국민행복 카드, 모 인터넷 전문은행 카드사업 입찰 등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된 프로젝트 들이 떠오르네요. 짧은 기간 내에 멋들어진 제안서를 써내야 하건만 콘텐츠도 스킬도 부족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제안서 막판 작업에는 그래픽 디자인 전문업체 (줄여서 GD라고 하던)까지 투입이 돼서 1페이지씩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때 그분들에게 어깨 너머로 배웠던 내용들이 책에 많이 있어서 놀랬습니다. 장표의 헤드 (대제목, 간략한 내용, 페이지의 역할 등이 들어가는)를 어떻게 구성하라고 알려주거나, 연혁을 만들 때 최신 정보를 상단에 배치하라고 알려주는 것 등입니다. 많은 실전 경험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팁들이 책에 다양하게 녹아 있습니다. 


어느 정도 회사 다니며 감금당해서 ppt 노역 경험이 있는 시니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내용이 다수입니다. 액기스가 잘 녹아 있는 인삼농축액 같은 책이니, 심오한 보고서의 세계로 잡혀 들어가기 전 위기에 빠진 직장인에게 추천합니다. 한번 읽고 감동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책은 아닙니다. 대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면서 도움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동아전과가 생각나는데 이렇게 표현하면 연식 인증이려나요.) ppt 위기는 안 빠지는 게 제일 좋지만, 빠지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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