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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회고. 저도 해 봅니다.

남들과는 반대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저는 링크드인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질투의 화신 같은 인스타나, 탑골공원 페이스북, 엄마들의 놀이터 카카오페이지 등 SNS가 점차 세분화되면서 자신에게 맞는 SNS가 보이는데요. 

제 성향상 차라리 담백하게 회사이야기만 하는 링크드인이 저는 더 편했습니다.

그런데 링크드인과 페북을 선두로 몇 년 전부터 연말연초나 입사/퇴사 시 회고글을 올리는 유행이 생겼더군요. 


아니 사실 예전 같으면 회고라는 건... 격동의 현대사를 살다 은퇴한... 주로 머리숱이 많이 없으신 '정계의 거두'가, 두꺼운 책으로 내던 자서전 같은 것 (즉 재미없는) 이미지였는데 말이죠. 요즘은 재기 발랄한 MZ 세대도 1년을 10년처럼 사는지 무슨 회고들을 그리 올립니다.


읽어보다 보면 아니 이게 대체 같은 영장류.. 아니 인간계 분들이 맞나 싶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온갖 수상과 창업경험과 이러저러 화려한 커리어를 만든 사람이고,

여러 회사 중에 골라서 아마존이나 구글에 갔다가 한국에 와서 창업을 하고 '창업 n연차 회고' 뭐 이런 걸 올리고, 한 해 동안 열심히 뭘 했고 뭘 할 거고... 이런 회고를 보고 있으면 같은 한국인이 맞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경악, 이후는 이유 모를 분노, 그리고는 현실부정(이거 다 멀티버스임 등)을 거쳐서, 이후에는 그냥 작아집니다. 

아니 난 나이 먹고 뭐 했지 인생 잘 못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엄습하죠.


물론 진짜 잘난 분들은 소수인데, 그 소수가 대단한 일을 자주 해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못난 다수도 1년에 한 두 개는 대단한 일을 하니까, 친구수가 많아질수록 그런 피드만 보일 수도 있는 거지만

그래도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꽤 괴로웠습니다.


저도 여기에 숟가락을 얹어서 '사실 나도 올 한 해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아하핫' 한 글을 쓸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 그렇게 대단하게 한 게 없기에... 대승적 차원에서 저는 반대로 한번 써 보려 합니다.(?!) 바로 한 해 동안 못한 것들 회고 같은 거요. 

글의 목적은 여러분의 마음의 평화 (...) 그리고 저의 통렬한 반성입니다. (ㅠㅜ)



<그래서, 2022년 개인적으로 잘못했거나 아쉬운 것 대잔치>


1. 출간한 책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점


재벌집 막내아들 보면서 다들 이 이야기했을 겁니다. '아 내가 저때로 돌아가면 뭐뭐 했을 텐데' 놀이 말이죠. (주로 비트코인 사둔다는 답이 많더군요). 사실 지나고 보면 후회 가득한 게 사람 인생입니다. 저도 시간을 돌려보면 더 잘할 것 같은 게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단독으로 낸 첫 책인 '더 이상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만큼은, 다시 돌아가서 쓰라고 해도 더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PPL 같아서 좀 민망한데,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물론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하얗게 불태운 느낌이었달까요.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첫 책 작업. 다시 하라고 해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쓴 책을 내고 내서, 서점 가서 좋다고 혼자 사진도 막 찍고 그랬는데 그다음에 뭘 더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출판사를 윽박지르던, SNS로 1년 내내 바이럴을 하던 했어야 했는데, 점잖게 오는 요청에만 대응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네요.

지나고 보니,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적 가운데 뭐라도 더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속이 답답한데, 오히려 출판사 담당자분은 시크하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잘 써진 책이니 재고 걱정 안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작가보다 자신 있는 편집자님의 위엄)

다음 책에서는 좀 더 다른 여러 시도를 해 봐야겠습니다.



2. 코딩과 외국어는 또 내년으로 연기한 점


직장생활 18년간 정말로 매년 '익년 연기'중인 KPI가 있으니.. 바로 코딩과 외국어 공부입니다. 주기적으로 의욕이 뿜뿜할때마다 샀던 몇몇 프로그래밍 기초 책은 사놓고 안 봐서 알라딘 중고서점 좋은 일만 시킨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막설정 바꿔서 영어나 일본어 공부 제대로 하겠다고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구독해 놓고는 한글자막으로만 실컷 본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요. (덕분에 한국어는 매우 능숙합니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의욕은 지금도 있는데 실생활에서 접하지 않으면 참 어려운 게 이런 것들 같습니다. 제가 IT직군이었다면 코딩은 따로 시간 내서 배울 성격의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해외 IR이라도 하는 부서였다면 외국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거고요. 

23년 말에도 또 이런 글을 쓸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제 여기다 이렇게 적어서 공표를 했으니, 다음엔 해내는 걸로.



3. 그룹 금융전략을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현실과 타협했던 점


22년 초, 저는 모(母) 그룹의 요청으로 재적전출(쉬운 말로 파견입니다)을 나갔습니다. 그룹 전체의 중장기 금융전략을 짜는 팀에 합류하게 (잡혀가게) 된 건데요. 최전방에서 소총을 쏘며 적과 대치하다가 후방 지휘본부에 불려 간 상황이랄까요.

그룹의 금융사업과 관련한 고급 정보와 중요 보고들을 접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수준도 매우 높았기에 역시 많이 배울 수 있었고요.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기에 기회를 주신 회사느님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소총을 들고 수류탄을 던질 때 느꼈던 여러 가지 혁신안들을, 막상 기회가 왔을 때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올 한 해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가 말하는 혁신이 누군가에겐 정말로 고난의 길이 될 수 있다 보니... 모두가 행복한 길만 찾았습니다. 누가 해도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요. 내년에는 좀 더 큰 변화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4. 거창한 운동계획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린 점


40대 초반이라고 우기고 살고 있습니다만, 슬슬 가운데 중(中) 자가 제게 태클을 걸고 있습니다. 나이 앞자리가 4자로 바뀌던 날 '미중년이 되리라'라고 다짐했는데 현실은 배 나온 아재입니다. (사실... 미소년 미청년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단박에 미중년이 되겠습니까만...)

하루종일 모니터만 보며 앉아있고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서 운동은 출퇴근으로 갈음하고 살았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연초 계획은 헬스클럽 등록하고 매일 러닝부터 시작하자였습니다만, 12월 31일인 현재 기준 헬스클럽은 근처에도 안 갔습니다. 짠테크 한다고 매일 만보 걷는 것, 사놓고 존재를 잊고 살던 푸시업 (Push up) 도구를 찾아서 매일 100개씩 팔 굽혀 펴기 하는 것 정도가 1년간 한 운동의 전부입니다. 


수년 전 사놓고 기억의 저편에 있다가 올해 발견한 푸시업 바. 사놓은 게 아까워서 썼습니다. 이거라도 했으니 다행입니다.


놀랍게도 안 하던 푸시업 좀 했다고 알통이 생기는 걸 보면서 "야 나두?"를 외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악력기랑 케틀벨 같은걸 사서 베둘레헴을 좀 줄여보려 합니다. 아니지, 줄인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데를 키워서 배랑 레벨을 맞춘다는 개념이 될 듯합니다. 



5. 친구/지인들과 연락을 꾸준히 못하고 있는 점


꼬꼬마 신입사원 때 어르신들과 술자리에 가면 '먹고사느라 바빠서 친구도 못 만난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그건 여러분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 마음먹고 하루 시간 내는 게 그리 어려우냐'라고 디스 했었는데요. 살아보니 괜히 그 형님들이 그런 말씀하신 게 아니더군요.

사회생활 해 보니 친구들을 1년에 한 번이라도 보면 자주 보는 것이었습니다. 동종업계, 회사 사람들 정기적으로 보기도 쉽지 않은 판에 개인적인 친분을 정기적으로 보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시 형님들은, 은퇴 전까지는 잘 못 보고 지내다가 퇴직 후 청계산 아래에서 다 만나게 된다며 너무 염려치 말라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걸 보니 진짜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23년에는 연락 좀 더 하고 살아야겠습니다. 돈 한 푼 안 드는 카카오톡을 두고도 이러고 살고 있으니, 변명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6. 22년 말에는 부자가 될 줄 알았는데 깡통만 차고 있는 점


21년 희망차게 사 모았던 주식은, 22년 들어 제게 '희망찬 근로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로소득으로 노비탈출의 꿈을 키워가다가 MTS/HTS에게 참 교육을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식앱을 열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업비트요? 아 그건 술자리에서 술값 내고 싶지 않을 때 한 번씩 보여주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음, 안구에 습기가 좀 차네요..


천조국 형님들이 금리를 팍팍 올리시는데 제가 뭐라고 이걸 당해낼까요. 고래 싸움 멈추기를 기다리는 새우의 심정으로 지냅니다. 결과론적으로 22년 초에 빤스런을 했어야 했습니다만 이왕 이생망이라면 캡틴 아메리카 매매법 (북극해 얼음밑에 잠들어 있다가 60년 뒤 뉴욕증시에 나타나기)으로 승부하려 합니다. 


미국 덕후들은 이러고 논다고 합니다. (출처 미상)



... 정신 차리고 23년에는 경제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결론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사다난했던..이라는 진부한 표현도 이제 지겹습니다. 21년 말이나 20년 말이나 이제는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거든요. 생각해보면 좋은 일 나쁜 일 많았지만 어찌 되었건 몸 건강히 다음 해를 맞이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봅니다. 

한 해라는 개념이 사실 우리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거잖아요. 해는 어제처럼 내일도 똑같이 뜰 거고, 우리 사회는 또 똑같이 굴러갈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3시간 뒤면 23년의 시작이네요. 저도 새해부터는 브런치 글로 여러분과 더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준비 잘하시길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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