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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메타버스 세상'은 올까요?

에스콰이어 기고문을 옮겨봅니다.

부족한 글솜씨임에도 여러 매체에서 기고 요청이 있어, 몇몇 곳에 글을 드리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기고요청자의 니즈(!?)를 반영하게도 되고, 매체 자체의 성격도 고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IT매체나 금융권 매체에는 아무래도 딱딱하고, 숫자로 증명되는 이야기를 주로 쓰게 됩니다. 

즉, 재미없는 글이 나옵니다.(ㅠㅜ)


그러나 1년에 한 번 정도 기고하는 에스콰이어는 다릅니다. 잡지 성향이 꽤 자유롭다 보니, 저도 자유롭게 쓰거든요. 21년의 카카오글도 그랬고, 22년의 메타버스 글도 그랬습니다. 글이라는 게 쓰다 보면 문장이 딱 막혀서 진도는 못 빼고 고민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글은 그야말로 한 번에 쭉 써 내려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스콰이어의 동의를 받아, 편집 전 원문과 기고문 링크를 공유합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 본 글은 타 사이트 이동을 금지합니다

** 썸네일의 이미지는, AI가 그렸습니다. 좋은 세상입니다 덜덜 

    (feat DALL-E https://labs.openai.com/)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종이로 인쇄된 제 글을 볼 땐 여전히 묘한 느낌이 듭니다.


대체 메타버스는 어디에. (에스콰이어 23년 1월호)


필자는 98학번이다. 에반게리온이 97년도에 나왔고 스타크래프트1이 98년에 나온 탓에 내 1학년 성적표는 Final Fantasy.. 즉 FF의 향연이었다. 온라인 게임이 태동하던 시기였지만 난 워낙 스타에 미쳐 있어서 다른 게임은 하지 않았다. 옆자리 선배가 하던 리니지를 나도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외계인 때려잡느라 성적표를 F로 도배한 후 도망치듯 입대했다. 복학해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리니지를 열심히 하던 선배는 아름다운 여자친구도 리니지에서 만났고, 게임화폐인 아데나와 아이템을 팔아서 중국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스타크래프트 판에는 시커먼 남자들만 득시글거렸는데 리니지 속에는 일종의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다. 나도 리니지를 했어야 했다. 젠장. 


그리고 무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급격히 아재가 된 난 통신사를 거쳐 금융회사의 신사업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메타버스가 화제다. 그 옛날 아는 선배가 열심히 했던 리니지가 메타버스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속으로 꾹 눌러 담았다. 저명하신 교수님들이 연일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를 강조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의심을 할까. 하루가 멀다 하고 책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 뭔가 있으니까 저 난리겠지. 내가 모르는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이다. 2021년에는 페이스북이 아예 사명을 메타로 변경했다. 세상은 열광했다. 당장이라도 메타버스 시대가 열릴 거란 기대에 가득 차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메타버스가 핫해지니 신규사업 아이템으로 검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메타버스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어떤 기술을 쓰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저명하신 교수님들도, 기자들도 자꾸 게임을 메타버스로 지칭하고 있었다. 초글링.. 아니 초등학생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로블록스(Roblox)와 포트나이트(Fortnite)가 메타버스라고 한다. 먹고살기 바빠서 안 하던 게임을 폰에 설치하고 해 보았다. 그냥 자유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관계를 맺는 건 맞지만 안 하는 사람마저 굳이 열심히 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그 유명한 제페토(Zepeto)도 설치하고 열심히 사용해 보았다. 아바타를 꾸미고, 친구를 만나고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내 지인들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더 많았고 넘어오지 않고 있었다.


메타버스가 급격히 회자되는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었다. 현실세계가 암울하니 비대면을 넘어 가상세계로 연결된다는 논리는 꽤 그럴듯하다. 유명가수가 잇따라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글로벌하게 수백만 명이 보았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대기업들은 기업 설명회를, 대학생은 신입생 환영회를 유행처럼 메타버스에서 했다. 무슨 브랜드가 아무개 메타버스와 제휴해서 신제품을 론칭하고 쇼룸을 구성했다는 건 이제 대단한 뉴스도 아니다. 그런데 딱 그 정도였다. 보도자료를 만들기 위해 하는 건가 싶은 이벤트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참석하면 별다방 아메리카노 기프티쇼를 뿌리지만 딱 그때뿐 인 것들. 


IT를 오랫동안 봐 온 입장에서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2014년 애플이 아이비콘(iBeacon)이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블루투스 저전력 기술을 사용해서 전파를 쏘는 비컨을 요소요소 설치하여 고객들이 편리하게 실내 위치도 알 수 있고 기업들은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도 세상은 열광했다. 당장이라도 마케팅의 신세계가 다가올 것처럼 기사가 쏟아졌고 비컨과 IoT 관련된 책이 서점가를 덮었다. 그때도 신사업 아이템으로 깊이 검토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아이비컨을 여러 곳에 설치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는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어떻게 해 볼만했다. 진짜 문제는 고객이었다. 고객은 사업자가 보내는 무분별한 마케팅 푸시(Push)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관련 앱을 설치하는 것도 싫어했고, 푸시 동의조차 거부했다. 심지어는 배터리 아낀다고 블루투스를 끄고 다니는 고객도 많았다. 이런 장치가 있으면 고객들이 좋아할 거라는 사업자들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 비컨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메타버스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도 여기에 있다. 만들어 놓으면 대중들이 좋아할 거라는 공급자스런 마인드. 우리는 지금도 PC와 모바일에서 사회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카카오톡과 줌(Zoom), 구글 닥스(Google Docs) 등이 그 도구이다. 완벽한 도구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딱히 불편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왜 메타버스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해야 하고, 아바타를 끌고 다니며 미팅을 해야 할까? 줌으로 PPT 화면을 공유하며 말하는 회의와, 메타버스 안에서 아바타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PPT화면을 띄워 놓고 이야기하는 회의 간에 얼마나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오히려 내 구닥다리 PC의 시스템 리소스만 더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 총무팀이나 경영기획팀에서는 올해의 성과로 사장님께 ‘메타버스 도입을 통한 업무효율 강화’를 적었을 것이다. 더불어 ‘트렌드를 리딩하는 우리 회사’라고 광을 팔고 있겠지. 일단 들여왔으니 ‘잘 못쓰면 니들 탓’이라는 기획팀장님의 호통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메타버스 사업자들이 돈을 벌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페토를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제트는 21년 말 매출액 379억 원, 당기순손실은 1,129억 원을 기록했다. 메타, 로블록스, 리얼리티 랩스 등 해외의 메타버스 기업들도 주가하락과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을 살펴보면 3가지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광고와 행사 협찬, 아바타 아이템판매, 가상세계의 부동산판매이다. 이는 놀랍게도 2003년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세컨드라이프의 BM과 동일하다. 20년 전 나온 사업모델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상상 속의 동물 기린이나 여자친구처럼, 메타버스의 BM이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메타버스는 완전히 허황된 것일까. 영화 레디플레이어원 처럼 되는 게 인류의 미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레와 간다무데 이꾸!’ (난 건담으로 간다!)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필자다. 얼른 저런 세계가 왔으면 좋겠다. 영화 매트릭스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메타버스 그 자체 아닌가. 영화와 2022년 현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디바이스이다. 레디플레이어 원 영화 초반에서 메타버스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장비가 소개된다. 360도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러닝머신,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장갑, 온몸에 붙이는 센서, 그리고 VR헤드셋까지. 매트릭스는 아예 목 귀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뇌신경을 직접 접속시킨다. 지금처럼 키보드와 마우스, 조그마한 터치 스크린으로 즐기는 것과 차원이 다를 수밖에. 메타의 오큘러스(Oculus) 헤드셋이 메타버스 시대의 핵심 디바이스로 언급되지만 아직은 성능, 가격, 휴대성을 고려하면 시작단계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2를 착용해보고 무척 놀랐다. 대두에 안경까지 착용한 필자에게도 완벽한 증강현실 경험을 제공하는 기기였다. 안경을 벗지 않고 바로 머리에 쓰는 방식이어서 편했고 현실감은 차원이 달랐다. 그 자리에서 사려다 500만 원이라는 가격 앞에 애써 태연한 척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이 정도 디바이스가 확산된다면 메타버스 시대는 언젠가 올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중저가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게임기가 20~30만 원 전후이니 그 정도 가격대에 휴대가 간편하고 적어도 시각/청각을 커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신체 움직임까지 정확히 잡아내는 센서가 있는 글러브 같은 것도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MSN 메신저가 카카오톡으로 바뀐 것처럼 디바이스가 혁신적으로 발전하면 써야 하는 이유도 생겨난다. 사람들이 헤드셋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메타버스 시대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는 제발 메타버스를 냉정하게 평가하자. 권위자 행세를 해야 하는 교수, 클릭 수를 올려야 하는 기자, 눈먼 돈을 투자받아야 하는 대표들을 제외한 선량한 우리 모두에게 메타버스는 아직 먼 이야기니까.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3820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58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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