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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사장님은 한때 인사담당자였습니다.

회사명과 직책을 뺀 나에겐 무엇이 남을까

몇 년 전 일입니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무렵,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보통 이런 전화는 둘 중 하나입니다. 파트너사 모르는 직원 아니면 스팸전화. 바빠서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길과장,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약간은 기운 빠진 조용한 목소리. 처음에는 누군가 싶었지만 이내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퉁명스럽던 목소리는 순식간에 하이톤이 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며 반갑게 되묻습니다.


"와! 차장님! 이게 대체 얼마만이에요! 아니지 이제 팀장님이신가요?"


전화를 거신 분은 제가 직전에 있던 그룹의 모 본부 인사담당자였던 A차장님이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당시 회사는 CIC (Company In Company)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한 회사이지만 내부에서는 독립된 법인처럼 고유의 재무, 인사조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주신 그 차장님은 제가 있던 본부의 인사담당자였습니다.


어느 회사이던 인사담당자라는 위치는 굉장히 특별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구성원들의 인사사항을 열람할 수 있고, 징계와 포상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승진대상자를 1차적으로 선별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입니다. 또한 고과에 대해서도 기초자료를 작성하여 임원에게 제공합니다.


이렇다 보니 인사담당자와는 점심한번, 저녁 술자리 한번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도 약속 한번 잡으려고 늘 노력합니다. 어떤 자리를 가더라도 동석한 사람들은 이 분의 눈치를 봅니다. 평가자료가 어떻게 올라가느냐는 개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저는 주니어 티를 막 벗고 있던 터라, 이분은 정말 하늘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그때 이후 꽤 시간이 흐른 터라 전화도 정말 반가웠습니다. 동시에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회사에 왔는데, 전화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반갑게 인사가 오고 가고, 근황을 여쭤봤습니다.


"아, 나 작년에 그만뒀어. 자네 지금 있는 회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이번에 분식집을 내서 말이야. 시간 되면 한번 놀러 와. 잘해 줄게"


머릿속으로 헉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승장구하셔서 임원까지 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퇴직이라니, 그리고 웬 분식집이지 하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를 드려야 하는 건지 축하를 드려야 하는 건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우물쭈물하자 차장님이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괜찮아. 나쁜 일 아니게 잘 나왔어. 시간 되면 꼭 한번 와"


잘 알겠다고 몇 번이나 꼭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앞 뒤 사정도 모르면서 막연히 착잡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셨던 업무의 전문성이나 그 네트워크를 제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의 느낌도 그랬습니다.


옛 추억에 젖어 잠시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에 또 파트너사 전화가 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며 마음속으로 다음 주 즈음에나 시간 내서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다음다음 주에도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저는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막연히 한번 가야지 하고 되뇌면서.




차장님의 전화를 받고 1년 정도 흐른 올해 초, 갑자기 그때 그 전화가 생각났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번 못 드린 게 갑자기 죄송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길과장!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내?"

"차장님 죄송합니다. 그때 전화 주시고 제가 꼭 한번 찾아뵈려 했는데, 하는 것 없이 바빴네요. 오늘 점심때 가계에 계세요? 저희가 점심시간이 12시부터니까 그 전후로.."

"아, 괜찮아. 나 가계 접었어. 이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더라고"


이후 꽤나 오랜 시간, 통화했습니다. 너무 죄송했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어보니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래서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차장님은 괜찮다고 하시며 전화 주셔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덤덤히 그간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회사에서 나오게 된 이야기이며, 요식업에 도전하게 된 이야기이며.

이곳에 자세히 풀 수는 없지만, 차장님이 그때 해 주신 이야기는 지금도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힘이 있고 지위가 있을 때 그렇게 자신을 만나려 하던 사람들이 퇴직 후 연락이 뚝 끊어지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한때는 우울증 약도 먹었다.


퇴직 후 하던 일과 연관된 일을 해 보려 했지만 그때 가지고 있던 인맥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사 이름과 자리를 빼고 나니, 나는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차장님의 그 대단했던 권력(사실 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을 옆에서 본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더불어 저 자신에게도 묻게 되더군요.


회사 이름과 자리를 빼면 제게 대체 무엇이 남는 것인지. 자연인인 저는 대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일지.


사실 이 이슈는,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다뤘던 문제입니다. 또한 만화 '미생'에서도 나온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주는 권위와 브랜드를 자신의 것으로 오해합니다. 저 또한 많이 그랬고 그러고 있고요.

그래서 많은 자기계발서에서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라

자기가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해라. 그 분야의 최고가 되라

업무 내외부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제가 직장생활하며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회사와 자신의 분리' 조차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개개인과 이야기 나눠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자신을 돌이켜보자면 '회사생활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어서'  였던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또 거의 반평생을 직장에 충성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이 회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A차장님 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고민도 있습니다. 결국 회사의 브랜드를 벗어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포스팅에서도 했던 고민이지만 나이 먹고도 아직 이게 무엇인지 몰라 찾고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이런 글을 쓸때 내용이 많이 변해 있길 바래봅니다. 개인으로서 홀로 서 나가려면 이렇게 해라! 라고 말이죠. 성장에 대한 고민은 2019년에도 계속 될 모양입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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