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소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일전에 제 브런치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제 과거를 토로한 바 있습니다. 그 덕에 저는 꽤나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지병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가성비 병'도 그중 하나입니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가성비를 매우 따지는 거죠. 아주 깊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 덕에 엄청 피곤하게 삽니다..)
그러다 보니 카드 체리피킹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저는 올해 초 발급 중단이 예고된 카드 하나를 재빠르게 발급받았습니다. 경남은행의 BC 다이아몬드 카드입니다. 이 카드는 연회비 30만 원짜리 카드입니다만 해외항공권이 1+1이고 해외호텔도 1+1입니다. 이래저래 연회비 이상으로 혜택이 있다 보니 발급이 중단된 것이죠.
여행에 특화된 카드이다 보니 어딜 갈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저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저 자신을 설득합니다.
- 항공권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가 공짜다. 그러니 비싼 항공권을 하는 게 이익이다
- 멀리 가는 항공권이 비싸다
- 성수기 항공권이 비싸다.
결론 : 성수기에 제일 멀리 가자 (그게 어디인진 모르겠지만)
해외항공권 제공 가능 리스트를 쭉 살펴보며 가장 먼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쿠알라룸푸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사회과부도에서나 보던 바로 그 도시.
네, 이렇게 제 말레이시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디 브런치에는 회사 이야기만 쓰려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여행기를 씁니다. 가기 전에 여행 준비한 것들과 가서 겪은 시행착오가 여행 준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들인 시간이 많아서 아깝기도 하고요. 약 2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휴가도 직장인에게 의미가 있으니, 따로 글로 풀어보겠습니다. (의미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휴가를 위해 일을 하..)
1. 여행기간 결정
목적지는 가성비를 이유로 쿠알라품푸르.. 그리고 일정도 가성비를 이유로 가장 성수기인 8.4~8.11로 정했습니다. 비행기 예약을 하면서 가격이 비쌀수록 뭔가 혼자 뿌듯했습니다. 가성비에 영혼을 팔고 나니 뭔가 여행이 쉬러 가는 게 아니라 빡세 지기 시작합니다.
2. 상세 목적지
자유여행을 준비함에 있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대형서점에 가서 해당 국가 관련 여행책자를 모두 보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나 쿠알라룸푸르는 고등학교 세계지리 이후로 저와는 인연이 없던 곳입니다. (하다못해 부루마블에라도 있었더라면 알았겠습니다만) 태국이나 필리핀 등등과 유사한 나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책자를 봐도 비슷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부분의 책에서 소개하는 지역은 쿠알라/말라카/페낭/랑카위/코타키나발루 정도였습니다. 저도 이들을 목적지로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파악한 각각의 특성은 간략히 아래와 같습니다.
쿠알라 품 푸르 - 국제공항이 있어 비행기 때문에 오며 가며 들르게 됨 / 메트로폴리탄 / 쇼핑 & 맛집 선호 시 좋아 보임
페낭 & 말라카 - 역사문화 유적지
코타키나발루 - 한국사람 많이 감. 한국에서 직항 있음. 휴양지로 유명
랑카위 - 직항 없음. 휴양지. 제주도 1/3 크기. 렌트해서 다니는 경우 많음
말레이시아에 관심이 없는데 페낭/말라카가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빼고, 코타키나발루는 직항이 있으니 다음에 기회 되면 가기로 하고 패스. 그래서 결론은 랑카위 4박 5일 + 쿠알라 3박 4일이었습니다.
3. 주요 POI 결정 및 숙소 결정
주로 방문해야 할 곳을 POI (Point Of Interest)라고 합니다. (예전에 서울시 관광프로젝트를 하며 배웠습니다) 여행책자와 블로그, 네이버 카페를 두루 보며 유명 POI를 확인합니다. 이게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원래 쇼핑을 안 좋아하고 액티비티를 하거나 자연경관이나 구조물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 것 위주로 일자와 매핑해서 계획을 합니다. 이때 가장 좋은 도구는 구글맵과 원노트입니다.
구글맵에는 각 POI 별로 별표를 해 둡니다. 지도를 보면서 갈 곳을 확인하면 동선 짜기가 편리합니다. 전체 일정은 MS 원노트로 정리합니다. 일자별로 페이지를 만들어서 관련된 자료를 모두 모아둡니다. 일종의 파일철 같은 느낌인데요. 구글맵과 원노트 모두 오프라인 저장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출국 후 비행기 안이나 현지 유심을 넣기 전에 확인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POI 별로는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려 노력합니다. 연결되는 교통편, 운영시간, 티켓 가격, 봐야 할 것들 (가서 못 보고 넘어가면 억울하니), 주차비용 등입니다. 구글맵이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구글맵 리뷰, 그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꿀팁이 많아 필견입니다. 카페나 블로그 글은 길기도 길지만 몇 가지 경우 문제가 있거든요. 대표적인 게 바로 맛집에 대한 포스팅들입니다.
관광지야 누가 가든 가게 되니 정보가 누적되어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만 맛집은 개인차가 심합니다.
맛집 탐방만 하러 가서 한입씩만 먹으며 하루 종일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는 잡지 기자가 아닌 이상 다들 3끼 내외로 먹게 되는데요. 자연스럽게 블로거들의 리뷰는 "내가 갔던 맛집이 젤 맛있었다"는 리뷰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현지에서 살면서 모든 메뉴를 먹지 않는다면야 칼 같은 리뷰는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맛집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는 초 유명 가계가 아니라면 다른 지표를 활용합니다. 바로, 현지인들의 구글맵 리뷰 평점이 좋은가와 직접 현장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많이 앉아 있는 식당에 가는 식입니다.
POI 가 정해지면 여기에 맞춰서 상세 일정과 숙소를 결정합니다. 랑카위에서는 렌트 또는 그랩(우버, 카카오 택시와 같은 앱입니다)을 많이 쓴다고 하니 이를 고려하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합니다.
각 POI에서 대략적인 소요시간을 정하고 동선을 설정하면 최적의 숙소가 나옵니다. 저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잘한 것처럼 적었습니다만 이번 숙소 결정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후술 하도록 하겠습니다.
POI설정을 하며 현지 전용 투어(액티비티)도 알아봅니다. 선셋 크루즈, 맹그로브 투어, 코랄 투어, 호핑투어 등등이 뜨네요. 한인 여행사를 통한 예약과 해외 여행사를 통한 예약 가격비교도 해보고, 평도 봅니다. 저는 안경 때문에 물속 탐험은 재미가 없어서 랑카위에서는 선셋과 맹그로브만 예약했습니다. 쿠알라에서는 자유여행이 어려운 곳으로 겐팅 - 반딧불 투어를 예약했고요.
쓰다 보니 저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이게 노는 건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회한이 몰려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4. 부대사항 확인
늘 여행을 하다 보면 챙겨야 할 체크리스트들이 나옵니다. 이번 여행의 경우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쿠알라룸푸르 공항 입국 후 국내선 (쿠알라-랑카위) 환승 동선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인천공항처럼 KLIA, KLIA 2로 나누어집니다. 항공권상의 표기는 KLIA(M), KLIA 2입니다. 제가 구매한 비행기는 말레이시아 항공 (ICN->KUL), 말린도 에어(KUL->LGK)였습니다.
경험상 공항 간 이동이 꽤 걸리는 경우가 있고,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탈 경우 환승 시 소요시간도 꽤 걸릴 수 있어서 국내선 비행기 시간이 문제였습니다. 쿠알라 공항 도착시간은 05:45, 말린도 에어는 08:15로 잡았습니다. 2시간 이상 텀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ㅠㅜ)
에어아시아를 탄 분들은 KLIA 2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소모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린도 에어와 말레이시아항공은 다행히 같은 KLIA 였습니다.
- 비행 마일리지 적립 (이번에 탄 비행기들은 스카이팀이나 스타얼라이언스가 아니었습니다)
말레이시아항공은 원월드라고 하는 항공연합입니다. 대한항공의 스카이팀, 아시아나의 스타얼라이언스가 아닙니다. 그 덕에 말레이시아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해야 하나.. (언제 또 이걸 탈지 모르는데) 고민하다가 검색해보니 저와 같은 고민을 한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결론은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아시아 마일즈 적립이네요. 원월드 항공사를 이용하는 경우는 이쪽으로 몰빵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랑카위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말린도 에어라는 저가항공을 이용했습니다. 이것도 마일리지 적립이 됩니다. 언제 찾아먹을진 모르겠지만 이것도 홈페이지 가입해서 적립을 합니다.
- 현지 렌트 대비 국제면허, 국내와 다른 운전방식 숙지
국제면허는 근처 경찰서 가면 8~9천 원 사이에 발급해 줍니다. 억울하게도 앞으로는 운전면허증 뒷면이 영어로 나와서 국제면허를 별도로 발급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고 하네요.
랑카위는 일본처럼 운전 방향이 반대입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도우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튜브입니다 (!!)
유튜브에서 '랑카위 운전', 'Langkawi drive' 등으로 검색하면 그냥 운전하는 영상이 많이 나옵니다. 보고 있으니 대충 감이 왔습니다. 좌우반전 운전 걱정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 모바일 데이터 확보 (유심 or 로밍 or 와이파이 라우터)
저는 어딜 가든 현지 유심 구매파였습니다. 로밍은 그야말로 호구이고, 와이파이 라우터 대여는 별도의 짐을 들고 다녀야 하고 배터리 이슈도 있어 싫었습니다. 또 일행과 떨어질 경우 누군가는 인터넷이 안 되는 점도 별로이죠.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뜻밖에 KT 5G의 장점을 발견합니다. 올해 말까지 5G 8만 원 이상 요금제 사용자에게는 데이터 로밍이 무료인데, 속도도 1M 수준을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현지에 가서 써 본 바 속도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만 의외로 또 하나의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국토가 남한의 1.5배입니다. 도심에서야 다 폰이 터지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안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로밍을 해 가면 그때그때 터지는 통신사로 바꿔서(!) 네트워크 활용이 가능합니다. 매번 현지 유심만 쓰다가 이렇게 써보니 좋더군요.
또 로밍의 장점은 한국에서 오는 전화와 문자를 그대로 받는 것이죠. 현지 유심으로 하루 종일 여행하고서 밤에 숙소에서 한국 유심을 꽂을 때의 그 두근거림(주로 회사 전화나 문자가 왔을 것에 대한..)을 겪지 않아도 되는 건 큰 메리트입니다.
- 여행자보험
여행자보험은 사실 싸고 보장 많이 되는 걸 하는 게 제일 좋겠습니다만 금액차이가 크지 않기에 시간을 쏟는 것이 아깝기도 합니다. 여행자보험 비교 사이트 등을 참고하셔서 긴 시간 들이지 말고 하시길 추천합니다.
- 여행지별 환전소 위치
저는 여행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환전하고 대부분 현지에서는 카드를 사용합니다. 카드로 현지화폐로 결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환율로 받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 환전 시 적용받았던 환율은 1링깃 당 300원 전후였는데 카드결제 시 적용되는 환율은 292원이었습니다.
여행 가기 전 두 달간, 여행 준비는 제게 고통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준비를 하면 여행을 다녀오고 기억이 엄청나게 오래갑니다. 심지어는 여행을 가기 전인데도 이미 다녀온듯한 기분이 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실질적인 랑카위-쿠알라 여행기를 올리려 합니다.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