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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은 뇌가 작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축 걱정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회사 다니다 보면 매일매일이 똑같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고,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속에서 유튜브 좀 보다가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하루 종일 탈탈 멘탈이 털리고서 다시 콩나물시루를 타고 집에 옵니다. 방전되어가는 몸을 누이고, 과자나 먹으며 넷플릭스 좀 보다가 기절을 5번 하면 주말입니다. 다시 여쭤봅니다만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과 같이 일상에서의 탈출을 원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여행도 요원한 이야기가 되어 새로운 탈출을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관심을 두는 건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걸 찾아보는 겁니다. 다큐가 재밌으면 늙은 거라고 하던데 저도 그런 걸까요 ㅠㅜ? 사실 콘크리트 덩어리(아파트부터 회사건물까지) 속에서만 살다 보니 흙을 밟을 일도 없고, 자연을 접할 일도 없죠. 그래서 모바일 화면으로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생각 안 하려는 발버둥입니다)


최근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바로 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무려 우리 몸의 전체 에너지 중 20%를 쓰고 있다고 하네요. 이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하긴.. 앉아서 머리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고열량 음식을 간식으로 많이 먹는 경우가 많죠. 스트레스받아서 단것이 당긴다 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왠지 안심하는 분들 많으실 듯)


그런데 재밌는 지점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야생동물 중에 가축이 된 사례는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개는 늑대를 길들인 것이고 소와 닭도 야생을 길들인 것인데요.


야생 닭.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출처:나무위키)


이렇게 가축화된 동물은 뇌의 크기가 야생일 때보다 더 작아진다고 합니다.


야생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뇌를 훨씬 많이 씁니다. 먹이가 어디 있을지 끊임없이 살펴야 하고, 천적에게서 숨어야 합니다. 신경 쓸게 너무 많은 거죠. 그러니 머리를 계속 써야 합니다.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가축이 되어 사람이 길러주면 신경 쓸 것이 확 줄어듭니다. 사람이 재워주고 천적에게서 보호해 주고 먹이를 줍니다. 가축은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뇌를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뇌로 갈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생존에 유리합니다. 키워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생존에 유리하니 빠른 시간에 살을 찌우고, 알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게 더 좋죠.


이렇게 변화한 가축을 다시 야생으로 보내면 생존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된다고 합니다. 가축 조상들이야 살벌한 야생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유전자 레벨로 기억하고 살았지만, 이들은 완전히 다른 종이 되어 버린 것이죠. 야생에서는 바로 도태되고 일부만이 살아남아 다시 야생종으로 진화할 겁니다.


뜬금없이 소와 닭 이야기를 꺼낸 건, 저는 이 과정이 소름 돋도록 우리 월급쟁이와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자기 비하가 아니냐고 공격할 수 있지만, 저는 15년을 회사 다니면서 저 스스로 가축화된 것 아닌가 종종 생각했습니다. 몇 년 전'사축(社畜)'이란 개념이 유행했었는데 같은  맥락인 거죠.


여기에 안경만 씌우면 저랑 비... (출처 : 경향신문)



야생 닭.. 아니 야생 길진세라면 회사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먹이를 구할 능력이 있고, 저를 잡아먹을 수 있는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이라도 있어야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둥지도 필요합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없어지면 저는 이 모든 걸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 바로 잡아먹히지 않을까 싶네요. 혹은 굶어죽던가.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너무 초라해지니 혼자 핑계도 대 봅니다. 어찌 보면 이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교육과정 탓도 크다고요. 초-중-고-대 로 이어지는 교육 속에 야생의 생존술을 배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야생은 그저 책으로나 보던 먼 나라 이야기였달까요.


이쯤 되니 닭과 소 걱정을 하다가 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축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저희 사육장 주인.. 아니 회사님이 영원히 저를 챙겨주실 것은 아니니까요. 저도 언젠가 야생으로 나가야 할 겁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경영수업 중인 드라마 속의 실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다들 비슷할 겁니다.


자꾸 사육장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해 보시길 권합니다. 목이라도 쭉 빼서 사육장 밖은 어떤지 관찰하고, 밖에 어떤 맹수들이 우글거리는지 보고 대비합시다. 피부가 두꺼워지던, 손톱이나 이빨을 기르던 우리 몸을 지킬 무기를 준비하기 바랍니다. 그게 뭐냐고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방법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천편일률적으로 준비할 순 없는 게 문제죠. 이 글을 읽는 누구는 여우, 누구는 두더지, 누구는 토끼.. 다 다른 동물일 테니까요. 땅을 파서 숨던,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살던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뇌 이야기를 했으니 뇌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크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원시인 같다고 놀려대던 게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 원시인들이 실제로, 현생인류보다 뇌가 컸다고 합니다 (!!)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많이 놀랐습니다. 야생동물과 가축의 사례처럼, 원시인들도 수렵을 하고 환경 속에서 싸워나가기 위해 뇌를 더 많이 썼던 것이죠.  뇌가 큰 것으로 결정이 되었으니, 저도 야생에서 조금은 버틸 수 있으려나요.


모두들 잘 살아남길 기원합니다. 앞으로 저도 제가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방법을 종종 공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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