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배우 존 조의 열연으로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은 할리우드 영화 '해롤드와 쿠마 - 화이트캐슬에 가다'라는 작품이 있다. 난 그 영화를 리투아니아에서 보았는데, 어떤 이들은 그 영화를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드라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기도 하지만 내 개인적 차원에서는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해 보았거나, 인종차별보다 더한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살아야 하는 저개발국가 국민들이 아니면 잘 체험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을 아주 재미있게 잘 풀어간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국계와 인도계 미국 직장인이 하루 종일 회사에서 겪었던 스트레스와 인종차별과 관련된 불편한 기억을 잠시 잊기 위해서 '화이트 캐슬'이라는 브랜드의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중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지 꽤 지났는데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명대사는 이렇다.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한국인 해롤드가 화이트캐슬 햄버거를 먹는 것을 포기하자고 말하자 인도 출신 쿠마르가 하던 말이다. 내 기억의 편린들을 묶어서 재조립한 거라 실제 영화 대사에서는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길.
"넌 우리 식구들이 왜 인도를 버리고 이 미국에 왔는지 아니? 바로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야.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에는 통틀어서 햄버거집이 딱 하나밖에 없었어. 바로 쇠고기 햄버거를 파는 곳이었지. 그런데 이 미국은 아니야.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널렸다고. 갖가지 토핑에 수 십 가지 종류의 햄버거!!!! 평생 물릴 때까지 햄버거 하나만 먹고살아야 하는 고통이 뭔지 알아?"
내가 살던 발트지역의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국이기도 하고 현재는 번듯하게 OECD에도 가입을 한 상태이지만, 사실 '먹는 것만 보고 말하자면' 그 인도인 쿠마르가 느끼던 심정을 절실하게 동감하게 만드는 지역이기도 했다.
단지 햄버거 하나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선택의 다양성과 시장의 다변화, 국제화 분위기 등에서는 피부로 느끼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졌고 특히 그 여행지에서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즐기는 미식 여행객들에게는 아무래도 추천을 하기가 애매한 지역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시간도 많이 남고 일은 하기 싫은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없던 일, 그리고 배는 고프고 밥은 해 먹기 싫음에도 딱히 먹고 싶은 것도 맛있게 먹을 만한 것도 없어서 그냥 굶곤 하던 일이다. 내 입맛을 만족시켜 줄 먹고 싶은 것들이야 많았다. 그 나라에선 먹을 수 없는 것들이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더 맘 편했다. 먹을 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나름 발전된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필요 없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곤 한다.
(발트지역 같은 경우에는 인구수나 내수시장규모 등 다양한 것을 같이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먹는 것만 보고 이야기했을 때'이다).
이런 차원에서 케냐는 유럽에 있는 라트비아보다 훨씬 선택의 폭이 넓고 시장도 다변화되어 있었다. 발트지역에서는 상영관을 찾아볼 수 없어 볼 수 없었던 아이맥스 영화를 실로 오랜만에 케냐에서 보았고 (물론 현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서 아이맥스 영화관이 들어섰다. 케냐보다 한참 뒤에) 그리고 발트지역에는 없어서 먹지 못했던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을 나이로비에서는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이로비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거나 그래서는 아닐 것이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도시이니만큼 UN 등 국제기구의 본부가 다수 들어서 있고, 세계의 유수 기업들은 모두 이곳에 지점이나 법인을 두고 있기 때문인지 단지 '다부족, 다민족'사회를 넘어서서 '다문화, 다국적' 사회로 자리를 잡는 분위기이다.
그런 다양화된 사화의 이면은 음식문화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웬만한 백화점과 쇼핑몰에서는 세계 각지의 음식들을 파는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여 정말 한 끼 한 끼 메뉴를 바꾸어서 먹다 보면 몇 달도 금방 보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미식 차원의 쾌감을 선사하는 도시가 아닐 수 없었다.
단지 음식에서만은 아니다.
내가 인도영화 덕후의 길을 걷게 해 준 명작 데브다스(Devdas)를 2006년 리투아니아 영화관에서 접한 이래 처음으로 극장에서 인도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 '나이로비'에서 일 줄은 몰랐다. 영화관 벽에 인도 출신 스타들 사진이 빼곡한 걸 보니 발리우드 영화의 인기가 케냐에서도 꽤 높거나, 아니면 인도인들의 수가 아주 높거나 둘 중에 하나다.
몇 년 전 비극적인 테러가 있었던 웨스트 게이트 백화점 내 극장에서 본 작품은 '미션 임파서블'과 '분노의 질주', '영웅본색'을 적절히 혼합한 세 시간짜리 BMW 광고 같은 액션 영화. 제목은 War.
처음엔 영화 '실미도'에서 설경구와 안성기가 국가의 안위를 논하는 심각한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비보이 춤을 추어대는 식의 정통(?) 발리우드 영화인 듯했으나, 마지막에는 엄청난 반전으로 실로 끄암짝!! 액션과 특수효과 역시 할리우드 버금갈 정도. 혹시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면 꼭 보시길. 그리고 보게 되면 영화 흐름에 대한 욕은 일단 끝날 때까지 미뤄두도록 하자. 꽤 재밌다.
정말 말로만 듣던 대로 중간에 휴식시간도 있다.
나이로비 시내에 새로 생긴 고급식당. 한국 모 대기업 이름과 닮았지만 그곳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외국음식들도 많이 들어와 있지만 현지 음식들의 매력도 대단하다.
현지인들 식당에 갈만한 여유나 배짱이 생긴다면 자주 접하게 될 메뉴다.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세 나라에 걸쳐 자리 잡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힌 민물고기를 튀겨 우갈리라는 음식을 시금치를 곁들여 먹는다. 우갈리는 옥수수 전분을 반죽한 것으로, 먹을 때는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꼬물꼬물 반죽을 해서 먹는다. 물론 식기 없이 손가락으로만 먹어야 하며, 그래서 식당마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여기저기 있다.
케냐 한 백화점에 있는 한국식 양념치킨집인데, 먹다 보면 KFC이 코울슬로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낙타, 염소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알흠답게' 배열되어있는 소말리아 음식점과 나이로비 시내 피자 전문점
여행에서 즐기는 것 중에 음식이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행가라면 꼭 추천해 볼 만한 도시가 아닐까 한다. 물론 먹는 것 이외에 안락함과 편안함도 보장되어야 하는 분들이라면.........
안타까운 점은 시장이나 광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길거리나 시장에서 음식을 파는 경우가 있긴 하다, 나이로비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차파티 (팬케익 종류)와 차를 마시는 간이식당, 삶은 달걀, 핫도그 등을 내놓고 파는 정도. 그러나 나이로비 위생상태에 정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다면 선뜻 시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길거리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는 정말 한 개 정도 사 먹고 싶었는데, 나를 데리고 다녔던 나이로비 대학교 학생이 극구 만류를 하는 바람에 그냥 지나쳐야 했던 경우도..... 이유는, 저 옥수수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옥수수는 사 먹고 싶었다.
나이로비 대학교와의 3년간의 계약의 끝나 올해 10월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케냐에 갈 일이 없어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는 곳마다 후각을 자극하는 식당들과 바비큐 전문점에서 먹었던 악어 고기 스테이크, 거리마다 보이는 커피전문점 자바 하우스(Java House)의 스무디, 그리고 굳이 KFC나 한국식 양념치킨을 찾아갈 이유가 없던 맛있는 닭튀김 전문점 등 여전히 코끝이 자극되고 침샘이 열리게 하는 추억들인 것을 보면, 언젠가 다시 방문을 할 기회가 오면 만사 제쳐두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