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내 복잡한 부족어들
케냐는 영어 외에 스와힐리어가 공식 통용어이긴 하지만 사실 전체 인구의 20% 정도 차지하는 키쿠유(Kikuyu)라는 부족의 언어도 꽤 많이 사용되고 있다. 케냐 대통령들도 대부분 키쿠유 부족 출신에서 나왔다고 하고 나이로비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출신 부족이 어디냐 물어보면 웬만하면 다들 키쿠유라고 할 정도로 문화적 영향력이 강한 듯했다.
이번 암보셀리 여행 때 내 가이드를 맡았던 와세리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케냐 사람들은 제임스, 에릭 이런 식으로 부족 이름 대신 영어식 이름을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던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와세리라는 부족 이름을 고집했다. (사실 이 사람 이름이 아주 쉬워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이름들은 단 몇십 분도 기억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긴 하다)
그래서 나이로비 공항에서 암보셀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와세리로부터 키쿠유어를 좀 배울 수 있었다. 인사말부터 해서 숫자, 간단한 동사와 명사 등을 하나하나 배우며 암보셀리로 가는 길고 지루한 일정을 채워 나갔지만, 워낙 복잡해서 암보셀리로 가는 여정이 끝날 무렵엔 단 두 가지 단어만 기억할 수 있었다,
바로 개와 고양이. 개는 '(은)구이(Ngui)', 고양이는 '냐오(Nyau)'. 공교롭게도 한국어와 무척 비슷했기 때문이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내가 묵을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을 때 생긴 일이다. 호텔 직원이 내게 다가오더니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 뭐라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도와달라는 차원에서 와세리에게 자비를 구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다.
"저 여직원한테 당신이 키쿠유 말을 잘한다고 이야기를 해뒀거든요. 오늘 차로 오면서 배운 말 몇 마디만 해봐요."
그리고 난 그 호텔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구이, 니야오?"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정말 목청이 터져나갈 정도로 깔깔대고 웃는다. 내 발음이 그래도 듣기엔 괜찮았나 보다. 내가 그렇게 키쿠유어로 동문서답을 하자 그 직원은 와세리한테 대체 공부를 어떻게 시킨 거냐며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사실 케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는 보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나이로비 시내는 먼지투성이에 지저분하고 무질서해서 밖에 나가보고 싶은 기분도 안 드는 데다, 사파리에 가기에는 내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엄청나게 비싸다. 그리고 일단 출장으로 온 입장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기저기 구경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어떤 지역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듯하다. 케냐의 경제와 정치를 이끌어 나가는 키쿠유 부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항상 있어 왔는데, 관광정보나 교통정보를 얻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이 나라에서 관련된 지역 여행이나 답사 일정을 짜기는 내 손으로는 정말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스럽게 와세리와 여행을 하면서 키쿠유 문화권에서 수도와 같다는 도시 느예리(Nyeri)라던가 키쿠유 신화를 성역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4 명의 케냐 대통령 중 3 명이 키쿠유 족 출신이라니 그 부족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에 종교적 카리스마를 입히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적잖이 이해가 된다.
사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에서 식후경의 식은 '먹을 식'자가 '알 식'자라는 말도 있다. 물론 배가 고플 때도 좋은 것이 눈에 안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여행을 가면 보아야 할 것이 뭔지도 모르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지 일수다.
케냐에서 많이 먹고 또 많이 배우긴 했지만, 뭔가 보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
이미
나이로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진은 현대 케냐 건국의 아버지이자 키쿠유 부족의 영웅 조모 케냐타 동상. 그의 이름을 딴 케냐타 국제 컨벤션 센터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 국제공항의 이름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이다.
이분의 카리스마 덕분인지 다민족국가인 케냐에서 부족간 관계가 '개와 고양이'처럼 변질되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