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편견
Can You swim?
이 문장을 한국어로 해석해보라고 하면 아마 십중팔구는 '수영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문맥에 따라 이 영어 문장은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번역이 가능하다고 본다.
1. 수영은 할 수 있지요? (수영은 할 수 있지?)
2. 수영은 할 줄 알아요? (수영은 할 줄 아냐?)
3. 수영도 할 줄 알아요? (수영도 할 줄 알아?)
내가 영어실력이 짧아서 확실치는 않지만 위의 다양한 한국어 표현들을 영어로 옮기면 아마 같은 문장이 될 것이다. 대부분 억양이나 분위기, 표정 등에 따라서 그 복잡한 뉘앙스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입을 통해서 나오는 단어의 조합을 통해서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의 움직임, 상대방을 바라보는 각도, 눈썹 사이, 콧등, 손바닥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의사소통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런 뉘앙스를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개성에 따라 다 다르기도 하지만 특정 문화권에서만 사용되는 방식도 있다. 그러므로 문맥 상의 다양한 뉘앙스는 대체로 우리와 대화를 많이 해본 사람들이나 친숙한 문화권의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 좀 분명해지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익숙하지 못한 문화권이고 상대방 얼굴의 특징 때문에 표정을 읽기가 힘들다면, 과연 이 표현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올해 나이로비에서 숙박했던 호텔 수영장에 갔을 때 이야기다.
투숙객이라고 해도 수영장 이용 전에는 등록을 해야 하는 것 같아 입구에 있는 직원 아가씨에게 다가가 수영장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수영장엔 헬스클럽도 같이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체격 좋은 남자 직원 한 명이 나를 보더니 다가와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Can You swim?"
흠... 꽤 단순하고 쉬운 문장이지만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다.
수영을 하려고 수영장에 왔다는데, 날더러 수영을 할 줄 아냐고 묻는 게 무슨 이유지? 내가 수영도 못하면서 수영장에 온 것처럼 보이는 건가, 아니 수영을 못하면 출입이 금지되는 건가? 여기 사람들 피부색이 전반적으로 검어서 윤곽 파악이 좀 어렵고, 그래서 소리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느낌, 즉 웃는 것과 화난 것 밖에는 아직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단순한 질문은 "수영은 할 줄 아냐?"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질문에 못마땅해진 나는 수영을 못하면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물론 화를 내진 않았다. 그랬더니 그 체격 좋은 헬스클럽 직원은 만약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수영장 옆에서 항상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해서 그렇단다. 게다가 수영장 입구에서 근무하는 카푸치노 피부색의 여직원은 밝은 웃음과 함께 수영장 이용 등록카드를 내밀며 해당되는 한 곳에 표시를 하라고 이야기했다.
수영실력 - 좋음, 보통, 초보, 못함.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수영장은 규정상 이용객들의 수영실력을 확인해야 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Can You swim' 이 문장은 '수영이나 할 줄 아냐'가 아니라 '수영은 할 수 있으시죠?'라는 질문으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케냐 사람들은 영어를 정말 잘한다. 부족어가 수십 개나 되다 보니 공용어로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영국 영어를 사용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국제어 스와힐리어도 공식 통용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키쿠유, 루오 등 출신 부족의 언어도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다 보니 중등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3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리고 영어는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옥스퍼드 영어를 표준어로 하여 영국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구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뭉툭하고 장중한 리듬의 부족어를 바탕으로 하는 이들의 영어는 우리 귀에 익숙한 영어 발음과 정말 많이 다르다. 그래서 호텔이건 식당이건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귀를 잔뜩 기울이고 온갖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 같은 한국인들은 공연히 자신의 영어실력을 자책하기도 하고, 현지 사람들은 동양인들은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했다. 게다가 표정과 손짓, 모든 것들이 우리와 너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런 기본적인 문장의 해석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나와버리므로 괜스레 서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쌓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말로 인해서 뭔가 기분이 상한 것 같으면 무조건 대놓고 화부터 내지 말고 문맥 파악부터 하는 것이 정식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단지 케냐에서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