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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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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Sep 05. 2021

MPDG

고양이가 개들보다 친화력이 떨어진다고 누가 그래요, 걔들은 길가에 서있다가도 나를 보면 강아치처럼 꼬리를 치고 달려와 앵앵 대며 내 다리에 몸을 부비곤 했어요. 개들은 그냥 버릇처럼 친한 척을 한다죠?  필요할 때만 알은 척을 하는 고양이들의 애정을 받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세요. 어제도 마침 바깥에서 고양이들을 얼르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MPDG가 오작동 되면서 고양이들도 고장이 나버렸어요.


그 자리에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멈춰버린 거에요. 아무리 두드리고 흔들어도 반응이 없어서  MPDG를 빼들고  곧장 AS 센터에 찾아온 거에요.


“제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조심하셔야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누가 알았냐구요, 이제 다시 고양이들은 볼 수 없는 것인가요? 아직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고객분이 구매하신 MPDG는 그냥 1단계 난이도의 감정만 대신 수행해 해드릴 수 있는 버전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맥박이 130 정도 치솟는 결정과 경험만 대신 수행할 수 있어요. 또 고양이를 만지는 것처럼 미묘한 쌍방향성 쾌감을 구분하는 기능도 상품에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상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자주 실행하시다간 오늘처럼 시스템이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버전 업그레이드를 받으시겠습니까?”


기사님. 그게 제가 직접 수행한 쾌감인데요. MPDG 도움은 전혀 받지 않았단 말이에요. 제가 MPDG 없이도 유일하게 혼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감정이 바로 고양이들과 만나는 것뿐이에요, 사람을 만나도 아무리 멋진 곳에 가도 다른 곳에서는 쾌감을 전혀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요. 고양이랑 교감하는 건 저 혼자 했는데 왜 MPDG가 통제를 하는 건데요?


“상품을 구매하실 때 주의사항도 다 읽으셨을 거고, 게다가 AI가 다 알아서 하는 거라 저희 업체에서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업그레이드 하려면 얼마인가요.


“대부분의 어려운 결정과 복잡한 감정을 대신 느껴 드리는 B타입은 5천만원, 그리고 두뇌에 전달되는 어려운 결정과 복잡한 심정을 예외 없이 전부 대신 경험해 드리는 A타입은 1억 5천만원입니다. A타입은 MPDG만 귀에 꽂고 있으면 모든 생각과 결정을 알아서 다 해준다고 보면 됩니다. 고객님은 그냥 편하게 MPDG에 모든 걸 맞기고 계시기만 하면 되죠. C 타입의 버전만 돼도 고양이와의 교감 정도는 자신이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선택적으로 설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고작 고양이 따위와 교감하자고 예외적으로 설정하는 경우는 없지요. 지금 고객님의 MPDG는 D타입이에요, 아주 기본적인 거죠. 기본적 단계의 경험과 결정을 빼놓곤 직접 하셔야 하고 사랑스러움이라 귀여움 같은 것도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아서 느끼게 해드립니다.”


고양이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기본적인 게 아니면 뭔가요.


“상대나 대상이 있으면 안됩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제한을 풀려면 적어도 C타입은 구매하시던가요. 게다가 고객님의 상품도 조만간 계약이 종료가 됩니다. 이번 달 말까지 납부하지 않으시면 전부 리셋 됩니다. 그리고 결정수행불능자가 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안돼요, 제발 그것만은....... 이 등신 같은 로봇 같으니. 이 좆 같은 세상에서 어찌 MPDG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 결정을 내리며 살란 말이야. 그게 없으면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단 하나잖아, 살든지, 아니면 죽든지........


“고객님, 지금 불경스러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상담을 종료하겠습니다. MPDG 잊지 말고 챙겨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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