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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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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Apr 21. 2023

8. 장기매매 일당

방콕에서의 자살

“같이 동행을 했던 여자가 외국인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일당에 속해 있었습니다. 현재 태국이랑 동남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요즘 들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어서 한국 국정원과 경찰이 눈 여겨보고 있던 참이었죠. 정말 운이 좋으셨어요. 만약의 그들의 원하시는 대로 벌어졌다면 눈을 영원히 못 뜨셨더나 아니면 차가운 얼음물이 담긴 욕조 안에서 눈을 떴을 겁니다.”


난 그냥 눈을 끔벅일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을 읽은 후 대사관 직원은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가담되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선생님이 그 덫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거기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죠. 공항에서도 공작원이 있어서 낌새가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운영하는 호텔로 옮기고 사람을 일부러 접근시킵니다. 요즘 새로운 기법은 손을 통해서 전달되는 마취성분을 투입시켜서 잠에 빠지게 해서 장기를 적출하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는 겁니다. 모두가 다 조직적으로 움직이죠. 약을 손에 쥔 사람은 투명 반창고 같은 걸 손바닥에 붙이고 있다가 상대방에게만 약을 묻히는 거라 막상 그 사람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군요. 그 아가씨가 만나자마자 악수를 하자고 하던가요?”


“네, 맞아요, 너무 뜬금없이 악수를 청하기에 좀 의아하긴 했지요.”


“호텔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증거를 찾기 위해서 장소로 이동하는 차를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 가시는 것을 미리 방지했어야 되는 위험한 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왜 그 여자를 따라가게 된 것이죠?‘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됐나요? “


”현장을 급습했을 때 도망하려고 해서 총격이 조금 있었습니다. 많이 다친 것은 아니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


”그 여자는...... “ 나는 다시 한번 사실을 말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나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죽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어떤 역에 가서 투신자살을 하고 싶다고. 처음에 동반자살을 권했는데 제가 거절했고 그러더니 혼자 죽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메이가 죽는 걸 막으려고 같이 가려고 했던 거예요. “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메이요? 그 여자가 자신의 이름이 메이라고 하던가요? “


”네..... SCB 근처에 있는 (사실 그 은행이 있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텔바랑 공항에서 일한다고 했어요. “


”그 사실은 몰랐네요. 아마 선생님을 유혹하게 위해서 만들어놓은 덫일 수도 있습니다. 메이라는 사람의 오빠 역시 같이 가담되어 있던 사람이에요. 역시 체포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 말도고 연루된 사람이 수십 명입니다. 선생님이 검거하시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혹시 메이라는 사람의 오빠가 왜 선생님을 지목하게 되었는지 감이 짚이는 것은 없으세요? “


나는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자 남자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어나 잠시 병실을 둘러보았다. 


”이 정도면 지내시는 데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여자가 주입한 약이 효과가 오래가는 데다가 건강에도 치명적이라 아무래도 며칠간 여기에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병원비와 치료는 저희 쪽에서 전부 부담합니다. “


잘 쉬라는 말도 함께 대사관 직원은 간단한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 혼자 흰 병실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병원 외관을 본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으나 병실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 고급병원인 것 같았다. 내 머리맡에는 아주 좋아 보이는 가습기가 놓여 있었고 나 혼자만 사용하는 일인용 방에는 냉장고, 소파 등이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벽에는 무엇인지 얼핏 알 수는 없지만 따뜻한 색깔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이어진 그림이 걸려있었다. 


무척이나 어색하고 이상했다. 누군가 문병을 온다면 정말 좋으련만 이 머나먼 태국 땅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지 않았더라면 메이라도 꽃을 들고 내게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갑자기 안도의 한숨이 폭 나왔다. 이 일이 사실이라면 정말 나는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것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고기처럼 칼질을 다하여 내장이 몸에서 분리되어 따로 포장이 되어 어디론가 운송이 될 것이다. 장기들이 모두 적출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까 그 직원은 왜 얼음물이 담간 욕조 이야기를 한 것일까?


어찌 보면 내가 정말 원하던 죽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태국에 여행을 왔다가 불한당들을 만나서 장기가 적출되어 목숨을 잃은 한국인. 많은 이들이 나에게 동정심을 갖고 장기매매에 대한 관심이 더 놓아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난 대만에서처럼 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처럼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메이가 말한 것처럼 눈을 딱 감고 기차에 뛰어들지 않는 한 난 죽지 못하는 것일까? 아. 메이. 그녀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었을까. 싱가포르에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상처를 받고 가족의 비밀을 깨닫고 몸서리쳐 울었을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고 만나서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밝은 소리가 전해졌다. 


”아들, 여행 잘하고 있니? 왜 전화가 없어? “

”네, 잘 있어요. 이동하는 시간도 많고 좀 정신이 없어서 여유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

”너 오늘 방콕에 있는 날 아니니? “

”네, 그런데요? “

”뉴스에 보니까 한국인 장기를 적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타진됐다고 뉴스에 나오더라고, 그걸 보고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그래서 할까 말까 하다가 전화를 해본 거야. 넌 별일 없지? “

”제가 별일은요, 밖에 너무 더워서 호텔 방에서 쉬고 있어요. “

”그래, 잘했다. 별일 없다니 다행이다. 괜히 모르는 사람들 따라가지 말고 이상한 데 가지 말고, 알았지? 통화 길게 안 할게, 여행 잘하고 왔다, 아들, 사랑한다. “

”네, 어머니. “


전화를 끊고 나는 그저 아무 생각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자살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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