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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Apr 26. 2023

9. 캄보디아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씨엠립에서 자살하기 


흥행에는 대실패를 했지만. 스웨덴의 그룹 '아바'가 작곡과 제작에 참여해서 나름 유명한 곡을 많이 배출한 '체스'라는 뮤지컬이 있다. 그 뮤지컬의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머라이 헤드가 불러서 유명해진 One night in Bangkok 이란 곡이다.


중학교 시절 그 뮤지컬을 우연히 접하곤 방콕이라는 도시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그 노래를 접한 지 20년 만에 방콕에 입성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분위기는 방콕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방콕은 그 뮤지컬에서 당시 동서냉전의 분위기를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사랑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도시로 묘사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너무 말도 안 되어 뮤지컬이 전반적으로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나 역시 방콕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백 퍼센트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기원한 사견일 뿐이지만 장기 적출이라는 일을 경험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병원에서 약 일주일 정도를 더 누워있어야 했다. 위에 무슨 관 같은 것을 집어넣는 나름 고역인 치료도 몇 번 했지만 그래도 나름 편하게 먹고 쉴 수 있는 분위기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에 잠기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다. 


도화지 같은 하얗게 칠해진 병실에 누워서 이 여행의 명목에 대해서 여러 차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난 왜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지 못하고 이렇게 자살을 해보겠다며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을까. 


대학시절 이야기다. 발표과제 때문에 가지고 간 말짱한 노트북이 그날따라 완전히 맛이 갔다. 애프터서비스를 받고 나서 문제가 없으려니 하고 있었는데 그 영리한 노트북은 중요한 순간이 오면 으레 전원이 망가졌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다. 감독관이 들어오기 전 무료함을 느낀 나는 무심코 핸드폰을 켰다. 그런데 누가 처넣은 것도 아닌데 화면에 ‘실패’라는 두 글자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난 그날 시험에서 ‘실패’했다. 


이상한 일들은 자꾸만 벌어졌다. 취업면접을 하러 가는 길에는 으레 지하철에 문제가 생겼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래서 난 한 번도 취업면접을 보러 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떤 지인의 추천으로 자그마한 회사에 들어갔는데 서류를 준비할 때 아무리 꼼꼼히 점검해 보아도 숫자 하나가 빠지거나 오자가 자주 생기거나 단어를 틀리거나 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그때 난 ADHD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회사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직금도 못 챙기고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나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람들로부터 더 멀어졌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슨 일이든 잘해야 했었는데 난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내 재주로 뭔가 벌어먹고 살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는 난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시간을 죽이며 살았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떠나니 내 생활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복권에 당첨되었다. 게다가 이번엔 인신매매단에 끌려간 덕에 태국 전부로부터 또 위로금을 받게 될 거란다. 아마 이런 식으로 행운만 거듭되었다면 난 아마 자살을 하겠다고 여행을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자살을 하겠다는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좀 차분해졌을 뿐, 어딘가 아름다운 곳에서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쉬면서 다른 여행지를 찾아보았다. 태국과 맞닿아있는 캄보디아가 눈에 들어왔다. 킬링필드의 역사가 떠올랐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악마 같은 독재자가 살았다는 그곳에 가서 과연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난 킬링필드로 유명한 프놈펜으로 가기 전에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으로 가기로 했다. 수 백 년 동안 이어진 문명과 그 안에 살던 이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없는 그곳 역시 인생과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딱 좋은 곳일지 모르는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 백 년간 잊혀 있던 사멸한 문명과 또 다른 문명을 사멸시키기 위한 악다구니가 공존하는, 캄보디아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난 정말 철학을 하고 자빠졌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오랜 병원 생활을 피곤해진 나는 비행기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려 나는 나름 공항버스인듯한 차량에 올라 숙소로 향했다. 


제대로 정리가 안된 도로에 비교해서 호텔이나 상점들은 수준이 아주 좋아 보인다. 바깥 배경을 둘러보며 있던 중 공항버스 기사가 손짓을 하며 사람들을 모은다. 기사는 논과 독특한 캄보디아 양식의 집들이 듬성듬성 지어져있는 도로를 달리더니 손님들을 시내 한가운데가 아닌 상당히 외지고 이상한 장소에서 내려준다. 그리고 태국에서 본 사람보다는 얼굴이 더 검게 생긴 툭툭이 기사들이 공항 버스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나와 같이 동승한 외국인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다. 태국에서 인신매매까지 경험한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덩치 큰 외국인들도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역력하다. 마치 캄보디아 사람들이 긴 칼이라도 꺼내 들고 협박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꽤나 유창한 영어로 사람들의 목적지를 물어보고 만약 예약된 곳이 없다면 바가지가 전혀 없는 깨끗한 가격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직접 자기의 툭툭이에 짐도 실어주고 손을 모아 꾸벅꾸벅 인사까지 하며 사람들을 맞는다. 툭툭이 기사들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초행길에 찾아오느라 호텔 예약 등을 하지 않아 자기들이 거래하는 숙소에 안내까지 해줄 양이었나 보다. 인터넷에서 미리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온 나를 만난 툭툭이 기사는 그래도 별로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게스트하우스 입구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툭툭이를 타고 처음으로 나온 씨엠립 거리는 마치 진도 6의 지진을 경험하는 듯 심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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