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는 상당히 호사스러웠다. 내가 지불한 가격대에 비해서 수준도 아주 높아 보였고 종업원들의 친절함도 눈에 들어온다. 웰컴드링크를 가져다주는 종업원의 손에서 정말로 손님을 공경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달콤한 맛에 피곤함이 싹 풀리는 듯하다.
곧 죽으려는 사람치곤 너무 호사를 누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슬쩍 걱정이 된다. 그러한들 내가 자살을 하려는지 어떤지 다른 사람들이 내 속을 들어다 볼 수는 없는 터이니 무슨 생각을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나름 기분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서 툭툭이 하나를 임대했다. 태국에서의 경험이 생각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핏 겁이 나긴 했지만 그 넓은 거리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보단 그게 더 나으리라 싶었다. 만약 툭툭 기사가 불손한 의도를 가진 이라면 이번엔 확실하게 내 숨통을 끊어주겠지.
이틀 동안 내 안내를 맡아줄 툭툭 기사의 이름은 사렛, 올해 28세, 태국 국경도시인 코콩에서 출생했다는 그 친구는 영어선생 출신이라 그런지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하지만 평균 월급이 고작 몇 십 불에 불과한 캄보디아에서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툭툭이 운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나와 여행하는 동안 앙코르 와트가 아닌 캄보디아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차근차근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런 뛰어난 재주가 있으면서도 고작 툭툭이 기사로 밖에 일할 수 없는 캄보디아의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그는 현재 4년 내로 자신의 툭툭이를 마련해서 돈을 모은 후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꿈이다. 현재 여러 모로 상황이 어렵지만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나중에 스페인어 앙코르 와트 가이드가 되는 것이 목표란다.
이번 툭툭이 기사에게는 내가 특히 죽으러 왔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영어를 잘하는 만큼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기도 했지만 왠지 이번에는 자꾸만 말을 아끼고만 싶어 진다. 우선 앙코르와트의 웅장한 풍경이 나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번 앙코르 와트 여행의 핵심은 배고픔과 피곤함과의 싸움이다.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와 거대한 앙코르 톰의 건물들 사이를 인디아나존스처럼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때쯤 되어오자 온몸에 힘이 쪽 빠진다. 그 이야기를 하니 사렛이 자기와 거래하고 있는 듯한 식당으로 데려다준다. 내 앞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하는 아이가 몹시 신경 쓰인다.
앙코르 유적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감동적이다. 앙코르와트, 앙코르톰, 바이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든 유물을 사이를 헤매다 보면 내 영혼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수많은 조각상 중을 하나로 변해버릴 것 같다.
앙코르 유적은 한마디로 거대한 그림책이다. 그 그림책을 열어서 한 자 한 자 읽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각자 다른 감동을 받는다.
나는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없이 그냥 앙코르와트를 떠돌아다닌다. 무지함을 벗하며 고대 사원과 고대 도서관을 돌아다니던 나는 그저 무너진 돌들 사이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고대의 신화와 이야기가 숨어있었고 잊힌 사람들의 기억, 선한 이들과 악한 이들이 벌이는 전투에서 과연 나는 어느 편에 서있는지, 설사 악한 이들의 편에 서있다 하더라도 그 선함과 악함의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우주적 관점에 볼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누리는 것과 자기 손으로 아름답게 끝내고 싶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한때는 성스러웠으나 이데올로기의 이유로 목이 잘려나간 석상들에게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깟 돌상의 목을 잘라내는 것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데 어떤 가치가 있던 것인지.
이름 없는 건물 한 구석 돌무더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살펴본다. 하늘이 정사각형 안에 갇혀있는 신기한 곳이다. 하늘을 둘러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군다. 코피가 땅으로 떨어진다. 코피를 닦을 손수건이나 휴지가 없다. 어쩔 수 없는 난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코피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완전히 잊힌 공간에서 코피를 흘리고 있는 내가 순간 무척 가여워진다. 돌과 하늘과 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돌들은 무정하게 나를 안아주고 있을 뿐이고 하늘은 코피를 흘리며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높은 곳에서 처연하게 바라볼 뿐이다. 아마 앙코르와트 역시 그랬으리라. 앙코르와트의 영웅담을 전해주고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깎아낸 듯한 그 조각들도 무정한 얼굴로 시간을 바라보았으리라. 코피와 견줄 수 있는 수많은 피의 학살과 숙청이 온 나라에서 일어날 때도 하늘은 그들은 처연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앙코르와트가 나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난 울음이 터져 나온다. 코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 않고 난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코피와 눈물을 동시에 흘리며 펑펑 소리 나게 울고 있다. 내 울음이 터져 나오는지는 나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운 후에 다시 앞을 본다. 관광객 몇 명이 이상한 모습을 하고 지나간다. 코피와 눈물들은 손으로 대충 닦아내었지만 얼굴과 손과 티셔츠는 피범벅이다. 나를 본 툭툭이 기사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물티슈를 건네주며 말한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내가 대답한다.
"괜찮아요. 코피가 났고 그냥 울었어요."
그는 의외로 내가 이해가 간다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그곳에 가니 나무가 사원을 휘감고 있다. 나무에 휘감긴 사원은 점차 부서져서 돌무더기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나무 역시 그 사원이 무너지면 뿌리를 지탱하지 못해 죽을 것이 뻔하다. 왜 그 나무는 그 사원에 뿌리를 내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저 모습 그대로 설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굶고 강해 보이는 나무를 휘감은 뿌리는 대동맥처럼 보인다. 그 대동맥에서 빠져나온 다른 힘줄과 혈관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심장을 끌어안고 있다. 그러나 대동맥도 혈관과 힘줄들도 심장이 멈추고 나면 모두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말 것 것이다. 나무도 사원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원 위에 내려앉은 작은 나무의 종자는 기생충처럼 나무를 감싸 안으며 자랐지만 종국에는 어떤 것이 사원이며 어떤 것이 나무인지 헤아릴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해 나간ㄱ다.
이건 진귀한 풍경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나무와 사원이 같이 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정글만이 줄 수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내 인생에서 나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심장인가, 아니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는 아닌가. 내가 끌어안고 있는 또 다른 근원적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유능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작 기생충처럼 자라고 있는 나무인 주제에 내가 진짜 나인 양 속으며 속이며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나무라면, 내가 죽는다면, 또 다른 나 역시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