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거리도 조금 더 다양한 차들로 채워지길!
지난 6월 약 2주 간 크로아티아를 자동차로 여행했습니다.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하는 나라의 교통 환경과 자동차들을 관찰하는 것은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재미입니다.
도심의 형성 과정이나 주요 교통 수단, 도로의 구성 등은 자동차 문화 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각종 배경들을 자동차 문화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유럽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올드카를 보는 즐거움입니다. 유럽은 비록 올드카의 천국으로 유명한 쿠바만큼은 아니지만 평균 차령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편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올드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가 2017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EU에서 운용되는 승용차의 평균 차령은 10.7년입니다. 특히 비교적 경제력이 떨어지는 동유럽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의 평균 차령은 16~17년에 달합니다.
이는 한국의 평균 차령이 2015년 기준 7.5년으로 조사된 것(보험연구원)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한국보다는 비교적 쉽게 오래된 차량들을 도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도 흥미로운 올드카들을 여러 대를 발견해서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차를 아시나요? 혹은 기억하시나요?
공교롭게도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올드카의 대부분이 해치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 해치백이 좁은 골목이 많고, 차에 다양한 짐을 적재할 경우가 많은 유럽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량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바겐, 푸조, 르노, 세아트, 스코다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차량들이 연식에 관계없이 다양하게 보였으며, 놀랍게도 오래된 현대,기아,대우 차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폭스바겐 폴로 2세대 전기형 (1981~1990)
두브로브니크 성벽 외곽 주차장에서 폴로 2세대를 발견했습니다. 사실 폴로인지 골프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차량 사이즈로 봐서 폴로로 짐작했습니다.
외관상으로 폴로 2세대의 전기형으로 보이는 데 폴로 2세대는 1990년에 페이스리프트 되었으므로 해당 차량은 최소 30년 가까이 된 차량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별 문제 없이 실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별히 리스토어나 관리를 받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여전히 실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독일의 수준 높은 기술력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푸조 106 전기형 (1991~1996)
한적한 휴양지인 브라치 섬의 항구에서 발견한 푸조 106입니다. 푸조의 엔트리카였던 푸조 106은 “City Car”로서 유럽에서 인기있었던 모델로 르노의 트윙고와 주로 경쟁했던 모델입니다. 번호판이 스플리트 지역의 번호판인 걸로 보아 여행 온 차량이 아닌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차량으로 보였습니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푸조 106의 디자인은 아드리아해와 인접한 항구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습니다.
푸조의 엔트리카 계보는 이후 107을 거쳐 108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스타바 (유고) 코랄 (YUGO KORAL)
한적한 바닷가가 인상적이었던 프리모슈텐에서 만난 자스타바의 구형 코랄입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브랜드인 자스타바는 유고슬라비아 군에 납품할 트럭을 생산하던 업체로 피아트와의 제휴를 통해 승용차 생산에도 뛰어들었던 회사입니다. 코랄은 자스타바에서 만든 차량 중 가장 유명한 차량으로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유고(YUGO)” 브랜드로 판매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다가 독립한 국가이기 때문에 유고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고” 브랜드에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자스타바는 1990년 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부품 수급과 퀄리티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몰락해갔고 1999년에는 코소보 전쟁으로 인해 공장이 폭격당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스타바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차량을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제 자스타바 차량은 과거 자스타바의 본거지였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던 지역이 아니고서는 쉽게 볼 수 없습니다.
기아 프라이드 1세대 (1987~2000) & 현대 엑셀 (1989~1994)
크로아티아의 항구 도시 스플리트 외곽에서 만난 프라이드 1세대 입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현대 투싼, 기아 씨드 등 한국 차량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의외로 한국 올드카도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 올드카를 발견하기 쉬웠습니다. 1세대 프라이드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모시던 차량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특히 더 반가웠습니다.
기아 프라이드 1세대는 포드, 마쓰다와 합작해서 만든 차량으로 외국에서는 주로 포드나 마쓰다의 이름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크로아티아에서 “기아” 프라이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프라이드 1세대가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기아 프라이드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현대 엑셀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 엑셀은 포니-포니2-포니엑셀-엑셀로 이어지는 현대의 소형차 라인업으로 차명의 지속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계속해서 포니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습니다.
현대와 기아의 유럽 도전 역사는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위의 차량들이 등장한 80년 대 후반~90년 대 초반부터 유럽 시장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과거 국산 자동차의 내구성은 지금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엑셀과 프라이드가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이 차량들이 품질 면에서도 기존의 국산차들과는 한층 더 발전된 차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랜 도전을 거쳐 현대기아차는 현재는 유럽 어디서든 씨드, 스포티지, 투싼, i30 등의 차량을 쉽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유럽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자동차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자동차를 통해 다양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올드카들이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며 느낀 것 외에도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차를 보는 즐거움, 생각지 못한 국산차를 낯선 이국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등 다양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럽의 도로에는 차량의 종류가 참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차량부터 최신의 차량까지, 세단/해치백/밴/SUV 등 다양한 차종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높은 품질의 차량을 생산해왔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자동차 문화를 발달시켜온 덕분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도로는 급격한 모터라이제이션으로 인해 빠른 차량 교체 주기와 세단 위주의 시장 형성으로 인해 다소 획일화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도로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이 더욱 발달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