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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Oct 22. 2023

정체성

   

요즘은 날씨가 딱 좋아서 점심을 먹고 종종 혼자 산책을 하고는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걷고는 하는데,

이 날은 인근의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신기하게 생긴 놀이터를 우연히 마주쳤다.


이 놀이터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바로 "와 우리 ㅇㅇ이랑 같이 왔으면 참 좋아했겠다"였다.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을 과연 했을까?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놀이터는 기억에 전혀 남지 않을 풍경 속 일부분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 그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는 "김진석", "아들", "누구의 친구", "어디 직원", "어디 출신" 등등의 정체성 외에 "ㅇㅇ이 아빠"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은 것 같다는 새삼스러운 자각이었다.


다른 대부분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내 청춘의 시간들은 대부분이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버둥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내가 겪었던 것은 상시적인 불안감과 과거의 내가 가졌던 기대 및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우울감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지나친 연민을 가지기도 했고 그런 기분에 취해있기도 했다.


그런데 "ㅇㅇ이 아빠"라는 정체성은 나에겐 완전 새로운 개념인 것 같다. 그런 생각들보다 "ㅇㅇ이"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 있다는 게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부성애라는 것이 아이가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당연하게 생기는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부성애를 대가 없는 무조건적인 어떠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으며,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가족, 그리고 가족 간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부성애란 그보다는 사랑스러운 어떤 대상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쏟고, 성장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그 무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아이가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그저 건강하기를 바라고, 아이가 생명체에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함께 겪으면서 자라나는 끈끈한 무언가가 부성애가 아닐까 싶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식을 자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나게 된다면 이런 종류의 감정이 들까 싶기도 하다.


깊게 생각해 보면 여전히 나에게는 내가 제일 중요한 건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연하지 않게 생각해 본다는 것, 그리고 "나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 내가 만든 가족의 깊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난 것뿐만 아니라 내 기존의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준 것도 분명한 것 같다. 인생의 다른 많은 과정들이 그렇듯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변화를 겪고 느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 공교롭게 이 글을 쓴 다음날 바로 아침에 어린이집 보내면서 하도 말썽을 피우고 고집피우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다. 이것또한 우리가 겪는 과정이겠지.. 다음부터는 더 사랑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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