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점없는 규제가 만드는 비극
2024년 출범한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16,469건이고
이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1,083건입니다.
(2026년 2월 15일 기준)
평균적으로 매일 1개 이상의 법안이 통과되고 있는 셈이며,
이 중 30~40%가 “규제”라고 하니 대략 3일에 1번씩은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절차가 아닙니다.
입법 절차는 제도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상임위원회 심사, 법제사법위원회 검토, 본회의 의결,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및 공포까지의 과정은 모두 공개적으로 운영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는 민주적 통제와 숙의의 산물입니다.
진짜 문제는 형식적 정당성이 아니라 규제를 만들어내는 보상 구조입니다.
이상과는 다르게,
상당수의 규제들이 대중의 주목과 관심을 못받고 국회의원들 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해당 규제에 이니셔티브를 가진 소수 의원들의 강한 드라이브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보상은 표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산업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정치적으로 보상받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세상에는 이슈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해단체들의 응집된 요구는 선명하고 보상은 즉각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규제들은 단순히 이해관계자 집단이 가져온 ‘정제된 논리’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아이돌의 매출에 머글들보다는 기꺼이 굿즈를 사는 코어가 더 영향력이 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명확한 메시지를 선호합니다.
“가격을 낮추겠다”, “보호하겠다”, “공정경쟁을 만들겠다”는 구호는 직관적입니다.
그러나 산업은 고차 방정식입니다.
단선적인 규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압력을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킵니다.
그로인해 선의로 시작하였어도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를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단통법이 그랬고, 도서 정가제가 그랬고,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규제가 그랬습니다.
규제는 한번 만들어지면 그 즉시 강한 관성을 발휘합니다.
이해관계자는 규제의 수혜자가 되고, 행정부는 즉시 망치를 들고 해당 규제를 집행하는 구조로 재편됩니다.
망치를 든 행정부에게 시장의 역동성은 불안요소이자 박아야 할 '못'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돌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산업이 망가져도 말이죠.
그래도 누구도 책임은 지지않고 반성도 잘 하지 않습니다.
특정 규제 법안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개별 규제가 아니라, 그 산업을 어떤 방향으로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지속적 실행의 부재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규제의 ‘양’이 아니라 전략의 ‘부재’입니다.
시장은 규제보다는 전략과 비전이 없어서 불안합니다.
진정으로 어떠한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당 산업이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향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권 보호가 아니라
생산성, 혁신, 소비자 선택권, 글로벌 경쟁력으로 측정 가능한 총후생의 확대입니다.
장기적 비전과 이에 대한 책임감이 동반되는 규제는 전략의 일부분입니다.
반면 지향점 없는 규제는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경쟁력을 잃은 산업은 더 많은 규제를 낳습니다.
또한 동시에 인센티브도 필요합니다.
패널티만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이런 지향점은 누가 만들어야할까요?
안타깝지만 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설계된 규제는 휴먼에러가 아니라 구조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보상 구조는 이상만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산업의 성장과 발전의 혜택은 생태계 종사자들이 직접적으로 누립니다.
그러니 저는 산업 생태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관계자와 정치적 구조를 상수로 두고 미래를 가꿔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쪽이 주도권을 가질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런 글로벌 산업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는 시기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따라서 산업 생태계에서 애정을 가지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합니다.
산업이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성장과 관계 없이 자원은 가장 시끄러운 이해관계자에게 먼저 배분됩니다.
그 결과는 혁신이 리스크가 되고, 성장이 아닌 정체라는 점은
지난 여러 사건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