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 그들이 당당한 세상을 바라며
최근 성범죄를 당한 부사관이 2차 가해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며 상당한 사회적 충격을 줬다. 군대와 같이 엄격한 위계질서를 지닌 조직 내의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적인 실태다.
이는 군대 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더라도 교수와 조교, 교수와 학생이라는 지위의 차이로 인해 권력 구조상 약자인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했지만 피해자는 학교나 학계에서의 추방을 시작으로 일반적인 사회생활조차 하기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군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피해자들의 눈물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분노를 쉽게 삼키기 어렵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법적 권리를 행사해 가해자의 범죄 사실을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가해자가 온당한 처벌을 받게 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피해자들에게는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다른 길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권력형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대학 내 성범죄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피해를 입었을 때 피해자는 어떠한 대처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대학교 박사과정 조교인 피해자는 자신의 지도교수인 가해자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대학 내 성폭력대책위원회를 통한 사실 확인 및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으나 성폭력대책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피해자는 수차례 이를 다시 요청했다. 그러자 대학에서는 성폭력대책위원회를 열었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 이행에 불과했고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며 가해자와의 합의를 종용했다. 또한 해당 사안에 대하여 공론화하면 피해자가 학계에서 활동하는데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는 더 이상 대학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 우선, 피해자는 수사 기관인 경찰에 형사 고소를 해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법적 대응을 해야 할 상대방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형사 고소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경찰 조사에서 사실 그대로를 명확히 진술해야 한다. 앞선 칼럼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법원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피해 진술 이외에 다른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①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②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그 자체로서 모순되지 않으며, ③피해자가 가해자를 무고할 이유가 없는 경우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가해자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는 자신의 진술 외에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경찰에 제출해야 한다. 자신의 진술 외 가해자의 사과 등 다른 증거가 있다면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법적 대응에 대하여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연인관계였다고 하거나, 성관계가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거나, 피해자가 징계요구 또는 형사고소를 하였다는 이유로 무고죄로 고소하기도 한다. 물론, 재판을 통해 가해자가 강간죄의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제기한 고소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판결을 기다리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가해자가 무죄판결을 받거나 수사기관으로부터 불기소처분을 받으면 피해자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가해자가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 피해자가 성폭행 사건의 해결만을 기다리며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가해자의 이러한 행위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것은 그러한 방법 중 하나이다.
세 번째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손해배상의 내용은 크게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로 나뉜다.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았다면 그 진료비,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피해자가 지출한 변호사 보수,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법원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강간 피해에 대하여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하여야 할 위자료의 정도를 4000만원 ~ 8000만원 정도로 보고 있다. 일례로 대학 교수가 제자를 강제추행하고 강간한 사안에서 법원은 64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인정했다.
이렇듯 가해자에 대한 대응을 마쳤다면, 피해자는 간접적으로 가해자를 도운 기관이나 내부의 세력들에 대해 대응하여야 한다. 먼저 대학의 교칙에 따라서 성폭력대책위원회가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한다. 성폭력대책위원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피해자는 이에 대해서도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합의를 종용한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에 대해서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음을 근거로 형법상 강요죄로 고소할 수 있다.
이처럼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는 다양한 법률적 대응을 통해 가해자의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가해자가 온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간접적으로 가해자를 돕는 기관이나 내부의 동조세력들에 대해서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이에 대해 대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이 두려워 피해자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불가능하다. 길고 힘든 싸움을 할 용기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필자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칼럼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심어주고, 나아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통해 피해 회복을 하는데 '힘'이 되길 바란다.
* 본 게시글은 필자가 2021. 6. 22. 로톡뉴스 칼럼에 게시한 칼럼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