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뮌헨의 새벽, 가야금 줄을 고르듯 나를 다스리는 시간

by 뮌헨 가얏고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5시 50분에 맞춰둔 알람이 왜 울리지 않지? 고장 난 건가 싶어 시계를 보니,

3시 40분이었다.


다시 자야 하나 싶어 눈을 감았지만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이럴 땐 몸을 일으키는 게 낫다. 억지로 누워 있으면 천장 위로 잡념만 굴러다니기 마련이다.

1층으로 내려와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렸다. 라벤더가 섞인 허브차다. 사실 독일에서는 허브차를 흔하게 마시지만,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새벽에 차를 마시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한동안 운동을 쉬면서 몸의 신진대사가 무뎌졌는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비어있는데 부풀어 있는 느낌.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될 텐데, 이상하게 식탐은 더 늘어갔다.

조금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불렀지만, 입은 멈추지 못했다.

가짜 배고픔이 몸을 지배하자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엔 독소가 쌓였다.


그렇게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엔 독소가 쌓였다.

새벽에 따뜻한 차를 마시니 허기가 기분 좋게 올라왔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잠든 신진대사를 깨워줄 무언가를 찾다 보니 허브차였다.차 포장지에는 요가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라벤더 덕분인지 차오르던 잡념이 가라앉는다.




이 고요한 새벽, 나는 차 한 잔과 함께 작은 의식을 더했다.

지난 토요일 가야금 연주를 마친 뒤, 관객 중 한 사람이 다가와 모노코드(Monochord) 연주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날의 대화를 계기로 처음 알게 된 악기였다.


집에 돌아와 소리를 찾아 들어보니, 현란한 기교 없이 단 하나의 음이 묵직하게 지속될 뿐이었다.

수많은 음을 다스려야 하는 가야금과는 또 다른, 그 단순하고 고요한 울림이 오히려 요동치던 마음을 차분히 내려앉게 했다.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복잡한 생각들을 비워냈다.




잠깐 멍을 때렸다. 그 뒤 독일어 학습 앱으로 하루치 분량을 채우고 소설책을 펼쳤다.

지난여름, 권영석 작가님께 직접 선물 받은 따끈따끈한 『작전명 여우사냥』이다.

작가의 온기가 남아 있는 책장을 넘겼다.


차 마시고 멍 때리고, 독어 공부에 독서까지.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는 충만함이 밀려올 즈음 졸음이 왔다.

늘 그렇듯 15분 알람을 맞추고 잠시 눈을 붙였다.


7시도 안 됐다. 많은 것을 해냈는데도 아직 해도 뜨지 않았다니!

남들이 깨어나기도 전에 나는 나만의 하루를 완성해가고 있고, 하루는 여전히 선물처럼 길게 남아 있다.

내가 새벽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과거의 나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고, 그때는 불면증도 있었다.

불면증이 괴로운 건 잠을 못 자서가 아니다. 잠자리에 들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15년쯤 전부터 삶의 궤도를 바꾸려 애썼다.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동안피부라던 것.

‘하루 8시간 수면, 밤 10시 취침.’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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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밤 10시에 누워도 내 몸은 그 시간을 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눈을 떠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그저 몸이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드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알람 없이도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수면의 질이 잡히자, 어떤 날엔 그보다 더 이르게 눈이 떠지기도 했다.

요즘처럼 뮌헨에서 한국 음악을 알리기 위해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밤 10시를 넘기는 날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밤을 붙잡기보다 새벽을 택한다.

공기는 맑고, 마음은 덜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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