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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트루 Nov 30. 2015

남동생이 나보다 먼저 장가 가던 그날.

누나의 속마음 들여다보기

우리는 연년생으로  자랐다.

둘 다 겨울에 태어나 나는  1월생 남동생 J는  12월...

둘 다 겨울에 태어난 남매


동생이 왔던 날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어두 침침 한, 온통 회색빛의  산부인과가 어렴풋이 떠오를 뿐...  

동생은 그렇게 내 인생에 스며들듯 세상에 왔다. 장녀인 나와 장남? 인 남동생. 우리 둘 뿐인 남매 사이.

자라면서 가끔 부모님이 동생을 가지고 싶지 않냐 물어보실 때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던 것 같다. 정말 남동생 하나만으로 좋았다.


그렇게 20여년을 같이 자란 하나뿐인 내 남동생 J

그가 얼마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것도 나보다 더 먼저.....


 한번도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한살 더 많은 나이를 가졌기에 나 먼저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순서 인줄  알았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하지 않은가.


여차 저차 한 이유로 동생이 먼저 결혼이야기를 꺼내 왔을때  우리 가족은 모두 내 마음 부터 걱정하는 눈치였다. 행여, 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순서를 어기고 동생이 먼저 가도 괜찮은지... J도 부모님도 외려 내 눈치를 살폈던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  순서가 어긋나는 순간,누군가는 그 댓가를 치룰 수 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괜찮았다. 산전수전 20대를 지나왔기 때문일까.  진심으로 마음으로도 축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어린 신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고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동생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들 보내는 마음처럼 너무 기뻤고 행복했다. 마냥 어린 줄 만 알았던 J가 가장이 되다니...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하는 J. 나보다 먼저 가정을 꾸리며 앞서가는 J니까 앞으로 말투도 좀 더 신경 써야 겠다는 다짐.


예상했던 일은 J의 결혼식 당일날 일어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동생은 가는데 나는 왜 안가나 하는 내게 쏟아질 주변의 질문과 시선,"넌 언제가니?" 혹은 결혼식장에 나타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 부모님의 지인 분들 "나는 얘 니 결혼식인 줄 알았네" " 워매~아들이 먼저 가나벼" 그리고 이어진 질문.. "넌 언제.. 넌.. 넌... 넌 언제.." 생각했던 것보다 치열하고도 집요한 (내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번에 한 질문이었겠지만 손님을 받는 나는 100번은 넘는 다른 듯 같은 질문에 계속 대답을 해야 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이 땅의 모든 내 나이를 살고 있을 결혼 하지 않은 혹은 아직 계획 없는 삼십 대 여자들만 알 수 있는 고통의 무게랄까. 그저 이런저런 이유로 나이를 먹은 것뿐인데 그리고 가지각색 이유로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것뿐인데 왠지 모를 죄송함을 느껴야 한다는 게 그게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내 우산을 들고 내가 손님들과 인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남자 친구를 바라보며 모든 질문에 의연히 대처해 나갔다. 남자 친구도 없이 늙어간 노처녀는 아니라는 안도감. 그러나 이 안도감마저도 <결혼>이라는 종착역에 닿지 않으면 곧 사라질 신기루 일 수 있다.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대 비혼 처녀들의 암묵적 무게감이다.



J는 그렇게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대학원 기말고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이제 이번 주 주말이면 멕시코 칸쿤으로 꿈같은 신혼여행을 떠날 것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편한 점이 생각보다 많다. 간접적으로 결혼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가족의 결혼이 아니면 간접 경험은 쉽지 않다) 내 결혼식에 대해 머릿속에서 간결히 정리가 된다는 점. 그리고 어떻게 준비했는지 J의 허심탄회한 조언을 바탕으로 훗날 나의 결혼을 준비할 수 있게 된 점 등.. 실과 이득을 따질 사이는 절대 아니라지만 여하튼 내 입장에서는 이득이 더 많았다.


동생을 먼저 시집 장가보내는 이 땅의 모든 언니 누나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그날 결코 초라해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 다행히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연예인 메이크업을 담당할 정도로 실력파라 그 친구에게 부탁해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았다. 신부 쪽 연계로 진행하면 훨씬 저렴하게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정말 예뻐 보이고 싶었고 더욱 당당히 J와 부모님 옆을 지키며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 날의 투자로 나는 <자신감>을 산 결과였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그러나 나는 지금 내 나이를 이 순간을 사랑한다.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던 20대를 지나왔기에 무수한 불안감으로 채워진 젊었던 그 시절이 내겐 썩 돌아가고 싶은 날들은 아니다. 10대 시절이면 또 모를까.


아무리 피곤해도 꼭 세수는 하고 잠이 들어야 하고 미백보다는 안티에이징에 신경 쓰는 나이라지만 는 지금의 내 나이가 참 좋다. 가벼운 젊음보다 조금은 무거운 30대가... 세월을 견뎌온 만큼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여유롭게 모든 일을 대처하는 내 나이가. 매일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고 주말은 어떤 그림으로 채워 갈까 누굴 만나야 하나 고민하는 나 자신만 오롯이 생각해도 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결혼>과 동시에 입장이 바뀌면 나보다는 남편을 아이를 생각해야 될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집중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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