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트루 Feb 29. 2016

구조조정으로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칼바람이 분다. 내 마음도 차다.

한 번도 상상해 본적도 없었다. 면접을 볼때만 해도 회사가 그저 어려운 정도겠지 싶었다. 이제 출근 4주째 고작 18일이 지났을 뿐인데.. 나보다 오일 늦게 출근한 나름 입사 동기 유대리는 오늘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유상증자...


한달치 월급을 전부 주식으로 주겠다는 회사의 결정이 있은지 불과 5일여 만에 그는 마음을 접고 회사을 나갔다. 회생 불가능한 이 곳에 한시라도 머무는 것이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했다. 그렇게 그는 가타부타 인사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메신저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 받은 적도 없으나 가장 최근 입사자인 동병상련에 아주 가끔 메신저로 회사 이야길 나누었다. 두산 인프라코어에 일어난 일이 내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이곳에 온제 이제 겨우 4주째 아닌가


회사의 경영난에 따른 유상증자와 월급삭감 내용이 발표된 이후 그 좋던 팀 분위기도 회사 분위기도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 12월은 100프로 1월은 50프로를 코스닥 상장도 되지 않은 주식을 준단다. 난 여기 11월마지막날 출근했고 그 하루치 월급만 받았을 뿐인데... 현금을 만지려면 무려 2개월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니...


'매월 40만원 가량의 월세와 공과금은..생활비는? '

전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이 있었지.. 그래 이걸로 버텨야 하나?'


연봉 계약서의 싸인이 마르기도 전에 삭감이라...

그 맛있던 점심도 무료 제공이 이번달 말 까지란다.

그래,그런건 아무렴 좋다. 회사가 장기적인 비전만 있다면 말이다. 주부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를

홍보하는것, 그것 하나보고 이곳을 선택했다. 팀 분위기도 팀 사람들도 좋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일이..업무가 재미있다는것.


이제 겨우 4주차 접어든 내가 무얼 알겠냐만은 출근 첫 주에 포토행사를 준비하고 미디어 라운딩으로 20곳 넘는 언론사를 돌았다. 연합뉴스TV방송을 촬영 지원했으며 플라자호텔에서 진행된 포토행사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게 불과 2주동안 벌어진 일이라면 3주째에 소집된 전체 회의에서 유상증자 이야기가 나왔고 바로 어제 어떻게 실질적으로 임금지불을 진행할지 또 한번의 전직원 회의가 진행된 것이다.


산전수전공중전


정말 여러 일들을 겪고 왔다지만 급히 전 회사를 정리하고 이 곳에 왔는데 현실이 가혹하다. 이 정도의 재무상태 였다면 직원을 새로 뽑지 않는 것이 옳다. 더군다나 나는 이 곳에 헤드헌터의 소개로 합류 했다.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아무리 이득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한)그녀의 소개라 했었도 궁극적으로 선택은 내 몫이였다.


그러나 피고용인은 늘 불리할 수 밖에는 없다. 회사가 공개한 혹은 언론에 의해 공개 당한 정보에만 의지할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정보가 제한된 환경 속에서의 선택은 당연히 합리적일 수 없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속상함을 느껴봤자 그 또한 내 손해일 뿐, 그래도 회사 속에 있으니 그 전쟁터 한 가운데서 알아서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금 선택해 나가면 되는 거니까...그리고 내가 믿는 유일신 하나님은 내 삶에 깊이 관여하시고 돌아보시니 두려움은 없다.


2년전 실업급여를 받았던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도 돈이였지만 소속감이였다. 매일 아침 걸음을 옮길 곳이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회사에 일에 묶여 신음할땐 미처 몰랐었다. 같은 목적을 위해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도 그 시절을 통해 배웠다. 아메리카노 한잔 사먹기가 미안해지던 기약 없던 백수시절은 나의 교만함을 꺾어버렸다.


한 때, 한 시절, 소위 세상적인 이야기로 잘나가던 시절..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그러나 정점이 있다면 당연히 내리막길도 존재하는 법. 올라가는 것은 참 어렵지만 내려오는 것은 한 순간이기에...지금 이곳에서 반드시 내게 주어진 <사명>이 있으리라 믿는다.

 


회사에서 확정이 났다. 2개월 급여 50프로 삭감, 그러나 그 삭감 부문에 대해서는 유상증자 실시! 내 월급의 반으로 2개월간 회사의 우리사주를 산다고 보면 된단다. 그 이후는 10% 삭감... 3개월에서 2개월에 줄었다는 것에 마음을 쓸어내려 보지만.. 과연 이 회사가 미래가 있을까. 란 생각도 든다. 이 정도의 브랜드 파워와 가치를 구축하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뿌렸을 눈물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오래도록  꼭 지켜내고 싶은 브랜드이기도 하다. 우리 마케팅실은 월요일까지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퇴직 앞에 붙는 저 <희망>이라는 두 글자.


과연 <희망>을 붙힐 수있는 퇴직일까?


누구는 이 곳에서 미래를 꿈꾸며 가정을 돌보고 누구는 빠듯한 살림에 대출금을 갚느라 바쁠것이고 각자의 사정이 너무 다 달라 회사회생을 위한 급여 삭감 정책은 춥고 잔인했다. 누구를 위한 희생인지... 꽃피는 춘삼월이 오기 전 회사가 다시 정상화 되길 기대해 본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그 브랜드가 전 국민이 사랑하고 애용하는 브랜드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한번 뛰어 보련다!


----------------------

위의 글은 2015년 12월 말 쯤 쓴 글이다.


그 이후 2개월이 흐른 지금, 회사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고 지난 주 목요일 구조조정이 단행되어 오늘 같은 팀 동료 5명을 떠나 보내야 했다. 각 본부 별로 내려온 인원 삭감. 그중에서도 <마케팅> 본부는 직접적으로 수익을 내는 직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50%인원 감축 할당량이 제시된 것이다.


이제 3개월째 .. 브랜드가 좋아 이 곳을 선택했고 50프로 삭감된 월급을 받으면서도 2개월여를 버텼는데 이번 구조조정은 내게 더할나위 없는 쓰디쓴 경험이였다.  몇 년을 이 곳에 몸 담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현장을 목도하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개월, 그 시간동안 우리는 함께 불안에 떨었고 서로를 위로 했으며 다시금 회사를 살려보자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었다. 월급 삭감의 고통을 함께 분담하며 힘든 시기를 함께 걸어온  동료들이기에 그간 정도 많이 들었나보다. 이직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배타적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외려 이런 상황을 미안해 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였으니..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들의 가는 길을 배웅하는 것 밖에는...




작가의 이전글 남동생이 나보다 먼저 장가 가던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