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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트루 Aug 08. 2016

커리어우먼에게 쉼이 필요한 순간

일상의 권태 극복하기 

제나 내 인생에는 목표가 존재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원하는 과에 들어가기 위해 어찌됐든 대학을 가기 위한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한 준비의 나날들이였다. 잠을 줄여가며 시험도 보고 영어공부도 하고 언젠가 그 누가 되어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가난한 학생이였지만 생기발랄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홍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면서도 내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었었다. 언젠가 대리를 달고 과장을 달고 높아지는 직급만큼 내 실력도 날개를 달고 날아 오를꺼라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 비상계단에서 숱하게 눈물을 뿌리며 새벽까지 고된 업무를 이어가면서도 맡겨진 일을 해냈을땐 정말이지 기뻤다. 성취감에 도취됐고 그런 순간에 내 옆을 지켜주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내 노력이 꼭 빛을 발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었다. 그랬었었다.


어느 기업의 홍보팀 팀장이 되는것. PR을 업으로 시작한 이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 였다. 어느 기업이든 홍보팀은 존재하지만 TO 는 작고 홍보대행사는 많다. 그만큼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단 얘기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흘러 팀장급이 되었다. 치열히 살아온 20대에 대한 보상이랄까. 처음엔 정말이지 뛸듯이 기뻤다. 대한민국이 다 아는 브랜드를 PR 하는일,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부 도맡아 진행하는 커리어를 쌓게 된다는 것.

아무나 경험 못하 축복의 순간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런데 내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분명 이 자리에 오려고 무던히 애썼던 나날들이였는데....<행복> 하지가 않았다. <목표>를 잃어버린 채 기우뚱.. 난파된 배 처럼 내 마음도 둥둥... 왜 이렇게 우울한건지.. 목표 설정이 잘못됐던 걸까?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 했다. 물론 이직과 동시에 불어 닥친 회사의 암울한 그림자 때문일 수 도 있다지만 원래 난 그렇게까지 <돈>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목표>를 잃어버렸다는것.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곳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는다면 그 다음엔 또 다른 회사와 도전의 기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만 같았다. 무얼 위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허무함이 구름 처럼 밀려들어왔다. 내 마음은 이내 무기력함으로 가득 찼고 그 무기력함을 견딜 수 없어 가끔 자기 전에 당연하듯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곤 했다.


하고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주어진 업무는 물론 열심히 한다지만 다른 일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랄까? 사소한 일들에도 기뻐했던 내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 좋아하던 문화생활을 해도 그저 그랬다. 이래서 뭘 어쩌라고?  영어는 해서 뭐하며 바이올린은 배워서 뭐하냐며... 이렇게 살아가는게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 문득 큰 깨달음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엄청난 착각속에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 갇혀 아둥바둥 살아 왔구나 라는 생각. 보여지는 기준에만 맞추어 나도 모르게 원인과 결과의 삶을 살아왔다는걸 말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일까.  바닥까지 소진될때까지 청춘의 모든 열정을 일에 쏟아 부으며 살았다. 끈임없이 내 자신을 채찍질 해가며 밤 11시가 넘는 시각 클라이언트에게 보고해야할 문서를 만들며 5년뒤쯤은 꼭 무어로든 보상 받을 수 있을꺼란 생각에 이 악물고 버텨온 시간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막연한 꿈에 다다르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다. 그렇게 일로 점철된 내 20대를 보내며 방향성이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30대를 맞이한 것이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한구절이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것 현재는 슬픈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지난 과거를 부정하진 않겠다. 20대의 달고 쓴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고 눈부신 청춘이었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였니까. 미디어는 돈이든 명예든 성공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세상에서  <프로>가 되야지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행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방향성 없이 그저 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인생을 마치 성공을 목전에 앞둔 진짜 인생인 마냥 포장한 경우도  많다. 내노라 하는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인사들을 살펴보면 <명성>을 가진 그들이 과연 진짜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있어 <명성>은 생의 전부인것을..

순간의 실수로 <명성>이 사라져 버린다면 평생 명성만을 쫓아 살아온 그들의 삶은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결국 <명성>도 영속성은 없다는 얘기다. 세월의 흐름과 동시에 언젠가는 전부 다 썪어 없어질 것들에 집착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이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기준들 때문에 비교와 열등감에 시달려 가며 소중한 내 인생을 시간을 잠식당하고 싶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


앓던 이가 쑥 하고 빠진것 같이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내 마음은 다시 평화를 맞이 했다.

전도사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남동생은 내게  분명한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찾기 위해 모든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는 <성경>읽기를 권했다. 바삐 움직이는 세상에서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면 욕심은

커지기 마련, 내 인생에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 장치가 필요한데 그 장치가 바로 성경 속 메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더디더라도 하루에  몇 줄이든 성경을 읽어 볼 생각이다. 30대 중반에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하루를 알차고 도전적으로 살아봐야지~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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