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젊은 날엔 나의 로망이었고, 제주 생활을 하는 동안엔 꺼지지 않는 열망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 카페의 내용과 형식은 완전히 다르다. 젊은 날 꿈꾸던 카페가 바닷가 전망에 갓 볶은 커피를 내려 달콤한 디저트를 곁들이는 근사한 찻집이었다면, 이번에 열게 된 카페는 중산간 숲 속의 조용한 책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브티를 마시며 죽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죽음카페일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지만,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터부시 하며 살고 있다. 얘기를 꺼내기엔 너무나 슬프고, 무겁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고령화시대를 맞이하여 웰다잉이 웰빙만큼 중요해졌다. 나는나이 50 이후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왔다. 100세 시대 인생이 반으로 꺾이는 시점에서 지난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것만큼 이야기할 사람과 장소가 없어서 답답했다.누운산책방에 제주도 최초로 죽음카페를 열게 된 이유이다.
누운산책방은 조천읍 와산(누운산)리에 있다.
서귀포에서 차로 1시간이 걸리는이곳과 인연이 닿은 것은 우연을 넘어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 사시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인 정현채 교수님은 우리나라 죽음학의 대가로, 내 동생이 너무나 존경하는 대학교 은사님이시다. 나는 7년 전에 서귀포에서<죽음은 벽인가 아니면 문인가>라는 제목의 교수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영국 런던에는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스(Death)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그날 이후죽음카페는내 마음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 후전위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공연장을 찾았다가 제주도에 죽음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선생님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눈 뒤에는 명함을 받아 들었다. 언젠가 제주도에 죽음 박물관이 세워지면 박물관의 한켠에 죽음카페를 만들어서 자원봉사를 하리라 벼르고 별렀다. 그러나결국 부지를 구입하지 못하셨고,나의 꿈은 선생님의 꿈과 함께 무산되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올해 초 누운산책방이 문을 열었다. 여기서대학 후배의 북토크가 열렸는데, 그렇게 달려간 책방은 아주 멀리 바다가내려다보이는 숲 속에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고 한적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유채가 노랗게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책방을운영하시는사모님께 단도직입적으로제안하였다.이곳누운산책방에서 죽음카페를 열자고!!
우리는 바로 의기투합하였다.
준비 위원을 뽑아서 단톡방을 만들고 의견을 조율해 나갔다. 나는 부랴부랴 초대장을 작성하고 플래카드를 도안하였다. 사모님은 초대장을 발송하였고,바로 다음날 인원이마감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폭발적이어서 우리는 크게 고무되었다.인원을 16명에서 20명으로 늘리고 4명씩 5 테이블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멀리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에메랄드빛 함덕 바다가 보이고, 교수님의 집과 책방을 둘러싼 밭에는 샛노란 유채가가득 피어났다. 눈이 부시게 화사한 봄날이다. 누운산에는 교수님 부부를 상징하는 말 한 쌍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누구라도 이 벅찬 풍경을 즐기라고, 나는 벚꽃나무 그늘에 의자를 준비했다.
그림 사이즈가 대폭 커지면서 유채밭에 꽃을 한 송이씩 피우느라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지만, 나는 행복했다.그림을 그리는 내내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