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송가

김백기 감독을 그리워하다

by Lara 유현정


늦가을, 서귀포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제주의 비는 얌전히 오는 법이 없다. 폭풍까지는 아니지만 오늘도 비바람이 세차다. 나의 휑한 가슴에도 찬바람이 분다. 그의 부재가 남긴 쓸쓸함이 서귀포 뒷골목의 젖은 낙엽처럼 나의 가슴 밑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질 줄을 모른다. 이맘때쯤 우리는 늘 축제의 흥겨움을 함께 나누었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추억이 되어버렸다. 제주도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늘 최선을 다했건만, 그에게 제주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토박이 예술인들의 질시와 끼리끼리의 괸당 문화에 상처 받은 자존심은 난 7년간 박한 제주도에 어렵사리 뻗어 내린 리를 송두리째 뽑아내며 의 마음까지 떼어놓기에 충분하였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오늘처럼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난 3월, 그는 영영 제주도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제주에 남아 있었다 한들, 코로나가 판치는 시국에 우리가 그렇게 자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육지에 비하면 그나마 청정지역인 제주도지만, 매주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을 허락받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비행기 자체가 뜨고 내리질 않으니, 국제적인 규모의 축제는 아예 어불성설이다. 이제 그는 고향인 전남 곡성으로 건너가서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며 다시 날개를 펴기 위해 한껏 웅크리고 있다. 나는 그가 제주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기에, 애달프고 서운해도 내 마음을 감추고 그의 귀향을 응원하였다.


제 그가 없는 서귀포 너무 시시하다. 제주도서도 정말 크나 큰 손실일 터인데, 자신의 이권에만 눈이 어두운 현지 예술인과 식견이 부족한 행정관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눈에 박힌 가시가 사라지고 앓던 이가 쏙 빠지듯, 속이 다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자신들의 힘만으론 도저히 제주예술의 품격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달은 후에라야,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며 후회를 하려나?


그가 없는 제주에서 이제 나는 용히 그가 남긴 족적을 더듬어가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송가를 써 내려가기로 작정하였다. 한동안 블로그와 제주 매거진에 올렸던 글, 또 공모전에 출품하였다가 낙방하여 사장된 글들을 다시 구성하여 다듬고, 누락된 것을 추가하며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험예술은 가 '인생 숲 제주'를 만나 느린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을 때, 햇살과 산들바람과 새소리가 되어 나의 영혼을 적시고 생 2막의 환희를 선사하며 흥을 북돋아주던 존재이다.


그런데, 실험예술이 뭔가요?


아직 실험예술이나 행위예술이 뭔지 아리송한 분들께, 그동안 제주에서 실험예술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져 왔는지, 또 제주 변방의 예술이 어떻게 국제적 규모로 확장되며 성장하였는지를, 김백기라는 한 실험예술가의 호흡을 따라가며 소개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실험예술인이 아니며, 실험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소양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실험예술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애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글은 나의 눈높이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소박한 이야기들이다. 나의 제주생활에 가장 진한 향기를 남긴 김백기 감독과 제주 실험예술과의 인연을 더듬어가며, 그동안 고이 간직해온 나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내가 김백기 감독을 처음으로 만난 건 2015년 가을 새섬에서다. 서귀포 시내에 붙어 있던 제주국제실험예술제 포스터가 나를 새섬으로 이끌었다. 그 당시 나는 서귀포에서 제주생활을 시작하며 제주의 자연만으로는 부족한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바램을 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해 준다’는 뜻의 새연교를 건너 새섬 안으로 들어섰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 안쪽으로 문섬이 손에 닿을 듯 바라보이는 곳에 너럭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우연히 새섬에 들른 관광객들도 구경거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바닷바람이 상쾌하게 옷깃을 스치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20여 명의 국내외 예술가들은 멀찍이 의젓하게 서있는 범섬과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배경으로 각자 자신의 위치를 잡고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맨바위에 자리를 잡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너럭바위 무대를 바라보았다.

웃통을 벗고 목에 하얀 스카프를 길게 두른 건장한 남자가 높게 솟은 바위 위에 서서 둥둥 북을 치기 시작하였다. 잠시 뒤 하얀 저고리를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여인이 북소리 위로 소리를 길게 얹었다. 그러자 첼로와 더블 베이스가 그녀의 소리를 다정다감하게 어루만져 주었고, 낭랑하면서도 구성진 가락은 바람결을 따라 아득하게 들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꿈결에서나 얼핏 듣고 볼 수 있을 듯한 소리와 광경에 잠시 몽롱해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럭바위 곳곳에는 오랜 세월 파도가 만들어낸 커다란 구멍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하얗게 부토 분장을 마친 일본의 무용가들이 곳곳에서 웅크린 채 꿈틀거리며 탄생을 기다리는 생명체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태풍 때 밀려 들어와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채, 빗물이 더해지며 만들어낸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었다. 웅덩이는 태초의 거대한 자궁을 연상시켰고, 무용수들의 다양한 몸짓이 어우러지자 버블 쇼의 비눗방울과 함께 생명의 신비와 환희가 가득 피어올랐다.


구름이 짙어지고 바람이 좀 더 강하게 불며 새섬의 억새가 온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하였다. 공연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은 바람을 타고 다 같이 서쪽으로 느리게 이동을 하였다. 억새 사이로 바위를 디디며 천천히 이동을 마친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범섬을 바라보고 앉았다. 사람이 죽으면 서강(西江)을 건넌다고 하는 불교적 설정일까? 그들은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죽음을 관조하는 듯싶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간 인생의 뒷모습이 사뿐히 내려앉은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2015년 새섬, 제주국제실험예술축제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뭐랄까? 그것은 참으로 새롭고, 신비하며, 흥미진진하고, 생명력이 넘치면서 장엄하기까지 하였다. ‘탄생(생명)과 죽음, 바람’이라는 그날의 주제는 동서양의 음악과 무용, 퍼포먼스라는 예술행위를 통해 바람을 타고 서귀포 자연에 녹아들었다. 예술이 박제되어 답답한 공간 안에 가두어져 있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실험예술에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날 새섬에서 국내외 아티스트들 사이를 누비며 그 장엄한 작품을 진두지휘하던 남자가 바로 김백기 감독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천재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힘들고 낯선 길을 그렇게 당당하고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은 경이와 감탄을 넘어 애잔함으로 이어졌다. 그런 사람이 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2017년 6월, 나는 그를 다시 만났다.

그의 존재를 안 지 2년여 만이었다. 그동안 그는 몹시 야위어 건장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의 몸 어딘가가 심각하게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바로 전 해의 '제주국제실험예술축제'가 너무너무 힘들었단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열정을 바쳐 오던 그 일을 다 그만두고 싶어서 축제가 끝나자마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동남아로 떠났을까? 그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간 그의 얼굴은 짙게 어두워지며 다시 고뇌로 얼룩져 있었다. 걱정이 된 나는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하시는 거죠?”

“재밌잖아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대답을 하였다. 먹구름이 드리우며 잔뜩 심각했던 얼굴이 그 순간, 어려운 시험문제의 답을 맞힌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해맑은 표정이 클로즈업되며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한 예술가의 영혼이 세차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대답을 듣고 보니, 나 역시 다른 답은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아, 그렇군요... 정답이네요.”


그는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과 ‘서빳(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의 대표 김백기 감독이다. 실험예술가로서 맞이한 일생일대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제주를 떠났던 그는, 그해 겨울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났다고 한다. 의식주의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을 보고 그는 크게 반성을 하였고, 그들과 비교할 때 훨씬 나은 조건의 자신이 엄살을 부렸다고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왔고,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 있는 '서빳'이란 공간에서 매주 전시와 공연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동시에 해마다 제주국제실험예술제(JIEAF)를 개최하여 제주를 세계에 알리고 실험예술을 전파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락하던 '이중섭 거리'가 그의 행보로 빛을 내기 시작하며 살아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살아 돌아온 서귀포의 이중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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