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서 필연으로

제주 실험예술, 가슴으로 쏟아지는 빗물

by Lara 유현정


새섬에서 스친 이후, 김백기 감독은 인두화처럼 내 마음 깊이 각인되었다. 원하게 밀어버린 머리와 늘씬한 체구, 예리한 눈빛과 자신감이 넘치는 발걸음은 어디서든 존재감을 뿜어내며 쉽게 눈에 띌 법하였다. 실험예술제가 끝나고 나는 그즈음 시작한 블로그에 두 편의 글을 올렸다. 새섬에서의 공연과 이중섭거리의 관광극장에서 이루어진 '시어터 퍼포먼스'에 관한 짧고도 어설픈, 그러나 진심을 담은 소감문이었다. 김백기 감독은 나의 블로그를 타고 들어와 연락처를 남고, 자신과 서빳(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을 소개하며 정중히 방문을 요청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활화산처럼 뜨거워서, 자칫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대학시절 나는 그런 에너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중, 고등학교 6년간 교복에 갇혀있던 나의 열정은 대학 1학년 때 연극반 동아리를 만나 분출되기 시작했다. 뭔가에 꽂히면 앞뒤 재지 않고 빠져드는 못 말리는 습성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3월 초 입학과 동시에 동아리 모집공고를 보고 단숨에 달려간 나는, 신입생 환영파티에서 멋진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서 연극반이 나의 운명임을 직감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대신 동아리실을 찾았고,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보다는 무대 위에 올릴 연극 연습에 매진하며 딴따라가 되어갔다. 밤늦게 연습이 끝나면 단골 술집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였고, 매일 밤 12시 귀가가 일상이었다. 나는 등 푸른 고등어처럼 팔딱팔딱 살아있었고, 내 영혼의 무게는 온통 연극에 실려 있었다.


실 나는 연극 자체보다는 '연극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때만큼 그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난 적은 없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사랑고, 스스로 빛나던 호시절이었다. 그런데 까마득히 잠자고 있던 은 날의 열정이 실험예술 만나 다시 고개를 들며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지만 는 서울에서의 오랜 직장생활로 번 아웃이 된 이후, 제주생활로 겨우 생기를 되찾고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실험예술은 그저 우연히 나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그런 존재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거렸다. 섬에서의 감동으로 밤잠을 설친 나는 다음 날 우산을 챙겨 들고 남편과 함께 이중섭거리로 향했다. 이중섭 거리 중간에 턱 하니 버티고 있는 `관광극장’은 이름만큼이나 낡고 촌스워 흉물스럽기까지 하였다. 그곳은 원래 90년대의 전성기를 누리며 영화를 상영하던 곳이었는데, 화재로 지붕이 날아간 이후 오랜 시간 방치되다가 공연장으로 탈바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우중충한 건물로 들어선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입구에서 실내공간을 거쳐 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멘트 계단으로 만든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며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공간이 나타났다. 실내와 야외가 반반 섞인 무대 위로 잔뜩 흐린 하늘이 내려앉았다. 창문이 떨어져 나간 현무암 담벼락엔 보란 듯이 덩굴식물이 뻗어 올라가며 나의 감성을 툭 건드려 버렸다.


가을비가 보슬거리며 얌전히 내리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우산을 펼쳐 들었지만, 무대는 온전히 비를 맞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아리따운 인 배규자와 카트리나가, 곳의 진입로에서 른손에 비트를 하나씩 들고 우물우물 깨물어 씹으며, 관객석에서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비트의 선홍색 국물이 입술과 턱과 손을 타고 흐르며 뚝뚝 떨어졌다. 길게 걸친 흰 옷의 앞자락이 붉게 물들어갔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모습 괴기스러워 섬칫하면서도, 연이 있는 듯 도 했다. 상의 선녀가 이승에 내려와 살다가, 쩐 일인지 소복을 입고 통곡하며 각혈을 하는 듯했. 대 위에서 그녀들의 머리가 이자, 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관계와 집착 속에서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녀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아리게 나의 폐부를 찔렀다.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는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익숙함에서 탈피한 새로운 예술의 세계 펼쳐갔다. 드문드문 자리를 채운 관객은 우산을 받쳐 들고 앉아, 낯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낯선 공연을 즐기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자리가 불편해진 사람들은 결국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였다. 게다가 독일에서 온 젊은 예술가 한 쌍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퍼포먼스를 이어나가는 도중, 현장에 파견된 관리자가 한바탕 고성을 지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다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글귀를 적은 후 종이배를 접었고, 독일 작가가 그들의 영혼을 배웅하며 라이터로 종이배에 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이 장면에서 관리자가 이를 제지하며 큰소리를 냈던 것이다. 는 다들 숙연해진 순간에 느닷없이 끼어든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어쨌거나 그것은 마지막 공연이었고, 더구나 지붕도 없는 공간에 비까지 굵게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관리책임자라 할지라도, 그건 누가 봐도 예술에 대한 몰이해가 불러온 참사요, 무례한 갑질에 불과했다. 서귀포의 민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민낯이기도 해서 나는 부끄러웠다.


결국 김백기 감독이 나서서 조율했고, 다행히 공연은 무사히 끝마 수 있었다. 박수를 치며 주변을 둘러니, 관객석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공연 관계자 외에 남편과 나, 사람뿐이었다. 텅 빈 객석은 지붕 없는 극장 안 흘러내리는 빗물 질척거리는 내 가슴에 짙은 슬픔의 발자국을 남기고야 말았다. 열연하는 작가들과 노심초사 공연을 지휘하는 감독님, 우비도 없이 행사를 진행하는 스태프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관객이 한둘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부터 어두워지던 내 마음은 공연 도중 언쟁이 붙으면서 울컥하다가, 결국은 참혹하게 참해지고 말았다.



관광극장, 독일 작가의 세월호 퍼포먼스



홍보가 부족했을까? 단지 공연 중에 쏟아지기 시작한 비 때문이었을까? 아님 실험예술이라는 장르가 아직은 너무 낯선 것일까?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의문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서귀포라는 도시를 예술가들은 이리도 사랑하고 모여드는데, 제발 그들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기를, 서귀포 시민의 품 안에서 그들의 영혼이 따뜻하게 로받기를, 과도한 간섭으로 무례함을 쏟내지도 말고, 무관심과 생활고로 그들이 이곳을 떠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헛한 가슴을 부여안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쿵작작쿵작작 흥겨운 왈츠곡이 흘러나왔다. 외국 배우 한쌍이 오래된 축음기를 틀어놓고, 지나던 여행객을 붙들고 거리에서 댄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쁜 빨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 그들을 보자, 비가 그치고 시 태양이 뜬 것처럼 울적했던 마음이 환해졌다. 김백기 감독은 어떻게 비가 내릴 것을 알고, 관객의 가슴으로 흘러내릴 빗물을 닦아낼 장치까지 마련 것일?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사한 미꽃 한 다발을 선사받은 느낌이었다. 득 남미의 어느 먼 도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쯤으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마저 들, 다시 기쁨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같이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들과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모두가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마련한 치밀한 기획,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중섭 거리에서의 댄스 퍼포먼스



이틀간 실험예술제를 만나면서 나는 행복했다. 예술이 삶을 위로하고, 영혼을 충족시키는 힘이 참 크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김백기 감독의 블로그 답글에도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분명 언젠가는 그를 찾아갈 것을 감하고 있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무의식은 그와의 만남을 2년간이나 미루고 있었다. 사이 나는 다른 일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다. 바로 의 숙원사업이던 제주에서의 집 짓기가 모든 에너지와 혼을 쏙 빼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염원으로 공을 쏟음에도 불구하고, 집 짓기는 결국 실패로 끝고 말았다.


허탈해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제주 올레길 돌기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서명숙 씨가 운영하는 <제주올레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동기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확대해 나가던 참이었다. 그때 가까이 지내던 동기 한 분이 지인인 마임이스트 유진규 님이 서빳에 공연을 온다며 함께 가자고 하였다. 서빳은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었는데, 그렇게 고 돌아서 마침내 인연의 끈이 이어지게 되었다. 인연이란 어쩌면 예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의 자석으로 끌어당겨 결국은 이어지고야 마는 것. 그리하여 우연은 인연으로, 또 인연은 필연으로 자리매김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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