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빳에서 처음으로 만난 공연은 심오하면서도 열정적이었다.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도 매주 메이저 공연이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서빳의 작은 무대가 갖는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대중적인 예술보다는 실험예술가들의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젊은 춤꾼 양길호는 열 손가락과 얼굴의 이목구비까지 몸의 모든 근육을 고루 사용하며 '제주의 바람'을 섬세하게 토해냈다. 이어서 ‘빈손’이라는 제목으로 생의 성찰을 담은 유진규 님의 마임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바닥을 구르며 온몸으로 이루어진 열띤 공연은 진하게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작은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혼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구태여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빈손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유진규 님께 꽃다발을 건넸다. 웬 꽃다발이란 말인가? 사실은 콩닥콩닥 서빳으로 첫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 함께 가기로 한 나의 지인은 마임이스트 유진규 님을 위한 꽃다발을 준비하고 싶어 했다. 남동생의 친구라는데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제주에는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던 6월, 수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소박한 수국으로 정성껏 꽃다발을 만들어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그녀는 나의 제안이 그럴듯해 보였는지 바로 의기를 투합했다. 우리는 이동하던 차에서 내려 가로수변의 크고 빛깔이 고운 수국을 여러 송이 꺾어 차에 실었다. 포장은 결국 나의 몫이 되고 말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집에서 제법 그럴싸한 꽃다발을 만들어 갔는데, 꽃다발 증정도 나의 몫이 되었다. 지인인 그녀가 한사코 나를 앞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유진규 님과 일면식은 없었지만, 그의 열연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거절할 일도 아니었다. 뜻밖의 꽃다발을 받아 든 유진규 님은 깜짝 놀라셨지만, 지인을 알아보고 나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연신 수국 향을 맡으려고 고개를 숙이시는 게 아닌가. 나는 아차 싶었다. 수국은 향이 없기 때문이다. 향이 없어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려고 작디작은 자신의 몸집을 가짜 꽃으로 부풀리며 안간힘을 쓴다. 그 화려함에 속아 든 벌이 가짜 꽃 속에 숨어 있는 진짜 꽃을 발견하게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살짝 민망했지만, 그저 수국의 눈물겨운 생존법칙을 어여삐 여겨주길 바랄 뿐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서빳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한쪽에 마련된 긴 탁자 위에는 제주막걸리와 소박한 안주가 준비되었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삥 둘러앉았다. 그날의 공연자는 물론이고 시간이 허락하는 관객도 함께 참여하는 뒤풀이 행사였다. 무대와 객석이 허물어지는 그 멋진 시간, 무대에서 다소 미진했던 소통은 막걸리 파티에서 절정을 이루며 완결되어 갔다. 이렇게 공연이 있는 날은 서귀포의멋쟁이들이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서빳으로 모여들었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그들은 밤늦도록 예술을 논하며 품격 있는 밤을 보냈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최남단의 도시 서귀포에서 사랑방 문화와 살롱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서빳은 서귀포시 이중섭거리를 지척에 두고 매일올레시장 건너편 하나의원 빌딩 지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직 의사였던 건물주가 서귀포의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며 공간을 무료로 임대하고 있는 곳이었다. 건물주의 마음이 담겨있는 따뜻한 공간은 틈틈이 전시도 둘러볼 수 있고, 지나는 길에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으면 언제라도 김백기 감독이 환하게 반기는 곳이었다.또 막걸리 파티 도중에는 안주가 부족하다 싶으면 길 건너 올레시장으로 뛰어가면 될 일이었다. 시장은 순대나 치킨, 떡볶이나 족발을 공수해 올 수 있는 서빳의 주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김백기 감독은 실험예술 감독으로서 2002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의 메카 홍대 거리에서 국제 규모의 실험예술축제를 개최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대규모 자본의 침투로 홍대 주변의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홍대 거리를 떠나면서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서귀포였다. 서귀포의 자연이 그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는 2013년 거주지를 서귀포로 옮긴 이후, 한국 실험예술의 무대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옮겨왔다. 서빳은 제주도문화예술재단의 지원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나는 방문한 첫날 바로 후원회원이 되었고, 다시 다음 공연을 기다렸다.
기타리스트 김광석과 춤꾼 지오의 콜라보 공연
일주일 후 다음 공연이 예정된 날 아침, 나는 고내포구로 달렸다. 올레 아카데미 동기가 인솔하는 올레길 16코스 `함께걷기'에 응원차 동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6월의 태양이 따갑게 내리 꽂히는 애월의 해안길에 이어서 수산봉까지 오르자 올레꾼들은 파김치가 되어갔다.수산리에서 만난 식당은 점심식사도 해결하고 잠시 쉬어가기에도 맞춤한 곳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꿀처럼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나기 직전, 나는 어느새 서빳의 열렬한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숙소가 서귀포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올레가 끝나면 제주시로 넘어가야 할 사람까지 공연 예약 신청이 몰려들었다. 그날 서빳은 우리 팀 덕분에 호황을 맞이했다.
무대는 그날의 메인 김광석의 기타와 춤꾼 지오씨와의 콜라보로 시작되었다. 연주는 점입가경이었다. 선비정신을 구현한 연주곡 <구름 위에서 놀다>는 속세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 노니는 신선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은하수>가 연주되었다. 몽골 여행에서 한여름 밤 별들의 강이 흐르는 은하수를 목격하고 바로 악상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작곡을 하였다는 연주곡이다. 몽골 초원의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어둑어둑 해가 지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별들, 어둠이 찾아와도 불을 켜지 않는 몽골 초원은 반구의 하늘 가득 별들의 세상일 터.
수많은 작은 별들이 속삭이듯 심금을 파고들며 영혼을 두드리는 기타의 선율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두근두근 몰려 들었다. 서빳의 공간에도 하나 둘 떠오르던 별들이 관객들의 가슴을 이어주며 은하수가 되어 흘렀다. 밤하늘과 교감하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소리로 전해 듣고음악으로 구현해내는 김광석의 천재성은,열 가지가 넘는 편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에서도 그대로 발현되었다. 때론 타악으로 때론 섬세한 현으로 변신하는 기타와 혼연일체가 되어무아의 경지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손놀림에관객들은 속수무책으로 매혹되었다. 한 평생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내 득도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서 느껴지는 경외감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은 안대진 시인의 천둥 같은 시낭송으로 끝을 맺었다. 공연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재보다 잿밥이라고 했던가? 서빳 공연의 백미는 역시 막걸리 파티였다. 우리 팀은 막걸리 잔을 비워내며 서귀포 예술의 밤을 즐겼다. 시계는 삼십여 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갔고, 나는 서빳에서 대학 때 연극 공연의 쫑파티 현장을 다시 만났다.
단과대학별로 수개월 연습하며 준비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 끝나면, 총 연극반 단원들이 축하하며 밤새워 술을 마시며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의 피가 뜨거워지며 젊어졌고, 마음도 한층 자유로워졌다. 서빳은 제주에서 집 짓기의 실패로 얻게 된 마음의 병을 어루만져 주었고, 젊은 날의 열정까지 되돌려 주었다. 그리하여 공연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만사 제쳐두고 서빳으로 달려갔다. 가끔 서울을 다녀오느라 서빳을 만나지 못하면 인생이 시들해졌고, 나는 다시 서빳으로 달려가 삶의 활력을 되찾고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서빳은 한 번 발을 들이면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늪이었기에 발을 담그면 담글수록 더욱 행복하고 즐거워졌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누군가가 막걸리 잔을 높이 올리고 선창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