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빳은 늘 기발하다. 이름마저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라니, 우리는 문화와 예술을 배터리처럼 수시로 충전해야만 한단다. 배터리도 빳데리로 경음화시켜 발음까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그리하여 탄생한 애칭이 바로 서빳이다. 여기선 춤도 그냥 댄스가 아니라 '미친(美親) 댄스'다. 단어의 임팩트가 강렬해서 한 번 들으면 머리에 쏙쏙 꽂혀버린다.
어느 날 서빳의 김백기 대표는 우리가 몸을 움직여서 하는 모든 행위가 춤이라고 정의했다. 예쁜 옷을 골라 입는 행위는 미술이요,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듣는 행위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그의 사유는, 예술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기에 생활 속에서 호흡하며 일상에 녹아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폭넓은 예술관은 어쩌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예술을 내 곁으로 가까이 끌어다 놓고, 일상에서 예술을 건져 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걸음걸이나 손동작 하나하나가 다 춤이라는 주장대로, 그는 관객으로만 머물던 서귀포시민이 다 함께 예술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였다. 그 이름하여,
미친(美親) 댄스파티
말 그대로 아름다움과 친해지는 댄스파티다. 사실 모든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서빳이 예술을 하는 공간이니만큼 춤도 놀이도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예술행위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장르가 춤이라고 생각한다. 몸만 있으면사실 어떠한 도구도 필요 없다. 춤이란 행위는 그저 내 안의 감성을 흥이나 슬픔으로 끌어내어 몸짓으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행위는 예술이 되고 美와 한 몸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美와 친해질 것인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름다운 내 몸과 친해지고, 음악과 춤과 친해지며, 막걸리와 친해지고, 이주민과 원주민 때론 여행자도 함께 서로의 벽을 허물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며 친해진다. 관계마저도 미학적으로 발전해 나아간다.
대학시절 연극반 동아리에는 미학과를 다니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미학과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선배는 美란 진리와 선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삶 전반으로 확장되는 美의 해석이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미학은 여전히 아름다움의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니 미적인 대상은 주로 자연이나 예술일 터. 자연과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쁨, 힐링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어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서빳의 미친댄스파티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은 춤과 함께 서빳이 진짜 제대로 美치는 날이다. 참가 방법도 재밌는데, 올레시장의 먹거리를 구입하면 입장료가 무료이다. 이는 김백기 감독이 시장의 활성화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배려에서 마련한 규칙이다. 먼저 손을 내밀며 지역사회와 상생하려는 김백기 감독의 따뜻한 예술철학이 묻어난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올레시장에 들러서 맛있는 안주거리와 자신이 마실 술을 사 가지고 온다. 간혹 음식 솜씨가 좋은 은미 씨가 집에서 잡채나 전을 부쳐오는 날은 파티상이 화려해진다. 요리사인 친구는 아예 서빳의 주방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간 샐러드는 그가 준비해 온 양에(죽순 비슷한 다년초)를 올리자 품격이 업그레이드되었다.
댄스파티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입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입성하여 즐기는 경우도 많다. 사실 예술을 하는데 혼자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끔은 여행 온 젊은 처자들도 방문한다. 나는 친구나 동네 동생과 함께 올레시장의 명물 마늘통닭과 막걸리를 사들고 서빳에 입성한다. 댄스파티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렸다. 살펴보면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반반이었고, 가끔은 뜸했던 소식도 들려왔다. 오랜만에 들른 한 스쿠버다이버는 위미리에 오랜 꿈이던 게스트하우스를 <수심 1m>라는 이름으로 오픈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댄스파티에 디제이가 빠지면 섭섭하다. 처음엔 한동안 영국 유학파 뮤지션인 무아가 가시리에서 출장을 나왔다. 그런데 하필 그가 애호하는 장르가 트로트였다. 나이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트롯이 유행인 걸 보면 시대를 너무 앞섰던 것도 같다. 취향이 다른 우리는 그를 졸라 디스코나 테크노 음악을 틀곤 했다. 그러면 다시 서빳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다음 해엔 남아공 출신의 라바이와 그의 파트너 다나가 디제잉을 했다. 가끔씩 찬조로 밴드가 출연하여 드럼과 젬베, 카온이 흥을 돋우기도 하였다. 아프리카 음악에 테크노가 믹스되고 젬베와 타악이 합쳐지면, 우리는 다 함께 아프리카 사막의 도시 한가운데로 붕 날아올랐다.
김백기 감독의 댄스 퍼포먼스
서빳이 진짜 제대로 美쳤다.
누구든 전문 댄서일 필요는 없었다. 술과 안주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누구라도 먼저 무대로 나가 음악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었다. 어쩌다 프로 춤꾼이 등장하면 그의 솜씨를 부러워하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들 자기만의 방식과 몸짓으로 분위기를 즐기며 美를 창조해 나갔다. 서빳의 한쪽 벽면에 비치된 가면을 쓰기도 하고, 자신이 쓰고 온 모자나 스카프를 나누어 걸치기도 하면서 즐거움도 함께 나누었다. 김백기 감독은 댄스파티의 단골 회원이 데려온 애완견 콩이를 어깨 위에 올리고 춤을 추었다. 기막힌 코디에 낸시랭의 고양이가 울고 갈 판이었다. 무대 위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되었고, 밤이 깊어갈수록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서빳은 나의 제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내 일상에 물레방아처럼 멈추지 않는 즐거움이 스며들었다. 김백기 감독은 어느새 진심을 나누는 베프가 되었고, 나는 매주 새로운 공연으로 충전되었으며, 댄스파티에선 쌓일 것도 없는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렸다. 서빳을 다녀오는 날이면, 서귀포의 밤은 보름달처럼 충만하고 낭만이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