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떨어질 때, 그때

오백장군 갤러리 이미지 퍼포먼스 극

by Lara 유현정


죽음이란?


번데기가 나비로 환생하듯이 우리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죽음학의 대가이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실제로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나비 떼가 춤을 추 하여 영혼을 은유하며 신을 배웅하게 하였고, 자신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은하수로 춤을 추러 갈 것이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여태껏 보고 들어 본 중 눈물 날 정도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 그녀에게 죽음은 치를 벗고 훨훨 날아오르는 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가는 삶의 절정이었다.


나이 50이 되던 해, 는 100세 인생의 내리막 길에서 문득 죽음이 궁금해졌다. 그때 그녀의 책 <인생 수업>과 <사후생>은 죽음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고,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되찾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 "죽음을 연구하는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바로 삶이 중요하다는 이다."조하였다. 결국 웰다잉은 곧 웰빙의 다른 말이었다.





가을 저녁 늦은 시각, 편과 나는 깜깜한 남조로를 달렸다. 성급한 가을 해는 벌써 얼굴을 감추었고, 공기마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월의 거의 마지막 밤이었다. 한 대낮에도 가본 적이 없는 돌문화공원의 인적 없는 주차장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희미한 불빛에 어슴푸레 반사된 공연 포스터를 발견하였다. 화살표를 따라 더듬거리며 장님럼 불안하게 발을 옮 동안 귀곡산장을 찾아가는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다. 불친절한 공연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새초롬해졌다.


겨우 오백장군 갤러리를 찾아가 소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객석은 만석에 가까우만치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진도 찍을 겸 우리는 맨 앞줄 빈자리에 앉았다. 그날은 서빳의 대표 김백기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이미지 퍼포먼스극 <꽃이 떨어질 때, 그때> 올리는 날이었다. 예술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와 배우로서의 김백기도 만날 수 있는 날이었다. 공연은 천재 작가 이상의 난해시 <오감도>와 <거울>을 빌려와 춤과 소리, 타악과 기타 그리고 퍼포먼스로 형상화하며 시종일관 작품 해석을 위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였다.


저 쿠바의 보이스 기예르모가 등장하였다. 기예르모는 서빳의 지난 8월 공연에서도 만나 깊은 울림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무대에서 다시 만나 꿈결 같은 목소리를 듣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천상의 소리와 몸짓으로 존재 이전 태초의 빛과 사랑을 노래하였다. 이어서 춤꾼 이순이 숲 속에서 꿈꾸는 애벌레가 되어 웅크리고 있다가 초록의 기운으로 깨어나 생명을 노래면서 세상은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기예르모와 이순의 퍼포먼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며 낙엽이 떨어지고
진눈깨비까지 내리며 <오감도>가 낭송되었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그렇게 13인의 아해가 두 무섭다며 리는데, 해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정체모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질주한다. 13인의 아해는 서로 무섭기에 더욱 불안해진다.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상황이라 더욱 불안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13인의 아해는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이상의 자화상이자 현대인의 모습일 터. 불안은 점차 관객에게로 전이되었다.

인간의 불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불안의 근원은 불확실성과 무지이다. 불안의 뿌리는 두려움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앞만 바라보며 질주한다. 그 길의 끝엔 죽음이라는 깊고 거대한 심연이 기다리는데, 그 미지의 심오한 영역 앞에서 더욱 두렵고 공포에 질리고 마는 것이다.

죽음은 벽인가, 문인가?


그해 여름 우리나라 죽음학의 대가인 서울의대 정현채 교수가 서귀포를 다녀갔다. 정교수는 죽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2001년도 세계적 의학저널 ‘랜싯’에 등재된 네덜란드 10개 병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환자 344명 중 62명이 체외 이탈과 빛을 보는 등의 근사체험을 했다고 한다. 죽음은 벽이 아니고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문이라고, 이후 많은 의학 논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상기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을 실천하고 산다. 음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직시할 때, 삶은 오히려 충실해진다.



오백장군갤러리 야외무대



이상의 시 <거울>은 이미지 퍼포먼스로 연출되었다. 오백장군 갤러리 극장은 무대 뒤편의 두꺼운 커튼을 열어젖히자 절묘하게도 유리로 된 뒷벽이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 외모가 닮은 두 작가 기예르모와 김백기 감독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쌍을 이루며 거울 연기를 할 때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오. ......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반대요 마는 또 꽤 닮았소." 기예르모는 무대 위에서 거울 밖의 현실적 자아를, 김백기 감독은 야외무대에서 거울 속에 존재하는 내면적 자아를 맡아 두 자아의 분열을 표현하였다.


실내 등이 꺼지고 밖의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야외의 우람한 나무가 유리를 통해 무대 안으로 차경되며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 숨 쉬는 기상천외한 무대장치가 되어 주었다. 그토록 거친 광야에서 김백기 감독의 본질적이며 예술적 자아가 화려하게 총천연색으로 피어났다. 세상은 온통 황홀했다. 하늘에선 축복의 황금비가 마구구 쏟아져 내렸고, 관객들은 환희 속에서 모든 불안을 잊을 수 있었다.


꽃이 떨어질 때, 그때


그러나 곧 절정의 시간이 지나고 자연의 섭리대로

꽃이 떨어질 때가 다가왔다. 꿈도 환희도 불안도 모두 끝이 나고, 육신은 모든 것을 훌훌 벗고 알몸으로 돌아갔다. 김백기 감독은 1/8평 유리상자에 죽음을 담았다. 죽음은 묘하게도 탄생과 닮아 있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었다. 유리상자 위로 팔과 다리가 축 늘어진 그의 육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서 예수의 모습과도 오버랩되었다. 우리가 지상에 남겨두고 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날씨도 쌀쌀하고 스산했는데, 더구나 제주도 중산간 허허벌판으로 불어닥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야외무대 유리상자 물속에서 알몸으로 연기하는 김백기 감독의 예술혼이 돋보였. 실내에서 밖의 야외무대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극장을 공연에 활용한 기지도 놀라웠다. 이 야밤에 굳이 거리가 한참이나 먼 돌문화공원으로 관객을 유인한 감독의 저의가 읽히자, 모든 불편함이 용서가 되었다.


"어느 건물 옥상에서 정오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친다." - 이상, <날개> -


죽음으로써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비상하며 춤추고 노래 퍼포먼스 <꽃이 떨어질 때, 그때>는 삶과 죽음을 사이좋게 이어주었고, 꽃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날 행복한 사색의 시간을 안겨 주었다.



삶의 환희와 죽음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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