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손을 잡고

제16회 제주국제실험예술축제 서포터스 활동

by Lara 유현정


두둥~둥
개·봉·박·두~~!!


2017년 가을,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제주국제실험예술제(JIEAF)의 서막이 올랐다. 제는 제목부터 상치 않다. 그냥 일반·예술제가 아니고 실험·예술제인 데다가, 국내가 아닌 국제 규모이고, 도 서울이 아닌 변방의 최남단 도시 서귀포에서 라니, 에겐 완전 따봉이닷!! 제주에 살면서 이런 걸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2002년 서울에서 시작한 이 행사는 2013년 김백기 감독이 서귀포에 정착하면서 제주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한 사람의 힘으로 올렸다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규모의 국제행사가 서귀포시 일원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는 감귤박람회와 연계하여 5일간이나 제주의 감귤을 테마로 예술과 농업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였다. 농업이 1차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6차 산업으로 껑충 도약는 것이다. 늘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는 김백기 감독의 고뇌가 담겨 예술이 홀로 고고하게 머물지 않고, 주민을 찾아 드릇 팟(들판에 있는 밭)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커다란 축제를 앞두고 김백기 감독은 서빳의 공연 올리서도 중문의 칠선녀축제 감독을 맡았고, 자신의 공연(꽃이 떨어질 때, 그때)까지 출연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재밌기 때문에 끝까지 할 거라며 웃던 천진난만한 미소도 그의 얼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것은 실로 안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주시가 아닌 서귀포시에서 대규모의 국제행사를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변에 대학이 없으니 젊은 관객과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고, 특히 외국 아티스트를 도와줄 통역이 부족하다는 것은 해마다 풀어야 할 난제였다.


보다 못한 나는 미력하나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대신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도와주고 싶었다. 서빳이 내 제주생활 심으로 들어온 이상, 구경꾼으로 머무는 축제에서 `참여하는 축제’로 거듭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서포터스가 되어 홍보와 리뷰를 맡기로 했다. 우선 급한 대로 버스정류장과 마트, 길거리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팸플릿을 돌렸다. 평생학습관 요리수업에서 만난 강사와 수강생들에게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젊은 커플에게도, 길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또 레꾼들이 몰리는 제주올레 본부에도 잊지 않고 찾아가 실험예술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주일 전엔 제주 올레길 축제 있었다. 나의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 뜻을 모아 자선주막을 열었고, 나는 그날 모여든 아카데미 동문들에게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예술제 참여를 독려하다. 음 날은 젊은이가 가득한 제주대를 방문하였다.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제주올레 아카데미 후배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캠퍼스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나의 행사라 생각하니 한 장이라도 더 붙이고 싶은 마음에 구석구석 발품을 팔았다. 분에 조급하고 막막했던 심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축제를 앞두고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속속 서빳으로 모여들었다. 총 14개국에서 참여 인원만 80여 명. 응원차 들른 서빳은 정신이 없었다. 감독님은 전시 준비로 여념이 없었고, 예술제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소품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나는 싸들고 간 간식을 조용히 나눠주고, 서빳의 숙원사업이었으나 손이 바빠 도저히 하지 못하고 남겨둔 대형 냉장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그간 냉장고 속에서 잊힌 음식을 쓰레기통에 넣을 때마다 쾌감을 느꼈고, 묵은 때가 벗겨진 싱크대는 오랜 체증이 내린 듯 속이 다 후련해졌다. 산뜻하게 비워진 냉장고와 주방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타인을 위한 노동은 소낭머리에서 만난 보름달만큼이나 충만한 기쁨을 돌려주었다.



2017 제주국제실험예술제 포스터



축제 기간 내내 하늘은 드높고 날씨는 쾌청했다. 11월의 제주는 가을의 절정이었다. 길거리마다 얼굴을 내민 과수원은 오렌지 빛으로 익어가는 감귤을 주렁주렁 매달고 함빡 웃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축제 포스터로 도배하고 보란 듯이 서귀포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축제장 출연진들은 이미 전날 리허설 회의를 마쳤음에도 일 오전 공연을 앞두고 다시 총점검에 들어갔다. 가까이 곁에서 지켜본 김백기 감독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과 치밀함이 돋보였다. 모든 이들을 챙기면서도 정작 본인은 점심까지 거르며 모든 공연을 진두지휘했다.


축제 본부는 귤박물관 바람의 언덕에 자리 잡았다. 총천연색 꼬리연이 푸른 하늘 위로 줄을 지어 멋들어지게 날, 무대 준비를 끝낸 드럼은 억새와 나뭇가지로 예쁘고 섬세하게 치장을 마쳤다. 모두가 분주한 그때, 정지된 화면이 주의를 집중시켰다. 온몸을 오렌지 색으로 칠하고 얼음땡을 하고 앉아 석고마임을 하고 있는 감귤 맨, 젊은 프랑스인 매튜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한 여자 아이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 그에게 다가섰다. 순간 찌리릿 교류가 일어나며 매튜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둘의 악수가 이뤄지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앞다투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매튜는 관객의 재미를 위해 따가운 가을볕 아래서 땀을 질삐질 흘렸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인기쟁이였다.


출연진이 점심을 먹으러 빠져나간 사이 잠시 한가해진 감독님은 에너지가 폭발했다. 흥을 돋우는 노래가 주변에 울려 퍼지자 어린아이처럼 간이 의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기운은 삽시간에 곁에서 지켜보던 기예르모에게 전이되었고, 어딘가 닮은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같이 장난을 쳤다. 가까이 있던 모카 다가오며 춤을 추었고, 매튜 두 손으로 귤 세 개를 바꿔 올리며 자를 맞췄다. 구경하던 나는 까르르르 웃음보가 터 나왔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는 흥겨운 시간, 이런 뜻밖의 퍼포먼스가 훨씬 더 꿀잼었다.



석고마임을 하고 있는 감귤맨 매튜



오후 3시, 쓰레기를 줍는 환경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태국에서 단체로 참여한 꿀벌 맨들과 그날의 아티스트들이 태평소와 함께 행사장 일대를 돌면서 실험예술제의 시작을 알렸다. 주변을 맴돌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본인 모카의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일본 부토의 대가 무시마루를 비롯하여 젊은 부토 댄서들, 또 모카 부부도 함께 쌍을 이루며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뒤이어 쿠바의 기예르모가 등장했다. 코믹한 몸짓과 보이스로 흥을 돋우며 물허벅을 메고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관객들의 웃음이 바람에 날리는 연을 타고 한껏 날아올랐다.


스웨덴에서 온 예의 바르고 겸손한 구스타프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소품으로 준비한 종이에 입김 불어 불을 붙이고 밧줄을 꺼내 커다란 깃털을 엮어 나다. 그는 뭔가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였으나, 그것이 내게까지 전달되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런던에서 날아온 김숙진은 하얀 소복을 입고 바닥에 쌓인 밀가루 더미에 온몸을 던지며 신들린 춤을 추었다. 얼굴을 하얗게 분장할 때부터 기대는 했었지만, 자기 매튜 앞으로 달려와 다소곳이 어앉고 물벼락을 맞을 때는 가슴이 다 서늘해졌다.


춤꾼 지오가 빠질 순 없었다. 그녀는 축제 기간 감독님을 도와 수많은 서류작업과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 멋지게 등장했다. 길고 긴 흰 천이 땅바닥에 펼쳐졌다. 두 팔을 벌리고 우아하게 날아오르려던 지오의 몸에 아일랜드에서 온 섬유 디자이너 아스타가 붓을 들어 뚝뚝 붉은 물감을 떨어뜨렸다. 기예르모와 모카는 주변에서 듀엣으로 잔잔하게 배경음악을 넣었다. 아스타의 붓질이 계속되자 지오는 몸짓을 멈추었고, 결국 천천히 나뒹굴며 핏물이 낭자한 천으로 자신의 몸을 둘둘 말아올렸다. 그녀 역시 영혼의 춤 부토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독일에서 제일 먼저 서빳에 도착한 디륵은 자신의 월드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전 세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무 심기 퍼포먼스였다. 30여 명의 아이들은 귤나무 묘목을 안고 아티스트와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다. 아이들은 꿍과 아티스트 한 명씩 을 이뤄 호흡을 맞췄고, 묘목과 함께 꿈을 심며 나무판에 이름을 써서 땅에 꽂았다. 일본인 유카는 묘목 옆에 자신의 발을 땅에 묻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 나는 그녀의 즉흥적인 행위예술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에 손을 얹 나즈막히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잃고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세계를 돌며 희망나무를 심고 있는 디륵의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하였다.


스스로 나무가 된 유카(좌)와 모카 부부(우)



제에 스프로 참여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았다. 엇보다 공연을 하나도 빠짐없이 에서 구경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는 틈틈이 아티스트들을 챙기면서재미있게 관람하는 관객을 놓치지 않고 다가가 다음 행사를 안내하며 팸플릿을 나눠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 가슴이 가득 차오르며 질 듯했고, 머리가 시원하게 맑 상쾌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연을 꼼꼼히 관람하고 촬영해서 당일 블로그에 리뷰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밤늦도록 버벅거리는 문장을 다듬어 포스팅을 끝내고 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나의 하루는 보람으로 꽉 채워고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름다운 서귀포의 자연을 무대 삼아 예술가의 치열한 실험정신이 녹아든, 세상에 단 한 번뿐인 이 멋진 공연을 바쁜 제주도민들이 잠시라도 짬을 내어 함께 즐기고 어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더 축제에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이런 에너지는 누가 하라고 시켜서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것은 실험예술과 퍼포먼스 아트라는 낯선 분야의 매력에 풍덩 빠져 본 사람이 서빳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확장과 매번 신선한 무대에서 전된 벅찬 감동로부터 자연스레 샘솟는 것이다. 늘 나를 가슴 뛰게 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힘, 서빳은 나의 제주생활에 가장 큰 선물이고 실험예술제는 매년 서빳이 준비한 서프라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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