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 마켓 퍼포먼스

일상으로 녹아드는 예술

by Lara 유현정


서빳의 김백기 감독은 늘 ‘일상이 예술’이라고 역설하였다. 나 또한 일상이 예술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주국제실험예술제 기간 중 하루는 이러한 우리의 바람대로 제주관광의 메카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안으로 예술이 침투해서 한바탕 난장을 펼쳤다. 먹거리를 해결하는 삶의 공간 시장을 순식간에 예술무대로 만들어버린 ‘마켓 퍼포먼스’는 이번 실험예술제가 마련한 또 하나의 서프라이즈였다.


1960년도에 개장한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상설시장이다. 한때 침체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올레시장은 2009년 제주올레 6코스에 포함되면서 자연스레 올레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sns의 발달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운 좋게 맛집에 등재된 점포들 앞으로 길게 꼬리를 문 관광객의 행렬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서빳과 이중섭 거리가 코앞이기에 나도 가끔은 기분 전환 겸 동네 산책길에 들르곤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올레꾼을 대상으로 문화상품을 보급하는 올레 안내센터 ‘서명숙 상회’가 자리하고 있으며, 시장의 역사와 함께 40여 년간 식료품을 팔아 온 제주올레 이사장의 어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계다.



토요일 오후 2시, 는 실험예술제를 보기 위해 서울서 내려온 작가 동생과 함께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시장 안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주말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축제까지 겹쳐서 무척이나 북적거리며 들떠 있었다. 마침 실험예술제와도 시간과 장소가 겹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중앙 통로에는 임시 주막이 차려다. 술과 안주가 넘쳐나 빈대떡으로 유명한 종로의 광장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우리는 단골인 `할머니 떡집’에서 오메기떡을 고르고 있었다. 오메기떡은 수수경단 안에 단팥을 넣고 다시 굵은 팥고물이나 견과로 버무린 제주도 토속음식이다. 냉동실에 얼린 오메기떡을 배낭에 넣고 올레길을 걸으면 언제나 든든하다. 출출해질 때쯤 아이스 찰떡으로 말랑말랑하게 녹 떡은 달달하서 요기까지 되는지라 자주 애용하곤 한다. 팥으로 살까 견과로 살까, 우리는 잠시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장 안의 왁자지껄한 소음을 뚫고 삐리리 닐리리 높은 음색의 구성진 태평소 소리가 들려왔다. 아보니 군중 사이를 비집고 예쁘장한 한복으로 단장한 여대생 둘이 태평소를 불고 춤을 추며 행렬을 이끌었다. 그 뒤로 모카 부부와 무시마루를 비롯하여 국내외 40여 명의 예술가들이 길고 긴 행렬을 이루며 시장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각양각색으로 자신의 역할에 맞는 복장과 분장을 하고 들어선 일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때마침 반라의 일본 댄서가 란하게 벨리댄스를 추며 다가다. 올레시장을 찾은 관광객은 로또를 맞은 듯 비명을 질렀다. 평소 예술과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던 상인들도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주름진 얼굴 위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들 뜻밖의 퍼포먼스로 잠시나마 지친 삶의 위로를 받는 듯하였다.





시장 중앙 통로에서는 즉석 콘서트가 펼쳐졌다. 가수인 사토 유키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렀다. 그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한국인 부인을 둔 데다가, 한국에서 `곱창전골’이라는 락밴드를 이끌 정도이다. 언제나 유쾌하고 열정이 넘치는 그가 ‘빗속의 여인’을 소리 높여 불렀다. 평소 그의 팬인 동생은 소리소리 지르며 응원을 했다. 의 곁에서 신사의 나라를 자랑하던 영국인 뮤지션이 바이올린을 켰고, 처음 보는 키 큰 남자가 더블베이스를, 또 일본 만화의 주인공을 닮아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예쁜 유리가 손 드럼을 신들린 듯 연주하였다.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관객들의 앙코르가 이어며 시장 안은 삽시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기예르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까 분명 직접 만든 옷으로 각설이 분장을 하고 커다란 넝마를 들고 입장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새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인기가 최고였기에 그를 놓친다면 크게 아쉬울 터였다. 부지런히 길을 되짚어 나오자,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고는 아주머니가 파전을 입안에 넣어주자 천연덕스럽게 꿀떡 받아먹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는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무장한 채 여기저기 넉살을 뿌리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주막에서 막걸리를 걸치고 있는 동년배의 남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술잔을 부딪히며 노래에 장단을 맞추었다. 잠시 지나가는 남자아이의 자전거를 거의 뺏어 타며 동심에 물들다가도, 자신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의 외국인 여행자를 만나자 “웰컴!”을 크게 외치며 격하게 포옹을 나누었다. 그의 동선만 좇아도 웃음이 다발로 쏟아졌다.



쿠바인 기예르모의 퍼포먼스



독일에서 온 디륵은 누구보다도 학구적이다. 나무 심기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한산한 구역의 옷가게 앞에서 탁자 위에 `행운과 예술을 위한 은행’을 차렸다. 모자를 쓰고 2m쯤 되는 장신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은화를 한 닢씩 나눠주었다. 그의 좌판에는 은화와 함께 남북이 선명하게 나뉜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통일 독일에서 온 그는 아직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술을 통해서라도 통일의 기운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체구의 일본인 유카는 소원 퍼포먼스를 하였다. 신을 하얗게 분장한 그녀는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패티코트 틀을 뒤집어쓰고 군데군데 붉은 천을 늘어뜨리고 나타났다. 통로 중앙에 마련된 벤치에 올라서서 지나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천을 나눠주고 소원을 쓰게 하였다. 그것을 티코트 틀에 묶고 그들의 소원을 대신 기원해주었다. 동안을 소유한 그녀는 동심을 간직한 어린이들에게 동화 같은 퍼포먼스를 선사하였다. 바로 곁에서는 스웨덴 부부 작가 에릭과 크리스티나의 행위예술이 이루어졌다. 남편은 아내의 몸짓이 이루어내는 무형의 아름다움에 붓터치로 페인팅 퍼포먼스를 하며 호흡을 맞췄다. 중년 여성들의 인기를 크게 끌었다.


구스타프는 그날도 어둡고 난해했다. 얼굴에 잔뜩 진흙을 바르고 온몸을 신문지로 두르고는 바나나 잎처럼 커다란 나뭇잎을 길게 엮어서 입으로 물고 질질 끌고 다녔다. 묵묵히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를 둘러싼 구경꾼들은 다들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다. 신 독일에서 온 에밀리의 의도는 명백히 감지되었다. 늘씬한 키에 남색 터번을 두르고 파란색 옷을 위아래로 고, 눈 화장을 크고 과장되게 그리고는 손 을 켠 파란색 양초가 들 나타났다. 세계인이 가장 선호한다는 블루는 자유와 희망을 상징한다. 그녀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홀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애정이 담긴 촛불의 따스한 빛이 어둡고 후미진 곳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구스타프(좌)와 에밀리(우)



번잡한 시장 입구의 바닥엔 초로의 한 남자가 흰 종이를 깔고 엎드렸다. 바로 화가 김석환 행위미술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나는 순간 갈등이 되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퍼포먼스를 놓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동생과 나는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 남겨두고 하게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 시장통에서 다시 만난 지인은 행위미술이 끝난 후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며 너무나 기뻐했다. 사실은 그녀도 화가였는데 경지에 오른 그의 그림이 맘에 들어 눈독을 들이자, 가 그림을 선물로 건넸다고 하였다.


그사이 동생과 나는 알프레도의 뒤를 쫓았다. 맨발로 혼자 다니는 그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온 알프레도는 맨발로 수경을 쓴 채 직접 만든 물고기 모양의 전등을 들고 시장을 누볐다. 그가 다다른 곳은 싱싱한 해산물이 즐비한 어물전이었다. 그는 노상의 좌판에 길게 누워있는 갈치와 몸이 마른 옥돔을 전등으로 비추거나, 수족관 속에 전등을 넣어다 빼기를 반복하며 살아있는 물고기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갸우뚱하며 의아해하는 상인들에게 우리는 상점의 번영을 기원해주는 퍼포먼스라고 얘기해주었고, 그들은 기뻐하였다. 추억을 간직하도록 간판 앞에서 알프레도와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중간에 알프레도의 반짝이 비닐 옷이 찢어졌지만, 우리는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려 함께 수선을 했다.


“우리는 슈퍼 팀이야!”


수선이 끝나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에게 동행의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어물전을 도는 알베르토



두 시간 가까운 마켓 퍼포먼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지친 모습이 역력한 모카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모카가 작은 타악기를 흔들며 앞장을 서고, 그 뒤로 남편 유타가 꽃으로 장식한 현무암을 허리 줄로 묶고 힘겹게 끌고 있었다. 그의 얼굴과 손발엔 굵은 흰 줄이 그려져 있었고 맨발이었다. 게다가 모카는 임신 중이었다. 제주 삼다도를 의미한다는 그들의 퍼포먼스 설명을 들으며,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제주도 곳곳에 진지동굴을 파고 징용으로 끌고 가며 몹쓸 짓을 하던 일본 정부의 과오를 예술로 속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을 어묵 가게로 안내했다. 따끈한 국물을 앞에 두고 어묵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관심을 보였다. 한때 젊어서 일본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그는 감회가 새로운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도 그의 유창했던 일본어 실력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는 어묵 값을 받지 않음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하였다.


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쉬웠지만 나는 이토록 즐겁고 아름다운 시장을 본 적이 없었기에 흡족하고 또 행복했다. 그날 올레시장은 함께 서로의 소원을 기원해주고,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게 선사하고, 제주의 한을 함께 아파하였다. 시장의 구조가 왕(王) 자로 이어지며 중앙 통로는 늘 사람이 북적였지만, 가로로 퍼진 통로의 구석은 평소 혈관이 막힌 듯 한산하였다. 그런데 지구의 반대편에서 날아온 예술가들이 행운의 은화를 나눠주, 촛불로 사랑과 행운의 기운을 전파하면서 구석구석 후미진 곳까지 온기가 퍼져나갔다. 이제 수족관의 물고기도 광명을 찾았고, 골목마다 웃음꽃이 피어나며 다들 흥겨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시장 상인들은 제 발로 찾아온 예술가들 덕에 그동안 서러웠던 소외감을 일소하고, 이제 또 지난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함께 더불어 상생하는 길을 고민하며 그동안 김백기 감독이 달려온 아름다운 길이 올레시장 안에 꽃처럼 피어났다.



유타의 삼다도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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